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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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12월 8일 희년의 복음 (눅4:14-21, 신 93면) 조회수 : 588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12-10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에 이끌리셔서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지만 시험을 이기시고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시험을 이기시고 마귀를 물리치셨다는 것은 이제 메시아의 길을 가실 때가 주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때가 되었으매 예수님이 메시아의 사역을 시작하는 선언문과 같은 것이며 현대식으로 말하면 취임식과 같은 일이고 본문은 메시아 취임사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취임사 내용은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은혜의 해는 다른 말로 하면 희년을 말합니다. 희년을 이해하려면 안식법 제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61:1-2) 읽음으로써 예수님이 곧 선지자가 예언한 일을 이루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의롭다 칭함 받으며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해 이같이 답할 것입니다. 또한 이 같은 사실을 믿는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가 현재의 삶에서 누리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는 것입니다.

1.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예수님은 소외 계층을 돕기 위해 일하신 사회운동가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가난한 자에 대해 생각해 보면, 가난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그 삶이 황폐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돈이지만 예수님은 복음을 전한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복음이 해결책이 되는 가난이라는 뜻이 됩니다. 복음으로 인해서 벗어나게 되는 가난이라면 그것은 말씀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포로 된 자도 전쟁에서 패배하여 승리자에게 붙들린 상태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죄에 결박되어 끌려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에 결박되어 끌려가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죄로부터의 자유는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죄의 삯인 사망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말합니다. 즉 신자는 더 이상 죄에 결박되어 사망으로 끌려가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란 것입니다. 눈 먼 자도 신체적 소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이 눈이 먼 것입니다. 신자가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다면 보이는 세계에서 자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눌린 자는 당시 노예와 같은 상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노예는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신을 누르고 있는 주인의 뜻과 생각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싫은 것도 해야 합니다. 자기의 주체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삶이 그처럼 자신이 처한 환경과 형편에 의해 눌린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2. 복음은 자유입니다.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는 오늘 우리 자신을 의미합니다. 자유하지 못하고 뭔가에 붙들려 끌려가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표현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처럼 자유하지 못하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무엇인가에 붙들리고 보지 못하고 눌려 살아가면서도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자유에 대한 갈급함이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유케 하는 예수님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들이 자유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자유에 대한 갈급함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유케 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에 대한 얘기는 관심에서 멀어질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19절에 보면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자유가 은혜의 해에 일어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해에 일어날 자유하게 되는 사건은 희년을 의미합니다. 레위기 25장에 등장하는 희년은 안식일이 일곱 번 지난 다음 해, 50년이 되는 해를 말합니다. 희년이 되면 종들이 해방되고 가난 때문에 팔았던 땅도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각기 수에 따라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을 때의 상태의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신자가 희년의 규례대로 행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희년의 복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아래서는 종도 자유를 얻습니다. 희년의 복음은 말 그대로 자유입니다. 법에 매이지 않은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는 이미 실현되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자유보다는 예전의 습성대로 뭔가에 붙들려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 문제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짐을 지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쉼을 얻게 하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희년의 복음은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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