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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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12월 22일 예수님의 권위 (눅4:31-37, 신 94면) 조회수 : 586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20-01-02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똑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반응은 각기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1. 권위와 권위주의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권위가 무엇인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권위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생각이 걸림돌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시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결국 자기를 목적으로 하는 귄위주의에 빠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권위를 세상을 다스리는 힘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권위에 대한 왜곡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왜곡된 생각은 마귀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천하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와 영광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누구든 이러한 권위와 영광을 얻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것은 곧 마귀에게 장악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회당에 있던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34) 라고 크게 소리 지릅니다. 귀신은 예수님께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을 멸할 수 있는 분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말합니다. 귀신의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정확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말로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합니다.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고, 우리를 멸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해도 우리에게 당신은 필요치 않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 없이도 우리 힘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살아가는 방식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을 굴복시키고 쫓아내신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굴복하는 것으로 그 권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교회는 말씀의 권위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귀신을 굴복하게 하는 말씀으로 증거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의 권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권위가 권위로 증거되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이 말씀 그대로 증거되는 일에 모든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교회됨이며 교회의 권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인의 규모에 상관없이 오직 예수님의 말씀이 바르게 증거됨으로써 귀신이 굴복하고, 말씀에 복종하게 되며 하나님께로 돌이킴을 받게 되는 것이 교회의 참된 권위인 것입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현대 교회는 권위 상실의 위기에 직면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힘을 가지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을 가지는 것으로 교회의 권위를 나타내려고 하고, 목사 또한 교회를 부흥시킴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참된 권위가 상실된 위기인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성취해 나가는 일에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 예수님과 상관없이 자기를 위해 살고자 하는 것이고, 이것이 귀신 들린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목사도 그 권위는 예수님의 권위의 말씀을 자기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바르게 전파하는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외적인 조건을 힘으로 여기고 그 힘을 자신의 권위로 삼고자 한다면 그것은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고 그것이 곧 귀신에게 장악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예수님께 순종하게 하고, 내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목적으로 하는 길로 가게 함으로써 그 권위를 드러내고, 우리는 그 같은 말씀의 권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애당초 우리는 자기를 목적으로 한 채 나의 이익을 위한 길로만 달려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를 굴복시키고 예수님께 목적을 두게 하는 것이야 말로 능력이며, 말씀의 참된 권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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