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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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0년 12월 6일 등불의 빛 (눅11:33-36 신,112) 조회수 : 410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20-12-08

본문의 등불 이야기는 지난주에 말씀드린 요나의 표적 이야기와 연결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33) 는 구절을 보면 등불은 집을 환히 비춤으로 집으로 들어가는 자로 하여금 빛을 보게 하기 위한 용도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등불 이야기는 마태복음에도 등장합니다. 마태는 무엇을 보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 마음 또한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 참된 보물을 보물로 여기고 바라볼 수 있는 눈이 곧 등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누가복음의 본문은 무엇과 연결되어 있을까요?

누가가 말하는 등불은 표적에 대한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무엇을 참된 표적으로 바라보느냐로 눈의 성함과 나쁨이 구분되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고 말합니다. 몸의 등불이 눈이라는 것은 눈이 스스로 빛을 비췬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비취는 등불의 빛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뜻합니다. 외부에서 비취는 등불의 빛이라 함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을 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눈으로 목격했느냐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표적을 구하고 기도 응답을 통해서 재물이 손에 쥐어지기를 원하는 것은 결국 자기 몸을 위해서입니다. 병 고침도 몸을 위해서고 재물도 몸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이처럼 자기 몸을 중심에 두고 표적을 구하고 재물을 구하는 것이 곧 세상이고 이러한 세상을 악하다고 보시기 때문에 표적을 구하는 것을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눈이 성하다면 예수님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누구시고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는 분인가를 보게 되면서 예수님 앞에 자신의 몸은 더러 울 뿐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비취시는 빛은 우리에게서 회개를 이끌어 냅니다. 우리의 더러움을 보게 하시며 더러운 자로 예수님 앞에 나오게 하시고 나의 더러움을 고백하며 예수님의 의를 구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비취시는 빛을 받아들이며 그 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회개하는 것이야 말로 눈이 성한 것이고 이것을 온 몸이 밝은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리고 온 몸이 밝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추시는 빛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어두운 우리의 눈을 성하게 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이 비추시는 빛을 바르게 받아들임으로써 그 빛으로 자신의 악함을 보게 하며 회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방 여왕과 니느웨 사람이 심판 때에 이 세대를 정죄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빛을 비추셨음에도 불구하고 굴복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것이 곧 어둠에 속한 세상이고 심판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 안에서 기적을 체험하고 재물을 모으고, 기도가 응답되어 예배당을 지었다는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의 더러움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이방인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35)고 말씀하지만 빛이 어두울 수는 없습니다. 참된 빛은 분명 밝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빛이 어둡다면 그것은 빛이 아니라는 의미가 됩니다. 빛이 아니기에 온 몸을 비추지를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몸의 더러움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빛 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어둠의 길에 있을 뿐입니다. 그 어떤 기적을 체험했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죄를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재물이 있다면 재물을 손에 쥐고 죄에서 허우적거릴 뿐입니다. 이 같은 더러움을 보게 하는 것이 등불의 빛입니다. 눈이 성해서 이 빛을 받아들이게 된 신자는 회개하며 십자가의 은혜를 증거 할 뿐입니다. 이 빛 안에 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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