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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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1년 6월 13일 신자가 바라보아야 할 세계(눅 17:1-4) 조회수 : 352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1-06-15

본문은 드러난 내용만 보면 용서의 덕목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용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귀한 가치를 지닌 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아무 문제없는 교회됨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문제 있음을 인식하는, 즉 자신에 대해 눈이 열리는 것을 지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1. 인간은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넘어지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인간관계 안에서 다른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필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것을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 라고 하실 정도로 아주 중대한 문제로 말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자 중 하나의 실족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작은 자라고 아예 설정해 놓고 있기 때문에, 이 작은 자를 대함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중요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이 작은 자의 가치를 쓸모없는 자들로 간주했습니다. 이것은 작은 자를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지요. 이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세상에 없어도 되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2. 천국은 죄를 용서 받은 자만이 들어갑니다.

앞에서 말씀해 온 것처럼 예수님이 말씀한 작은 자는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잃은 드라크마 하나” “돌아온 탕자” “거지 나사로로 비유하여 이야기를 하셨던 겁니다. 다시 말해서 작은 자는 세상의 시각과 기준에서 볼 때 무시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작은 자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작은 자를 무시하고 실족하게 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늘 타인을 세상과 동일한 기준과 시각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교회로 모였다고 하면서도 이 기준과 시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천국은 죄를 용서 받은 자만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모든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은혜만이 높임 받습니다. 이런 점에서 죄인의 회개는 자신의 죄를 보면서 용서 받을 자로 주께 나오기 때문에 예수님의 용서만을 높이게 되지만, 의인 아흔아홉은 회개할 것이 없을 정도로 그 행위가 완벽했기에 용서가 아닌 자신의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간다고 여길 뿐인 것입니다.

3. 모든 인간은 용서 받아야할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은 용서 받아야 할 존재라는 뜻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본성은 나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형제의 죄에 대해 경고할 것을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야하는 신자의 세계가 어떤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용서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 모인 것이 아니라 용서를 아는 사람이 모인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일곱 번 죄를 지었다고 해도 회개한다면 그 모든 죄가 용서되는 것이 예수님의 세계입니다.

천국은 용서 받은 사람만이 모인 곳임을 기억하십시오, 따라서 여러분이 천국 백성이라면 그것은 자기의 죄를 알고 회개한 자로 예수님께 나왔음을 의미한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이처럼 우리는 용서의 세계에 들어와 있고, 용서를 증거 하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용서보다는 갈등을 그대로 유지한 채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용서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용서로 살고 있습니다. 즉 우리 모두가 용서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시각은 예수님의 세계와는 맞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회개해야 할 죄인으로 함께 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주님의 용서의 능력이 우리를 용서하는 관계로 세워 가실 것입니다. 그 용서 안에서 천국을 바라보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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