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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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10월 20일 시므온의 예수 (눅2:21-38, 신 90면) 조회수 : 610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10-24

예수님을 출산한 요셉과 마리아는 모세의 법, 즉 유대인의 율법대로 출산한 여인에 대하여 규정한 정결하게 되는 정결례의 규례를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안고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생애의 사역에서 분명 유대인의 규례에 매이지 않으셨고, 오히려 유대인의 규례대로 따르는 자신들을 정결한 자로 여기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1. 유대인과 시므온의 메시아관에 대한 차이

25절에 보면, 시므온에 대해 말하기를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는데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메시아가 오실 것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것은 당시에 유대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해서 그를 의롭고 경건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다윗 왕국의 영광이 재건될 것을 꿈꿨지만 시므온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전혀 새로운 세계로 인한 위로였습니다. 유대인들의 기다림의 목표는 지상천국이었지만, 시므온은 진정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렸기에 그가 목표한 것은 이 세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시므온의 구원관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29-32)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신다는 것은 이제는 평안히 죽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만남으로 주의 구원을 보게 되었고, 그로 인해 죽음 앞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시므온은 이 구원을 만민 앞에 예비한 것으로 말하며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찬송합니다. 이것이 유대교의 전통적인 구원관과 다른 것입니다. 시므온의 입에서 고백되는 메시아의 구원은 유대인을 넘어선 만민 앞에 예비 된 것이며, 메시아 또한 이방인의 빛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시므온의 놀라운 구원관입니다. 시므온이 이 같은 구원을 단지 갓난아이에 지나지 않은 아기 예수님에게서 보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시므온은 이 같은 구원의 세계를 기다렸기에 예수님을 만남으로 평안히 죽을 수 있다는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시므온의 평안은 아기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의 마음이 주의 구원으로 가득 채워졌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목표로 하며 살기에 오직 세상의 것으로만 그 마음이 채워질 수 있지만, 시므온은 이방인까지 어둠에서 구출하시는 빛으로 오신 구주를 기다렸기에 주를 만남으로 그 마음이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시므온의 평안입니다.

3. 시므온의 예수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었는지는 34-35절에서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는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시므온에게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저주가 되는 분입니다. 또한 비방을 받게 되는 표적이 되시는 분이고, 칼이 되어서 우리 마음을 찌르듯 하여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을 만남이 평안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평안은 내가 원하는 나의 세상을 마음에 두고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주께서 이루시는 세계가 우리의 소망이 되고 기다림이 되어야 예수님으로 인해 경험할 수 있는 평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축복을 경험하셨나요? 여러분, 분명한 것은 우리가 내가 원하는 그 어떤 세상을 마음에 두고 예수님에게서 그것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참 평안과 감사라는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두어야 하는 것은 이방의 빛, 어둠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뤄주신 세계입니다. 이 세계가 자신의 어둠을 알고, 그리스도의 속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충만이며, 이 충만으로 인해서 평안과 감사가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통하여 어떤 축복을 경험하셨나요? 어떤 평안을 얻으셨나요? 어떤 감사를 하게 되었나요? 우리 모두 내면의 대답을 찾아보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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