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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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10월 27일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눅2:40-52, 신 91면) 조회수 : 563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10-30

누가는 복음서 중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열 두 살 되던 해에 유월절이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절기의 관례를 따라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선생들과 함께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셨는데 듣는 자가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겼다고 말합니다. 절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예수가 없는 것을 알게 된 요셉과 마리아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사흘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놀라며 마리아가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48)고 하자 예수님이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내십니다.

1. 구원과 인간적 조건

누가는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인도함을 받고 아직 아기에 불과한 예수님을 구원자로 바라보게 되는 모든 일들이 주의 사자와 성령의 역사, 즉 하나님의 주관 아래 되어 진 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가 성령행전이라고 일컫는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을 생각해 보면 누가의 의도는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가고 구원의 길을 가게 되는 모든 것이 오직 성령의 역사로 되어지는 것임을 증거 하고자 하는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2. 자라며 강하여지고

우리는 성령이 없이는 예수님을 알 수 없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길 또한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어린아이 같은 존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성령이 함께 하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충만함으로 역사하시면서 마치 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이 자라게 하시고 더욱 강하게 하시고 지혜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신 그 길이 곧 나의 갈 길임을 알게 하시고 다른 길에는 마음을 두지 않게 하십니다. 이것이 강한 심령이고 성령이 연약한 우리를 이처럼 강한 심령의 신자로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가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 어린 시절의 예수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3. 내 아버지 집

어린 예수님은, 아들을 잃어버린 줄 알고 놀라고 근심하여 찾아다닌 요셉과 마리아에게 도리어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 라는 말을 함으로써 예수가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무지를 탓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인해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로 예수님 앞에 서 있는 것이 됩니다. 부모와 자식, 어른과 아이라는 인간적 조건의 관계가 아니라 메시아와 메시아를 알지 못한 무지한 자라는 관계에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입니다. 성전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자기 계시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내신 것이고, 장차 하실 일이 성전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4.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의 생각

요셉과 마리아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니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나사렛에 돌아온 후 모든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마음에 두지 않으면 말씀을 듣고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자라는 것이고 지혜의 충만 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하심으로써 이러한 신자로 자라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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