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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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1년 9월 12일 평화에 관한 일을 아십니까? (눅19:41-48 신,129) 조회수 : 359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1-09-22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세 번에 걸쳐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고(5:7), 또 베다니 마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고(11:35), 그리고 장차 멸망 당할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우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눈물은 바로 그 세 번째 눈물입니다.

1. 예수님은 왜 통곡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성을 보시고 우시는 것은 성에 들어가셔서 겪으실 고난 때문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이 맞게 될 심판 때문입니다. 지금 표면적으로 보면 예루살렘 성은 더 할 것 없이 평화롭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실 때는 그들이 붙들고 있는 어느 것 하나 그들을 심판에서 건져내지를 못함을 보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통곡하신 이유에 대하여 대개 이렇게들 말합니다.

흔히 이 구절을 주 후 70년경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함락되는 것과 연결하여 이해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 성이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이미 하나님을 떠난 상태이며, 이 상태는 예수님이 성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선포하신다고 해도 변화될 수 없을 만큼 너무 강퍅해져 있기에 성의 멸망은 이미 정해진 하나님의 뜻이며, 따라서 어찌할 수 없는 예루살렘 성의 형편을 바라보시며 우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성으로 들어가시는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예루살렘 성의 백성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40여 년 후에 주 후 70년에 있을 예루살렘 성의 운명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지 못함으로 인해 자신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게 되는가이며, 그것이 그들의 운명을 영원한 심판에 있게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성전만 붙들고 있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의 통곡이며 탄식의 눈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유대인들은 평화에 관한 일을 몰랐습니다.

유대인들은 평화에 관한 일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가 아니라 원수 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된 이유가 예루살렘성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한 신앙생활은 그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에서의 제사를 자기 의로움으로 삼았습니다. 죄 없는 제물의 희생이 자신들을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에 있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열심히 제물을 바치는 자신들의 행위가 의로움이 되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그로 인해서 복을 누리며 잘살게 되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의 우리 기독교인들이 빠져있는 착각인 겁니다.

3. 예수님은 평화의 일을 이루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에 관한 일을 알게 하시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심과 동시에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곧 평화의 본질임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에 굳게 자리하고 있는 성전은 철저하게 무너져야 하고, 대신 참 성전이신 예수님의 피가 세워지는 것만이 하나님과의 평화에 있게 되는 길임을 나타내시는 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심으로 이루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화목제물로 오신 예수님만이 나의 의로움이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평화에 관한 일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눈에 숨겨져 있던 평화의 일이 십자가로 인해 드러났습니다. 평화의 일은 더 이상 숨겨진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전히 숨겨져 있는 것처럼 평화에 관한 일을 알지 못하고 유대인처럼 보이는 것을 붙들고 그것으로 자기 신앙을 지탱하고자 한다면 결국 무너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로 모여서 무엇을 하든 확인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의 눈에 보이고 행하는 그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에 있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확인할수록 평화를 이루시기 위해 오시고, 평화를 이루신 예수님의 의로우심만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내 믿음은 아무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시고 의로움이라는 것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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