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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4월 5일 주일가정예배 안내문 조회수 : 2401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4-05
  첨부파일:   4월05일 가정주일예배 안내문.hwp(25K)

45, 종려주일 가정주일예배 안내문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종려주일이지만 종려주일 예배도 가정주일예배로 드립니다. 그러나 광주지역에 특별한 상황이 없으면 오는 47일 화요일 새벽기도회 부터는 교회에서 모여 예배함으로 정상을 회복해 가려고 합니다.

다만 주일예배는 비상예배시간편성에 준하여 3부로 분산하여 예배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하며 힘냅시다.

[종려주일 가정주일예배 순서]

1. 인사 :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2. 십계명 선포 : (찬송가 뒷면을 펴셔서 읽으세요)

3. 예배의 초청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4. 송영 찬송 : 찬송가 4을 같이 부르시겠습니다.

5. 회개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지었으며 원하지 않는 악을 행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주를 사랑하지 못했으며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 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해 주옵소서. 주님 뜻 안에서 기뻐하며 주 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6. 사죄확신 : (인도자)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께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신 것을 믿습니다. [아멘]

7. 신앙고백 : 우리는 이렇게 믿습니다. (사도신경)

8. 찬송 : 찬송가 143 을 부르시겠습니다.

9. 예배기도 : (김재한 장로) 영상을 보지 않으실 때는 가족 중에 한사람이 기도 하세요.

10. 성경봉독 : 누가복음 22:7-23 / 신약성경 134(가족이 같이 읽으세요)

11. 말씀 선포 : (김희중 담임목사) 영상을 보지 않으실 때는 인도자가 설교 문을 읽어 주세요.

유월절과 하나님 나라

(22:7-23, 134)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내가 너를 통하여 세상에서 참 믿음이 무엇인지,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리라! (믿음의 조상)

세상에서 참 믿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줄 너를 통하여, 세상의 가난과 굶주림의 문제와, 고난과 전쟁과 질병과 환경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 하리라! (복의근원)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평소 같으면 오늘 세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한 주간은 고난 주간이며, 부활주일 성찬식을 위해 성찬 준비주간으로 선포 됩니다. 그런데 가정주일예배로 종려주일을 맞아야 하고 부활절 성찬식도 하지 못하게 되는 지금의 상황이 속상하고 심정이 많이 편치 않습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오늘 주일예배까지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에 적극 협력하는 것으로 하고, 금 주 부터는 점차 예배를 회복해 가야겠습니다.

여러분 힘내세요. 그리고 건강에 더 유념하기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기독교인들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지에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참 많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내게 있다면 그 믿음으로 인해서 반드시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믿은 후에 자신에게서 변화된 것도 없는 것 같고, 또 주변에서도 특별히 나아졌다고 할 만한 것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기 신앙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을 기존의 자기 상식 안에서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고 현상입니다. 신자에게는 믿음으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변화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이 변화에 대해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도, 우리가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성경과 다르면 전혀 알 수가 없고, 또 실감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믿음이 있음으로 해서 나타나는 변화와 현상은 세상 것의 소유에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두고 살던 사람이 믿음을 갖게 됨으로 이제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게 되는 것에 삶의 모든 의미를 두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신자는 소유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존재지향적인 사람이다는 말을 자주 언급했었습니다.

소유 지향적이라는 것은 인간의 가치를 세상의 것을 소유하는 것에 두고 있기 때문에 자기 소유에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소유지향적인 삶은 소유하는 것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찾고자 하지만 만족이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심은 만족이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늘 불안과 불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늘 더 많고 커다란 소유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신자의 삶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한 거예요. 여러분, 신자는 이런 소유가 아니라 나의 존재됨을 통해서, 즉 내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존재가 되었는가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의 대다수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존재됨이 아닌 소유에 관심을 두고 있고, 하나님의 일하심이나 사랑과 은혜도 세상 것의 소유를 근거로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기 소유의 증가를 복을 받은 것으로 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확실한 증거물로 간주하는 것이지요.

소유의 증가는 눈으로 확인하고 실감할 수 있지만 존재의 변화는 눈으로 볼 수 없고 확인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인생의 가치를 소유에 두는 사람에게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막연하고 공허한 말로 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소유는 그것이 아무리 증가한다고 해도 생명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존재의 변화는 생명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어떤 존재의 변화인가요? 아담 안에서의 멸망의 존재가 둘째 아담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존재로의 변화지요. 멸망의 존재가 아니라 구원받은 존재요, 사망에 처한 자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요, 지옥의 영벌에 던져진 자가 아니라 영광스런 천국의 상속자로서의 변화지요. 여러분, 생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게 됨으로만 가능하잖아요. 그러므로 존재의 변화는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에 있던 자가 이제는 하나님과 연합된 관계로 회복됨을 말하는 거예요.

그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중심에 예수그리스도가 계신거지요.

여러분, 이것은 인간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해도 예수님이 없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신자에게는 그리스도가 곧 생명이며 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런 존재됨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소유를 향한 집착에서 멀어지게 되는 거지요. 때문에 신자는 내가 무엇을 행할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본문의 내용도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로 가신 예수그리스도로 인해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 세상에 존재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내용인 것이지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먹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유월절을 먹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유월절은 어린양의 희생으로 출애굽 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잖아요. 따라서 유월절을 먹는다는 것은 어린양을 먹는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기 원하셨을까요?

그것은 유월절의 완성이 곧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기 때문이에요. 이제 예수님은 유월절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로 가시는 겁니다. 이것을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고, 예수님이 유월절을 이루심으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먹기를 원하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거지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으신 것을 보통 최후의 만찬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자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시고 희생의 길로 가신 예수님으로 인해 제자들이 어떤 존재가 되어 세상에 머물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유월절 만찬을 통해서 예수님의 희생이 우리를 어떤 존재가 되게 하였는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거지요.

여러분,

말씀드린 것처럼 유월절은 어린양의 희생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해 애굽에 내렸던 열 가지 재앙 중에 마지막 재앙에서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죽음을 면하고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마지막 재앙을 왜 이렇게 번거롭게 하셨을까요? 아니 꼭 어린양의 피를 바르지 않아도 이스라엘 백성은 보호하고 애굽의 장자만 골라 죽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굳이 왜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여 그 피를 보시고 피 가 없는 집을 치시느냐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날 밤에 설사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해도 어린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은 죽음의 재앙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존재의 근거가 단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인간의 혈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양의 피에 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한 것은 어린양의 피예요. 여기서 혈통적 의미에서의 아브라함의 후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지요. 하나님의 언약인 어린양의 피 뿌림 안에서의 아브라함의 후손만이 이스라엘로 일컬음 받게 될 뿐이에요. 즉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되게 하고 죽음에서 건지며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미암은 어린양의 희생으로 성취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내용들이 현재의 여러분과 무관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건이 신자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의미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내가 나 된 모든 일의 내막을 담고 있는 사건들이기 때문인 겁니다.

현대 교회의 믿음이 믿음의 본질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내용들의 의미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신자라는 존재보다도 세상 것의 소유에 집착을 하며, 기독교 신앙을 세상 것의 소유의 증가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는 수준으로 전락해 버린 현실들이 ...... 왜 이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아보면 창세기부터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에 무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8절에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고 하십니다.

유월절 식사 준비에는 어린 양이 있어야 하고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과 쓴 나물과 포도주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행길에 있었던 제자들에게는 그 모든 재료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돈이라도 있으면 양과 포도주 등 필요한 것을 구입하여 유월절을 준비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형편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9절에 보면 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유월절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님은 유월절 준비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13절을 보면 모든 일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어 유월절을 준비하게 됩니다. 유월절을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제자들이 한 것은 그저 말씀대로 실천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실천은 단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 내로 들어갔고, 사람을 만났고, 유월절을 먹을 방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월절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는 것이고, 우리는 모든 것이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확인하는 자로 살아갈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뭔가를 실천하여 예수님의 일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없는 것이지요.

16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여기서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라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유월절은 어린양의 희생으로 인해 죽음에서 건짐 받은 은혜를 보여준다고 했잖아요?

따라서 이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가 죽음에서 건짐 받은 은혜를 입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지요.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는 것은 유월절 식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준비하심으로 예수님과 함께 먹은 것을 마지막으로 유월절 식사는 반복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신 후의 문제까지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만약 유월절 식사가 반복된다면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후에는 제자들이 유월절을 위해서 직접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유월절을 먹지 않는다면 제자들의 준비, 다시 말해서 제자들의 행함 또한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유월절을 이루신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18절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유월절에 마시는 잔, 즉 포도주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다시 마시지 않으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피 흘리신 죽으심으로 유월절이 완성되었고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뭔가 해야 할 일을 남겨두지 않으시고 모든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여러분, 것이 십자가입니다.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그 몸을 우리에게 주신 사건이에요. 예수님께서 몸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거지요. 기존의 우리의 몸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더럽고 악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받았다면 다릅니다. 예수님의 몸은 거룩하고 따라서 예수님의 몸을 받은 자도 거룩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화목이 가능하게 된 거예요.

19-20절에 보면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떡을 떼어 주시며 내 몸이라고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을 주시며 내 피로 새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이것을 근거로 하여 성찬식을 행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말씀에서 찾을 수 있는 성찬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찬식을 행함에 있어서 이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찬식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본질적 내용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형식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몸을 주시고 피를 주시는 것은 그들에게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는 그들의 몸과 희생으로 뭔가를 이루어야 하는 나라가 아님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가 성찬식을 행한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믿는 믿음의 세계는 우리의 몸과 희생으로 위대한 일을 행하고 이를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하나님과 화목 된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일을 이루셨기에 우리의 몸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린 다만 예수님의 몸과 피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면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증거 할 뿐입니다. 모든 일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음을 믿고, 그것을 우리의 존재됨에서도 확인하면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주의 일을 증거 할 뿐입니다. 만약 누구든 인간이 이루어야 할 것이 있음을 주장한다면 그는 자기 이익을 위해 예수를 파는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룟 유다인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고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예수의 몸과 피를 받았음을 무시하고 자기 몸과 피, 즉 자기 헌신과 희생을 앞세워 예수를 상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의 헌신과 희생을 보시고 나를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새 언약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신자는 새 언약 속한 신분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존재입니다.

때문에 새 언약에 속한 자로 살아가는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증거 할 뿐입니다. 이 언약 안에 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2. 찬송 : 찬송가 144 을 부르시겠습니다.

13. 봉헌 : 헌금은 다음에 교회에 오실 때 같이 하시든지, 교회통장 계좌로 이체 해 주시면 좋습니다.

교회통장 계좌번호 // 신협 131-017-294454 (예금주: 하남은광교회)

14. 교회 소식

오늘은 종려주일이며 오늘부터 한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47, 화요일부터는 새벽기도회를 정상적으로 교회에 서 갖습니다. 새벽기도의 열심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는 금요일 410()은 정사기념예배가 오후 3시에 교회에서 있습니다.

다음 주일(412)은 부활주일입니다. 다음 주일부터는 비상예배시간편성에 의하여 3부로 분산하여 교회에서 예 배를 드립니다. (1부 예배(09:30) : 케노시스주일학교 가족 중심, / 2부 예배(11:00) : 1구역-10구역 성도 중심 /

3부 예배(14:00) : 11구역-20구역 성도 중심)

금년 전반기 세례식과 부활주일 성찬식은 안타깝지만 하지 않는 것으로 했습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기타 광고는 같이 보내드린 교회공지문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모든 예배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고 참여합니다.

15. 마침 찬송 : 찬송가 531을 부르시겠습니다.

16. 축도 : (예배안내문으로 드리는 가정예배에서는 주기도문을 하시면 됩니다.)

주님과 동행하시는 한 주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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