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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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0년 5월 3일 무엇이 복 있는 삶인가? (삿18:21-31, 구 394면) 조회수 : 470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20-05-06

오늘 본문은 자기 욕망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활동하는 단 지파의 구체적인 모습이 보여 집니다. 단 지파는 단 지파대로 자신들의 형통함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신상과 제사장까지 뺏습니다. 다른 사람이 복을 받든 못 받는 관계없이 우리 일이 형통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속셈입니다. 즉 남의 복을 가로채서라도 내가 형통한 삶을 누리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래서 단 지파는 제사장과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강탈하여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24절에 보면 "미가가 이르되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고 하느냐" 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미가가 단 지파를 향해 따지고 있는 말 속에서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이라고 말한 것을 통해 신에 대한 미가의 사고방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미가는 단 지파에게 신들과 제사장은 나의 소유라고 주장합니다. 내가 만든 신들이고 내가 데려온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에 대한 미가의 사고방식입니다. '내가 만든 신들' 이라는 말은 결국 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내가 만든 신들이라는 것은, 나를 위하지 않는 신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은 스스로 얼마든지 신을 선택하고 또한 버릴 수도 있다는 사고방식이기도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단 지파나 레위인, 미가는 모두가 동일한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욕망의 정체는 자신의 성공입니다. 내가 잘 되는 것, 이 욕망은 사람의 관계에 단절을 가져옵니다. 단 지파, 레위인, 미가, 이들 모두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 아래 있는 형제요 동족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보여 진 것은 형제가 아닙니다. 서로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투쟁하고 싸우고 이득을 챙기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미가는 단 지파가 자신의 제사장과 신상을 가져간 것에 대해서 분노합니다. 그리고 이웃 사람을 모아서 그들을 쫓아갑니다. 그러나 단 지파는 힘으로 미가를 눌러 버립니다. 결국 사람이 만든 신은 힘 있는 자의 소유가 되고 만 것입니다. 레위인은 힘이 없는 한 개인의 제사장이 되기보다는 힘이 많은 한 지파의 제사장을 원했습니다. 단 지파는 힘으로서 미가의 제사장을 뺏습니다. 미가 역시 힘을 모아서 자기 것을 찾으려 했지만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의 것을 포기합니다. 결국 동일한 욕망에서 동일하게 보여 지는 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왕이 없는 이스라엘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그리고 사사기라는 망국의 역사서를 기록하고 있는 사사기 기자는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살다가 우리가 망하였나이다. 라고 통회의 심정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왕으로 섬김이 없기 때문에 각자 자기가 중심의 왕이 되어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생각대로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남을 위해서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존재할 뿐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는 하나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생각과 손으로 만들고, 자신이 선택한 자신의 신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자기 포기에서 출발합니다. 자기 포기가 없는 신앙은 신앙일 수 없습니다. 다만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한 집착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결코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다만 외부에서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자신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포기의 길을 가지 않는 한 우리는 신앙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은 보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십시다. 우리는 과연 참된 복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지,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닌 하늘나라에서의 성공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지, 과연 우리들이 생각하는 삶의 기준은 무엇인지 분명한 답을 내려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잘됨이 아닌 하늘나라에서의 잘됨을 염두에 둔다면 참된 삶의 기준이 세워질 것입니다.

그 기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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