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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누가 이산가족의 고통을 치유하는가? 조회수 : 1378
  작성자 : 하남은광 작성일 : 2010-08-20

누가 이산가족의 고통을 치유하는가?

 

“아버지를 꿈에서 뵈었어요. 이제 다시는 아버지를 뵐 수 없을까요?” 2006년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금강산에서 만난 뒤 이따금 연락을 주고받았던 이산가족 한 분이 한 달여 전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해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대한적십자사의 도우미로 따라나섰다가 만난 분이다.

 

그분은 1950년 한국전쟁 때 4살의 나이에 헤어진 아버지를 당시 금강산에서 만났다. 속초에서 금강산을 가는 내내 그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며 사뭇 가슴 설레어 했다. 그러나 정작 만나자 부녀 사이에는 세월의 강이 흐르는 듯했다. 23일의 소중한 시간을 데면데면하게 보내고는 헤어지는 시간이 되어서야 그는 아버지를 붙들고아버지, 가지 마하며 통곡하는 게 아닌가.

서울로 돌아와서는 아버지가 준 선물들을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몇 번의 잔치를 벌였다. 그리움에 더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언젠가는 아버지로 인해 새롭게 생긴 북쪽 형제자매들을 만나게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 그가 최근 어지러운 남북정세에 마음이 뒤숭숭하여 꿈에서 아버지를 보았나 보다.

2010 815일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세계적인 언론들이 연일 이 행사를 대서특필했다. 십년 전 그날, 많은 사람들은 이산가족들의 뜨거운 눈물과 포옹과 함께 남북의 분단이 끝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을 했다.

 

이제 남북관계가 1990년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해 남북 당국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남북 당국이 기싸움, 명분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이산가족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이산가족 찾기 추가 신청자는 685명이지만, 사망자는 다섯배나 되는 3197명이다.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가 상봉 신청을 받은 이래로 128000여명 중 벌써 44000여명이 별세했다. 앞으로 남은 고령자를 놓고 볼 때 가속이 붙게 될 것이다. 이러다 보니 마음 급한 이산가족들은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만 지을 뿐이다. 어렵게 완공된 금강산면회소는 개점 후 휴업상태이다.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남북 당국이 아무리 대결 국면으로 치달아도 풀어내야 할 절체절명의 책무를 느껴야 마땅하다. 예컨대 북핵 문제로 긴장 국면의 북한과 미국은 대화를 통하여 한국전쟁 때 북한 지역에 남은 미군의 유골을 발굴하여 미국으로 송환하지 않았던가. 이게 바로 인본주의 정신이고 국가가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자세이다. 최근에도 북한은 제스처이건 아니건 국군포로 송환 제안을 한 바 있다. 이런 인도적 의제에 대해서 당국은 정치적 입장과 분리하여 접근해야 한다. 그것을 계기 삼아 북한을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장으로 이끌어낼 만한 아량과 관용을 남쪽 당국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이나 구 소련, 일본, 중국 등도 책임이 크다. 즉 남북 이산가족 문제는 냉전시대의 유물 중 하나이다. 이 문제에 대해 유관 국가들의 책임을 호소하며, 국제사회의 관심과 해결을 위한 공조를 호소할 필요가 있다. 마침 국제인도법의 중요한 내용에도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 포함되어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중재를 요청하여 남북·해외 이산가족 교류의 새로운 접점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독일 통일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60년대까지 서독의 동독 적대시 정책하에서는 동서독 관계의 진전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1970동서독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교류정책을 확대함으로써 서독의 자유와 풍요가 동독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통일의 기초가 될 수 있었다.

2010년은 경술국치100년이 되는 해이다. 경술국치로 인해 남북이 분단되었고, 이산가족의 고통이 시작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산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려는 지도자가 아쉽다. (김귀옥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 전쟁과 평화연구소 소장 기고)

 

                        이천 십년 팔월 십오일

                         담임목사 손종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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