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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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1년 11월 7일 일어나 머리를 들라! (눅21:20-28 신, 133) 조회수 : 375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1-11-08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 종말에 대한 말씀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을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종말의 때에 나타날 미래 적 사건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 현재 적입니다. 그것도 이미 성취되어진 현재적 사건으로 언급하십니다. 그러므로 종말은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막연한 미래적인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으로 이미 시작된 현재적 사건으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물론 종말이 미래 적 사건과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지요. 종말은 분명 미래적 사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단순히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세상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시기 위한 취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아들이 살해된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좁게는 예루살렘에서, 넓게는 세상에서 발생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를 살해한 세상에 대한 처분 또한 오직 하나님께만 그 권세가 있는 겁니다.

2. 종말은 징벌의 날입니다.

22절에 보면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고 말합니다. 징벌은 보응의 취지로 행해지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 징벌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죄에 속한 모든 자에게 해당되는 것이 징벌의 날인 것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마지막 때의 징조들은 오늘 우리와 무관하지 않음을 먼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성전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만 있으면 신앙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성전과 성전에서의 제사가 신앙의 핵심이고 전부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루살렘이 이방 나라의 군대에 에워싸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버리셨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말의 상황에서 이런 미련한 행동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고,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은 그것이 곧 사는 길이라는 뜻이 됩니다. 성안에 있어도 죽고, 산으로 도망쳐도 죽는다면 굳이 도망하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결국 문제는 예수님이 말씀한 사는 길이 정작 우리에게는 내가 살 수 있는 길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 말씀대로 하는 것은 죽는 길로 들어서는 미련한 것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예수님이 말씀한 사는 길로 가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3. 내 일에 몰두하다가 잊게 되는 예수님의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늘 자기 일에 몰두합니다. 이처럼 자기 일에 몰두함으로 인해서 징벌의 날에 대해 잊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이 징벌의 날, 하나님의 보응의 날이라는 것을 잊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잊게 되는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의 일입니다. 징벌의 날에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은 우리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선포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들이 징벌의 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사는 길로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에 우리의 속량이 있습니다. 징벌의 날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속량 만큼 복된 선물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속량이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장 안전한 피난처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가 안전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을 손에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어나 머리를 들지 않으면 내게 이득이 되는 예수님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머리를 들게 되면 생명이 되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어나 머리를 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늘을 보기보다는 내 발 앞에 떨어진 현실만 봅니다. 이러한 우리의 머리를 들게 하기 위해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징벌의 날에서 가장 존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로 이루어진 속량이 존귀한 예수님의 일로 다가온다면 그가 바로 머리를 들고 주를 바라보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자가 다시 오실 예수님에게 모든 희망을 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 어둡고 힘들다 해도 그의 나라를 향한 소망이 있다면 인내하면서 주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진노의 날, 보응의 날, 심판의 그 날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속량의 은혜만을 바라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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