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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그리스도의 사랑의 인내 조회수 : 1230
  작성자 : 하남은광 작성일 : 2012-03-18

 

그리스도의 사랑의 인내

 

우리는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성경에서 봅니다. 자기 몫의 재산을 챙겨 가지고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먼 나라로 떠났지만 아버지는 한 시도 그를 잊지 않았으며, 돌아오기를 고대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떠난 아들이지만 사랑하기에 참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주의 인내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인간은 다분히 감각 주의적 경향이 있습니다. 증거주의, 경험주의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음은 이를 잘 입증해 줍니다. 무엇이든지 자신이 눈으로 보거나 신뢰할 만한 사람들의 증언이 없으면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주의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고 언제나 함께 하였음에도 마음 가운데서 의심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지 못했습니다. 의심은 불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온전히 신뢰한다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 든 의심하는 일이 없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이러한 상태를 꿰뚫어 보셨음에도 나무라지 않고 기다리셨습니다. 성장이란 서두른다고 앞당겨지는 것이 아님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의심한다고 책망할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벳새다 광야에서 일어난 기적의 역사를 목도한 사람들은 주와 함께 한다면 어떤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고작해야 한 소년의 도시락 분량에 불과한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가 그 토록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도록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을 직접 경험하고서도 제자들은 여전히 걱정이라는 짐을 벗어버리지 못했습니다. 주와 함께 있으면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등을 걱정한다는 것은 온전한 신뢰가 결여되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럼에도 주는 오래 참아주셨습니다.

몸에 때가 많은 사람은 공중목욕탕에 가기를 싫어합니다. 다른 사람들 보기가 창피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토록 대망하던 메시아가 오셨을 때에 두 손을 높이 들고 환영하기는커녕 도리어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이같이 하는 이유가 자신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둠에 속한 자들은 빛을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는 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오신 그리스도를 거부하였습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그분에게로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셨으며, 오늘도 그분의 인내로 많은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외침이 듣기 싫어서 그분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분이 죽으면 자기들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땅 위에 사람이 설치해 놓은 모든 조명을 제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태양이나 달, 별들의 빛을 끈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상상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도 마찬가집니다. 그분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구원의 빛이십니다. 오늘도 그분에게로 오는 자는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인간을 절대시하고 우상화한 어떤 이들은 가만 두어도 인류 사회는 진보하고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오래 가지 않아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했으며, 인류 사회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탓에 적절한 처방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은 죄인이요 인류는 죄악의 수렁에 빠져 있다는 것이 성경의 진단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주의 도우심만이 유일하고 완전한 해답인데 인간은 어리석어서 다른 곳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기다리시는 주께로 가야 희망이 있습니다.

인류가 처한 현실을 위한 최상의 처방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가 알 것은 이 사건이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었다는 점입니다. 십자가만이 흑암에 처한 인류를 살리는 길이기에 그리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악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사실을 깨달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고귀한 자유를 찾아 누리고 있습니다. 더욱 죄로 빠져 가는 인류를 주께서 오래 참으셨으므로 우리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누구든지 십자가 밑에 오기만 하면 죄 짐을 벗게 되고 주가 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천 십이 년 삼월 십팔일

                                담임목사 손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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