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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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0년 11월 8일 누가의 주기도문, 어떤 뜻일까? (눅11:1-4 신,111) 조회수 : 430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20-11-11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내용으로 눅11:1-4 과 마태복음 6:9-13 에 기록되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당시 유대인들의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기 위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신 내용으로 소개하고 있는 반면에, 누가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 같이 저희에게도 가르쳐 달라는 한 제자의 요청에 의해서 가르치신 기도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의 주기도문은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에 비해 내용이 많이 생략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지만 예수님께서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는 의도가 이 내용대로 기도해야 참된 기도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기도문이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가를 아는 것에 있는 거니까요..

1. 제자들은 왜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까요?

한 제자가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 것은 세례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이 이유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요한의 제자들이 있었다면 이들은 하나의 세력이 되어 예수님의 제자들과 암암리에 경쟁하면서 서로 견제하는 관계에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예수님의 제자들로서는 요한의 제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것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지고 싶지 않은 경쟁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스승인 요한에게 기도를 배웠다면 자신들보다 기도를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요한의 제자들보다 기도를 못하다는 말을 듣기 싫은 마음에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이것은 분명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온전한 모습은 아니며, 세상에 보냄 받은 제자로서 바른 생각도 아니므로 예수님은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하여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자라는 것을 가르치기를 원하셨던 겁니다.

2. 세상과 다른 나라가 있음을 알게 하시려고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서 거룩히 여김 받을 이름은 오직 아버지의 이름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자기의 행적과 업적을 가지고, 자신의 죄를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는 늘 저주 받을 자의 이름에 불과할 뿐인 거지요.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면 무엇보다 자신의 죄인 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이 없고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요한의 제자들과 경쟁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 나라에 속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게 하심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속한 나라는 세상과 다름을 알게 하시고, 기도를 배우고자 하는 그들의 의도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나라에 합당하지 않음을 알게 하시는 겁니다.

3. “우리의 관계를 알게 하시려고 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라는 기도에서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우리라는 관계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요한의 제자들을 우리라는 관계가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로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나와 너의 관계로 바라보기 때문에 더 낫고 잘해야 한다는 경쟁심이 있게 되지만 우리라는 관계 안에서는 경쟁과 높고 낮음이 없는 겁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의 우리의 관계가 깨어지고 인간 또한 나와 너라는 독립적 관계에서 서로 경쟁하고 미워하는 관계로 전락되었고 예수님의 오심은 바로 깨어진 이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친히 화목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심으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하셨고 나와 너로 깨어진 관계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관계가 되게 하신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이고, 이러한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할 도구로 세워진 것이 교회이며 우리 신자들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우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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