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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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1년 4월 11일 높은 자리 그리고 낮은 자리(눅 14:1-11 신, 119) 조회수 : 371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1-04-29

또 다시 예수님과 바리새인 사이에 안식일 문제가 불거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곧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행하심이며,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한 진정한 의미의 안식일이라는 거지요.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안식일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1. 안식일에 대한 바리새인의 문제

본문의 1절에 안식일에 예수님이 한 바리새인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수종병에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수종병자를 고쳐 보내신 후에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5)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답을 못합니다. 답을 못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타당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에 대해 잘못 생각했습니다.’라고 인정하고 생각을 바꾸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안식일에 대한 생각을 바꿀 의도가 없었기에 단지 잠잠히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안식일 등의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자신들의 신앙 정당성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고, 유대인의 규례를 성실히 잘 지킨다는 것으로 신앙의 권위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또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안식일 규례로 인한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충돌은 단순히 안식일에 병을 고쳐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본질의 차이로 인한 충돌임을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이들에게 수종병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가 겪는 고통 역시 관심 밖입니다. 그의 고통 보다는 자신이 지키고 있는 규례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통 받는 수종병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신을 권위가 있고 높은 자로 여겼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청함을 받았을 때 앉을 자리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는 겁니다.

2.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를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왜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할까요? 혼인 잔치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입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이 주인공이 아닌 거지요. 그러므로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이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돋보이고자 하고 영광을 받고자 한다면 그는 신랑 신부의 영광을 가리는 하객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혼인 잔치보다는 자기 영광에 마음을 둔 자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는 말씀은 혼인잔치에서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잔치 그 자체이고 신랑 신부이지 너 자신이 아니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어떤 모임에서 사회적 지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석에 앉기를 거부하는 겸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서의 자리는 잔치 주인이 정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즉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를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3. 자기를 낮춘다는 것

바리새인은 자기 영광을 위해 안식일을 지킨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기 영광으로 가득했습니다. 자신이 수종병자처럼 고침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자신들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자로 보았을 뿐입니다. 사람은 자기 영광을 추구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조차 자기 인격과 신앙을 보여주고자 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이 인격이 훌륭하고 신앙적인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을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한 본성이 십자가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로 모이는 것은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을 알고 배우기 위해서잖아요? 기존에 우리가 살았고 접했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부름 받았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여러분 자신의 영광은 전혀 관심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예수님의 영광의 세계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최고의 관심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기 영광,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 마음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늘 자기 영광을 세우려고 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트집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예수님에게만 마음을 두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로 기뻐하며, 예수님 때문에 세상에서 어떤 자리에 있어도 감사하게 되는 그 사람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 높은 자로 여김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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