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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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0년 4월 26일 복과 화를 선포하시다(눅6:20-26, 신 98면) 조회수 : 483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20-04-28

작금의 코로나-19로 인한 환란도 분명히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섭리와 경륜이심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가다듬어 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삶에서, “예배의 영광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의 앞 단락에 나오는 누가복음 618절과 19절을 보니,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병 고치는 능력이 예수님께로부터 나오니, 예수님을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온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오늘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복 있는 자와 화가 있을 자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 내용이 굉장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세상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전통과, 인간의 상식과, 기대와 소원, 그 모든 것을 몽땅 뒤 엎어 버리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가난과 주림, 즉 빈곤이 복 있는 것이고, 부요가 화 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신 이사야의 글과 연관이 있으며 메시아 취임사라고 일컫는 이 말씀대로 한다면,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는 뜻이 되고, 예수님이 오신 지금 그 일이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신 은혜의 나라는 가난과 부요가 기준이 되어 차별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의 나라는 소유와 업적으로 대우 받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의 의로 말미암아 주어진 생명이 있는 모든 사람이 크다 인정함을 받습니다. 자신이 이룬 업적이 있어야 인정받는 나라도 아니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어야 크다고 대접 받는 나라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세상의 기준으로부터 우리를 해방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은혜 아래 있게 하셨기에 가난한 자들에게 예수님이 복음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624절로 26절에서,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24-26)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자가 이 말씀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의미에 대해 고민을 했다면, 적어도 예수님은 내가 부요해 지기 위한 목적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예수를 믿으면 부요해지고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성경은 덮어 버리고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을 따라 교회가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여러분, 바로 이런 것이 화 있을진저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하셨다면, 신자는 가난한 자가 되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가진 것이 없고 힘으로 내세울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참된 힘과 능력이 되시는 분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생명에 들어가게 하실 수 있다는 복음 앞에서 세상의 모든 힘과 능력은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복음이 아닐 수 없는 거지요. 반면에 가진 것이 있어서 그것을 자기의 힘과 능력을 삼고 자랑하는 부요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복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이 말씀한 가난과 부요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힘과 능력으로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상태가 가난이고, 반대로 내세울 것이 많은 힘과 능력이 있는 상태가 부요인 것입니다. 힘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복으로 여기며, 그 복으로 위로를 받고 웃으며 살았기에 천국에서의 위로와는 상관이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복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십자가의 세계로 이끌어 가십니다. 십자가의 세계에서 인간이 가졌다고 하고 힘과 능력으로 여기는 것들이 생명의 문제에서 얼마나 무능력하고 허망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지요. 우리가 힘으로 여기는 것들을 하나하나 무너지게 하셔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로 예수님 앞에 세우시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가난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세상의 것으로 배부름을 얻고 기뻐하기 위해 예수를 찾지도 그 이름을 부르지도 않습니다. 다만 나를 가난하게 하시고, 주리게 하시고, 울게 하시고, 예수님으로 인해 미움 받고, 욕먹고, 버림받는, 복된 사람으로 만드실 예수님을 찾고 이를 위해 그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자 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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