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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칠순을 맞이하며(나의 청소년 시절) 조회수 : 1643
  작성자 : 하남은광 작성일 : 2012-08-12

칠순을 맞이하며(나의 청소년 시절)

 

청년은 청년다워야 합니다. 나는 청년 시절로 진입하기 이전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일찌감치 청년기의 삶을 사는 거와 같았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나이 불과 17살 청소년기에 과감하게 나의 꿈을 찾아 살았습니다. 집안이 가난하다고 하여 꿈마저 가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강이었습니다. 앞길이 막막하다고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  사람의 삶입니다. 나는 당시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인 광주 사범 병중을 합격하고서도 등록금을 낼 수가 없어서 진학할 수가 없어 진학을 포기 한 체 6개월간 집에서 가사를 돕다가 새롭게 열린 배움의 길을 찾아 삼기면 소재지에 새로 생긴 삼기 고등공민학교에 입학 학교사무실 심부름을 하면서 입학금을 면제받고 중학교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당시에 사무실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을 소사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소사 일을 하면서도 학업성적이 다른 애들보다 월등하게 잘했습니다. 이런 일로 급우들이 학교 뒤 원등리 마을 뒤 저수지 밑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너 시험지 예상문제 보았지? 너 시험지 본 대로 말해 주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라고 엄포를 하는 것입니다. 나더러 선생님들이 계시는 사무실 잔심부름을 하면서 시험문제를 미리 다 보고 시험을 치는 것으로 오해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 이였습니다.   나는 그럴 수도 없고 그런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한 우등생이라고 설명했지만 아이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공부 3년을 마쳤습니다.

“옛날에는 남자가16세 될 때 나라에서 호패를 내렸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아버지의 속마음 은 내가 무슨 일이든지 밥벌이 취직을 하지 않고 집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 보기 싫다는 기색이었습니다.

그해 4월 어느 날 석곡면 쪽으로 기름 장사를 나가신 어머니께서종기야 너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는 취직자리 마련하고 왔다. 석곡면 소재지 홍씨 가게인데 그 집은 제과와 제빵을 하는 점포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며칠 후 나는 생후처음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사탕과 과자 빵을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었지만 불기마의 더위 속에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쉴 사이 없는 일의 연속을 견딜 수가 없었고, 센베이 과자 굽는 기술은 어찌 그리 어려운지 손가락 다 화상을 입으면서도 배우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탕 만드는 과정 가운데 설탕과 엿을 녹여 응고 시켜 벽기둥 고리에 감아 늘이는 일은 나의 작은 체구로는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제과 일이 하기 싫은 것 보다 내가 이방면의 기술을 터득하여 일생을 살아갈 것인가? 아무래도 기능공의 길은 나의 적성에 맞지 아니함을 알고 그만두었습니다. 

그해 가을이 시작 되려는 무렵이었습니다. 청포도 알만큼 싱싱하고  알찬 나의 꿈을 찾아 나서기로 다짐했습니다. 나의 인생의 꿈을 내가 생각한대로 펼쳐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한 마을의  이종연 어른을 찾아가 4천환 빚을 내어 광주시 충장로 가장 큰 잡화 도매상회를 찾아갔습니다. 시골가정에서 가장 필요한 필수용품 성냥,나이타돌,세수비누,빨래비누,손크림,양말,머릿기름(포마드) , 거울, 색실, 바늘, 단추, 핀 등 이였습니다.  4천환 어치 잡화가 한 보따리 될 정도 이었으며 보름동안 시골마을 다니면서 장사할 수 있는 량 이었습니다. 물품을 쉽게 구별하기 위해서 나무판자로 만든 사과상자 하나를 마을 점포에서 사다가 창호지로 몇 번씩 덧바르고 그 위에 예쁜 도배지로 커버를 꾸며서 소위이동 형 미니 수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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