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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년을 지켜주신 하나님(2) 조회수 : 1279
  작성자 : 하남은광 작성일 : 2012-06-10

20년을 지켜주신 하나님(2)

 

교역 초창기 저의 삶의 환경은 동서남북 모두, 겹겹이 우겨 쌓임을 당하게 되면서 자신이 땅굴 속에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환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높이1m 정도의 지하 통로 같은 환경 이었습니다. 앉아서 오리걸음을 하면 무릎과 다리가 아프고 엉거주춤 걸으면 허리가 아프고 꼿꼿하게 서려면 머리가 닿아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가도 가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하통로 인생길은 숨이 꽉 막혀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이르면 지상으로 연결된 공기통이 있었고 그 지점에서만 숨을 고를 수가 있는 터널 속 같았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환경을 만나게 되니까 연약한 인생인 저는 오로지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기 뱃속에 들어가 기도하던 요나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저도 요나처럼 고난의 세월을 따라 살 수밖에 다른 출구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쳐올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드렸습니다. 저에게는 기도목회처럼 쉽고 좋은 방법이 더 없었습니다.

첫째는 염려되는 사건들을 전능의 주님께 맡겨서 좋고, 둘째는 사랑 많으신 주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남 은광교회의 시작부터 저는 기도목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척예배를 드리려고 장소와 개척 지점을 놓고 우리 부부는  기도의 무릎을 가졌습니다.

당시 월곡동의 형편은 아파트는 한성, 금호, 일신, 주공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이런 아파트 주변의 예배처소를 전세를 얻기에는 너무나 큰돈이 필요했었습니다.  이미 먼저 개척을 시작한 사람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해 버려서 돈이 있다 해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버스 승강장 옆이고 3층 홀이 깨끗한 곳으로 30평 남짓 한 곳에 개척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보증금이 3000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 우리에게는 개척 지원 자금이란 몽땅 다 420평부지 매입에 쏟아 부었기 때문에 전세 계약금으로 손에 달랑 100만원을 쥐고 있었습니다.

우리 두 부부는 하나님께 후불 전세를 얻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연후에 집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장님 저희들이 가진 것이 100만원 밖에 현재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2개월 이내로 2900만원을 완납해 드릴 테니깐 전세계약을 하고 6 9()에 개척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불신자인 집주인이그럽시다. 목사님께서 거짓말을 하시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쉽게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 졌습니다. 저는 발걸음을 가볍게 그날 오후부터 아시아 자동차(지금은 기아)공장이 있는 광천동 헌 나무집 자재상회로 달려가 송판, 각목 등을 사서 용달차에 싣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톱과 망치를 사서 손수 예배당 강대상 대와 아래 강대상을 놓을 강단 대를 만들었습니다.

외상으로 예배처소를 구하게 되었고, 예배처소의 강단을 만드는 것 역시 기쁨이었습니다. 솜씨가 없는 사람이 만든 강단이었지만 나무로 형틀을 완료한 후에 예쁜 장판으로 덮어 놓고 보니까 최고의 강단이 꾸며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업을 마친 그날은 얼마나 기뻤던지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이었습니다.

이제 예배처소는 마련되었지만 우리 가족이 이사 오려면 사택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또 사택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런데 광주 은광교회에 출석했던 이정순 집사님이 간경화의 중병을 지니고 세상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분의 집 측면의 상하 방을 드릴 터이니 자신의 집으로 이사 오시라는 간곡한 부탁이 들려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사택을 마련 입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하 방은 부엌까지 합해도 네 평 남짓 되는 방과 부엌이 따른 공간이었습니다. 이 작은 공간은 애들과 함께 비좁아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예배당에서 잠을 자는 예배당 불침번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천 십 이년 유월 십일

                           담임목사 손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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