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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4월을 시작하며 조회수 : 1189
  작성자 : 하남은광 작성일 : 2012-04-01

4월을 시작하며

 

 

4월은 모란 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 시인의 말처럼 4월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잊혀 질 수 없는 4.19 혁명이 일어난 달입니다. 1960 4 19일입니다.

당시 나는 갓 서울에 올라온 18세의 청소년 이었습니다. 고려대학생의 시위를 필두로 대광고교생들의 시위대가독재정권 물러나라!! 이승만 하야하라!!’ 구호를 외치며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모습을 파고다공원 정문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당시 나의 가슴도 뛰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날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몰려나오면서 시위대의 세력은 점점 더 큰 세력으로 가세되었습니다.

그날 경무대를 향하여독재정권 물러나라!! 이승만 하야하라!!’ 외치며 달려갔던 시위대에게 경무대 경찰 진압부대가 발포하여 사상자가 속출하게 되었고 시위대는 그 시신을 지프차의 범퍼에 매달은 채로 거리를 질주하며 무력진압의 잔인한 현장을 보여주게 되면서부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져 나갔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승만 독재정권 12년은 종식, 이기붕일가는 서소문 자택에서 자결로 막을 내리고, 정치 깡패 이정재와 임화수는 혁명재판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4월은 나에게는 가슴이 아파오는 달입니다.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실과 사필귀정의 진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죽음 속으로 질주하는 시위대가 가졌던 용기가 없어서 가슴 속으로 애태우며 구경꾼의 자리에 있었던 그날 그때 나는 얼마나 옹졸했는지! 그때를 후회 함 때문입니다. 남산 중턱에 올라 유탄이 무서워 언덕 뒤에 숨어 빼 꼼이 불타는 서울 시내를 바라보던 기억이 지금도 나를 스스로 책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대시절의 일 무려 52년이 지났어도 용기 없이 숨어서 구경했던 겁쟁이가 미운 맘이 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같이 정의, 애국, 충성, 희생이라는 단어가 홍수 같이 쏟아져 나온 선거철이지만 멀찌감치 느껴지는 세상은 과거에는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는 것도,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과거보다는 수백 배 나아졌지만 왜 우리 가슴 속에는 정의, 애국, 충성, 희생이라는 말이 둔감하게 느껴지는지요? 우리 시대가 너무 이질화 되어 가는가요? 종교 다원론주의가 그리스도인들의 독실함을 삼켜버렸는가요? 자신의 삶만을 구축하기 위하여 동분서주 하는 이유 때문인가요?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하나님 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시대이기때문인가요? 부모를 거역하는 세대요, 백만이 넘는 이주민이 섞여 살아가기 때문에 백의민족이라 말하지 못하게 된 상황 때문인가요? 글로벌 시대, 민족주의는 이기주의의 한 단면으로 보기 때문인가요?

고추는 맵기 때문에 김치에 쓰이고, 소금은 짜기에 간장에 쓰이고, 빛은 밝기에 어두움을 물리칠 수 있다면, 신자는 불신자와 구별되게 삶을 살아야만 성도일 것입니다. 성도가 성도답게 살려면 포도나무 이신 예수님에게 접붙여져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성도가 구별되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듬고, 하나님께 기도를 통해서만 구별된 존재로 변화 성장할 수 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 시인처럼 우리의 과거 4월은 동족간의 전쟁, 보리 고개, 군부독재, 민주화운동, 노사갈등, 동서와 남북의 갈등으로 처참히 아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들은 자신들의 눈을 어둡게 하는 에고이즘의 군살들을 도려내는 또 다른 아픔을 가지고 성도로 살 맛, 살 가치를 회복하는 회복의 기회, 자기부흥의 기회가 되었으면 나도 교회도 조국도 세계도 참 좋을 것입니다.

 

                                  이천 십 이년 사월 일일

                                     담임목사 손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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