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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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0년 2월 16일 신자답다는 것 (눅5:33-39, 신 97면) 조회수 : 581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20-02-18

오늘은 자신만을 바라보며 자기가 중심이 된 신앙생활,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신앙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며 여느 사람들보다 뛰어난 신앙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만큼 이들의 신앙생활과 종교적 열심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들의 그 같은 자부심과 자신감은 오히려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었을 뿐이었고,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자기 신앙에 자부심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복음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들이 바리새인들이었고 율법학자라 하는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세리인 레위가 베푼 잔치 자리에 죄인들과 함께 하신 것을 보고 제자들을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는 말로 비방을 합니다. 이들은 죄인들과는 함께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거룩한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그들은 자신을 거룩한 의인으로 여기고 있음을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1. 의미가 아닌 형식에 치우침

금식의 문제로 비방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34,35)고 말씀합니다. 안식일이든 금식이든 하나님이 세우신 규례 중의 하나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고 금식하고 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행하라고 하신 의미를 알지 못하면 내용은 사라지고 껍질만 남는 것이 되지만 바리새인들은 내용보다는 껍질을 중요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복음에 어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분명 자신을 바라보는 식의 신앙의 문제점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복음과 행함

여러분, 복음에 어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복음에 어울리는 것은,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자기 죄에 대한 고백과 함께 모든 죄를 대신 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생명을 얻게 된 것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오직 예수님의 행하심만을 증거 할 뿐 인간의 행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만약 복음에 가치 있는 인간의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면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도 가능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복음이 아니며 다른 종교의 경전과 다를 바 없는 거지요 36절에 보면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새 옷과 낡은 옷을 대비하여 말씀하고, 37,38절에서는 낡은 가죽부대와 새 포도주가 대비되어 등장합니다. 낡은 옷, 낡은 가죽부대를 율법에 치우친 유대주의로 생각하고, 새 옷 새 포도주를 예수님의 교훈, 즉 복음으로 생각해 본다면 복음은 유대교의 율법적 교훈과 함께 할 수 없고, 또 어울리지도 않는 것임을 의미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묶은 것이 좋은 이유

그런데 39절에서 예수님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는 말씀이 마치 새것보다는 묵은 것, 옛것이 좋다는 의미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새 교훈, 즉 복음이 옛 것보다 좋지 않다는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도주는 오래 묵어 잘 숙성된 것이 맛있다고 합니다. 오래 묵을수록 맛있는 포도주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에 새것은 당연히 오래 된 것보다 맛이 없다는 생각으로 멀리하는 인간의 습성을 빗대어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오래된 포도주가 맛이 있느냐 새 포도주가 맛이 있느냐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묵은 포도주가 낫다는 생각에 붙들려서 새 것을 배척하는 유대교의 형식주의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교회 안에는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것보다 자기 실천으로 누리는 쾌감과 즐거움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주의 은혜의 해를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 오셨고 또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은혜의 나라에 어울리는 것이 자기 실천을 내 세워서 타인을 비방하고 무시하는 것인지, 또한 자기 자랑과 자기 우월을 나타내는 것인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 받습니다. 우리의 행함은 보지 않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 어울리는 신자의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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