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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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1년 3월 7일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눅13:18-21 신,117) 조회수 : 411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21-03-10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 ‘하나님 나라는 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그 겨자씨는 곧 자라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하나님 나라를 또 무엇으로 비유할까?’ ‘어떤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섞어 반죽을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 본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1. 예수님은 겨자씨와 누룩으로 하나님 나라를 비교하여 말씀합니다.

아주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나중에는 새들이 깃들어 쉴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무가 되고, 아주 적은 분량의 누룩이 가루 서 말이라는 많은 양의 반죽을 전부 부풀게 한 것을 하나님 나라로 비유한 것입니다. 가치적인 면에서 본다면, 겨자씨나 누룩은 아무것도 아닌 볼품없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존재가치성으로만 본다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한 도구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사람들의 인식 안에서 가치 없는 것, 더러운 것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바리새인이나 회당장과 같은 사람에게는 가치 없고, 더러운 사람들이라고 규정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소위 그 시대의 죄인들인 거지요. 어쩌면 우리들 역시 하나님 나라는 그런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구분하는 의식이 살아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나라는 믿음이 좋은 사람만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 교회로 모이는 지체들을 바라볼 때도 누가 믿음이 좋고 누가 믿음이 나쁜가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 ‘하나님 나라는 누룩과 같다는 말씀을 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믿음의 세계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회당장은 허리가 굽어 18년 동안이나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여인의 병을 고쳐준 예수님의 일을 겨자씨 한 알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안식일 규례를 지키는 것을 더 거룩하고 믿음 좋은 일로 여긴 것입니다. 여인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고, 그 고통에서 자유롭게 한 예수님의 일이야 말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이 담겨 있는 위대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볼 수 있는 눈이 회당장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회당장은 예수님의 일을 안식일 규례를 어기는 죄로 여겼습니다. 어쩌면 당시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을 위험인물로 감지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어떠한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런 쓸모도 가치도 없어 보이는 말 그대로 겨자씨 한 알일 뿐입니다. 그 까짓것 내 손에서 없어진다고 해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겨자씨 한 알은 큰 나무라는 본질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이 겨자씨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누룩도 다르지 않습니다. 누룩이 가루 서 말과 분리되어 있을 때는 누룩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루 반죽에 누룩이 섞여 가루가 부풀게 되면 더 이상 누룩과 가루를 분리하여 볼 수 없습니다. 이미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라면 하나님의 나라인 믿음의 세계를 우리의 기준과 가치관에 따라 거룩하고 더럽고, 크고 작다는 것으로 구분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3.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과연 무엇입니까?

겨자씨나 누룩의 결과에만 초점을 두고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더러 큰 나무가 되고 밀가루를 부풀게 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눈에 보인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본질도 아니기에,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말 것을 말씀하는 것임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하나님의 존재 양식과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 가장 작고,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계십니다. 주님은 마구간 말구유에 누이셨지요? 가장 낮은 곳이 가장 높은 곳이요. 작은 것이 곧 가장 큰 것이기 때문이라는 반대의 일치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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