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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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11월 10일 물세례 그리고 성령세례 (눅3:15-22, 신 92면) 조회수 : 531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11-20

요즘 사회에서 회자되는 말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의 하나가 공평과 정의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세상은 참 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누리고 있는 공기와 나이가 먹으면 늙는다는 것과 그리고 인생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사망이라는 문제가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이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의 문제이며 이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1. 물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요단강에서 베풀어 진 것으로 세례자를 요단강 물속에 잠기게 하였다가 다시 나오게 하는 지금 식으로 말하면 침례의 방식으로 치러진 의식이었습니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다시 나오는 것은 죽음에서 건짐 받은 새로운 생명의 삶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요한의 물세례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죽음과 생명을 의미하는 상징적 의식일 뿐이지 실제로 죽음에 처한 인간을 건지는 구원의 사건은 아닙니다. 만약 요한의 물세례가 실제적인 구원의 사건이었다면 예수님이 오실 이유는 없을 것이고, 세례의식만 행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을 말하면서 예수님의 세례가 능력이 있음을 증거 합니다. 따라서 요한은 자신의 물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이 오셔서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줌으로써 요한이 혹시 그리스도인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신 분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2. 성령세례

요한이 물세례와 성령세례로 구분하여 말하는 것은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행동의 변화가 아닌 존재의 변화입니다. 존재의 변화는 죄를 이기는 자가 되어서 죄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세력, 사탄,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가능한 존재의 변화이며 신앙세계의 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앞에서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공평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적 문제로 파고 들어가면 모든 인간은 공평합니다. 신자는 성령으로 인해서 이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눈이 열리게 되는 것이고, 인간을 이 문제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요한이 말한 성령 세례의 의미입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되면 누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가?’로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3. 쭉정이

17절에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세상 마지막에 하나님이 행하실 심판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심판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 안은 쭉정이로 가득합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오셔서 태우시며 알곡만 남게 하셔서 곳간에 들이시는 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베푸신 성령세례입니다. 성령세례로 말미암아 우리 속의 쭉정이가 태워지며, 생명이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게 되는 구원사건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이르면 신자는 생명의 알곡으로 드러나 곳간에 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약속으로 받는 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신자가 성령세례에 담긴 이 약속을 알고 믿는다면 표면적인 문제가 마치 삶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생명의 문제가 가장 중요함을 알고 모든 인생을 생명의 길을 가는 데에 집중하겠다는 분명한 결단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세례를 받은 신자의 신자 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은 항상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공평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이러한 세상에서 주님이 오실 때까지 예수님이 가신 길이 곧 생명의 길임을 알고 그 길로만 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살든 신자는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볼 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승리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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