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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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9월 29일 복음의 장벽 (눅1:67-80, 신 88면) 조회수 : 518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10-01

누가가 그의 복음서에서 세례요한을 자세하게 그리고 중요하게 길게 다루고 있는 것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선교여행에 동행하면서 느낀 것이 있어서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흩어져 있는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을 메시아로 착각을 하며 믿고 있기 때문이었고, 그 영향으로 유대교를 따르는 경건한 헬라인들인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세례요한이 메시아로 인식될 만큼 중요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가는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이 주님이요 그리스도(메시아, 구속자)되심을 알리는 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데 사람들은 이미 세례요한을 메시아로 잘못 알고 믿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바로 잡지 않고서는 복음과 신앙이 바로 설수가 없겠구나. 라고 심각하게 생각한 겁니다.

누가는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복음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보게 된 것이었고 그 복음의 장벽은 의외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누가는 그의 복음서인 누가복음에서 먼저 세례요한의 문제를 자세하고 길게 다루면서 그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증거가 세례 요한의 부모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즉 그 부모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서 이것으로는 부족하니까 또 다른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임신한 두 여인이 만나고 있는데 예수님을 임신한 마리아와 세례요한을 임신한 엘리사벳입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임신한 몸으로 역시 늘그막하게 천사의 말대로 아이를 갖게 된 엘리사벳을 방문을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벳이 성령이 충만하여 찬양을 합니다.

(1: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1: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엘리사벳의 뱃속에 아기가 알아보고 있습니다. 너무나 황송하여 뱃속에 아이 세례요한이 기뻐서 뛰 놉니다.

그러면 세례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니면 누구냐? 세례요한이 탄생을 했을 때 아버지 사가랴가 부른 찬양 속에서 아들인 세례요한이 해야 할 사명을 언급합니다. (1:68-76) 사가랴의 아들 요한은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사명은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세례요한이 가리키는 분이 그리스도라는 거지요. 그래서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이분이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이시다.” 라고 외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주위에 몰려듭니다. 몰려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례요한을 그리스도로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의 걸림돌, 장벽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헤롯의 비도덕성을 지적하여 미움을 받게 됨으로 감옥에 들어가 목이 잘려 죽습니다. 세례 요한의 관심은 자신이 주님의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떻게 세례요한이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는 철저하게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광야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곳입니다. 광야의 삶은 세상적인 기대는 사라지고 오로지 하늘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곳입니다. 광야는 세례요한의 골방입니다. 지성소입니다. 자신의 골방과 지성소가 없다면 복음에 대하여 걸림돌이 됩니다.

누가복음의 말씀 앞에 서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세례요한처럼 각자의 광야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의 골방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통하여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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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에서 나눔을 위한 질문 **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만의 골방과 체험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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