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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0년 5월 31일 예수님과의 만남(눅7:11-17, 신 101면) 조회수 : 478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20-06-05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으로 모인 우리에게 과연 예수님으로 인해서 바뀐 것은 무엇인지, 또한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발생한 사건이 어떤 것인지를 오늘 이야기를 통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나인 성으로 들어가시던 예수님이 장례행렬을 만납니다.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신 예수님이 제자와 많은 무리가 함께 동행하는 가운데 나인이라는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런데 성문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마침 성에서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는 장례행렬의 무리들을 만나게 되십니다. 그리고 14절에 보면 죽은 사람은 안타깝게도 젊은 청년인 것을 알 수 있는데, 문제는 그 청년은 과부의 독자였다는 것입니다. 그 과부에게는 이 아들이 전부였고, 그 아들이 힘이었으며, 그 아들이 인생의 유일한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죽었으니 이 과부에게는 슬픔이라는 단어를 초월하는 극한 슬픔과 함께 인간의 극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절망적인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난 장례행렬은 바로 이런 상황의 행렬이었습니다.

2. 그러면 본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자식의 죽음 앞에서 슬픔과 절망에 빠진 과부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려면, 오직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밖에 그 무엇도 과부의 마음에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과부에게 울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울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말씀은 울 필요가 없는 상황을 전제하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아들을 살리실 것이기 때문에 사실 예수님을 만난 과부는 더 이상 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부는 아직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아들이 죽은 현실만 생각하니 눈물만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과부가 예수님을 만났으면서도 그 만남의 의미가 무엇인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독자 아들이 죽었다는 현실에만 매여서 울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3. 다만,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16절에 보면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는데 왜 두려움이 있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을 경험하게 되면 기뻐하고 찬송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면 기뻐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찬송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앞에 일어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했을 때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크심 앞에서 자신은 한없이 작은 먼지와도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크심을 깨달았을 때 큰 두려움과 함께,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신다는 사실에 기쁨과 함께 찬송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예수님을 만난 신자입니다.

4. 여기서 우리는 만남의 중요한 의미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 과부를 슬픔과 절망에서 구원했고, 아들은 죽음에서 건졌으며, 함께 한 무리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찬송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자의 세계입니다. 믿음은 추상적 관념으로만 머물 수 없습니다. 추상적 관념에만 머문 믿음에서는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신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현실만 바라본 채 과부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슬퍼하고 우는 것만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도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우리에게 일으키신 그 기적의 일이 함께 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영원한 멸망의 죽음에서 일으키신 십자가의 보혈로 인한 생명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보시기 바랍니다. 나인 성에서 나오는 장례 행렬이 우리의 인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시고 만나주심으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생명의 기적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송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만남 안에 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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