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홈  >  교육과사역  >  주일설교요약
  제  목 : 2021년 12월 12일 마지막 기도, 어떻게 하셨을까? (눅22:39-46 신, 136) 조회수 : 357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1-12-17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이 될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이제 제자들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마지막 밤, 얼마 남지 않은 그 시간에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1. 감람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길을 주저 없이 가고 계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맡기신 길을 주저 없이 가고 계시는 예수님이 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하시는 것일까요? 진심으로 예수님에게 맡겨진 잔이 옮겨지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기도하시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오직 한 길로 고정되지 않고 수시로 변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성자이신 하나님이시면서도, 반면에 또 완전한 인성 안에 계시는 사람이시므로 잠시 후면 겪으실 십자가의 고난을 두고 고민하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성 안에서의 고민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는 진심으로 예수님에게 맡겨진 잔이 옮겨지기를 원하셔서 그렇게 기도하신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신 것부터 유다의 배반을 피하지 않으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피하고 싶으시다면 유다가 잘 알고 있는 감람산으로 가시지 않았겠지요.

2. 그렇다면 예수님의 기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감람산으로 가실 때 제자들도 따라갔습니다. 감람산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감으로써 자신이 장담한 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감람산으로 예수님을 따라온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이 유혹은 장차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제자들에게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으며, 오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걸림돌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유혹에 대해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 오늘 감람산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신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끊임없이 인간을 유혹하는 것은 하나님이 옳다고 하신 것보다 자신에게 옳은 것을 따라 살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반발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는 예수님의 심정이라기보다는 평소 자기의 뜻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심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지만 하나님의 뜻 앞에서 우리의 뜻은 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는 기도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처럼 아버지의 뜻에 내게 이뤄지기를 구하는 것이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43절에 보면,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고 말합니다. 이 구절도 예수님이 천사로부터 힘을 받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도우심과 힘을 주심의 방향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천사가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함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는 길로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구하는 신자 된 우리에게 하나님이 힘, 능력을 더하신다면 그 힘은 무엇을 위한 힘이겠습니까? 당연히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로 가게 하는 힘이지요. 그 힘이 결코 우리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힘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저주를 받으시는 길로 가십니다. 그것을 기도하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생각한다면 아버지의 뜻에도 사랑하는 아들을 저주의 길로 가게 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생명에 들어가게 하신 아버지의 희생과 고통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 된 우리는 자기의 뜻보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자 된 우리의 기도에서 자기중심의 기도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기도 안에 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이전글 : 2021년 12월 5일 유월절과 하나님의 나라 (눅22:7-23 신, 134)
  다음글 : 2021년 12월 19일 동방박사들, 왜 예루살렘으로 갔나? (마2:1-12 신, 2)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