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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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9월 8일 은혜를 받았다는 것 (눅1:26-38, 신 87면) 조회수 : 489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09-10

현대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름대로의 신앙의 환상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그러한 은혜와 힘과 위로를 주는 방편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린 이 같은 사실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은혜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요한을 낳을 것이라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식이 없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가브리엘의 말은 분명 기쁘고 좋은 소식이지만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그 어떤 은혜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가브리엘이 전한 소식 자체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브리엘로부터 잉태의 소식을 들은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동정녀 마리아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서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합니다. 처녀인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부터 그 인생 자체를 무너뜨리고 엉망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약혼은 지금과는 달리 결혼을 한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마리아가 잉태를 한다면 결혼이 깨어짐은 물론이고, 유대 사회로부터 지탄과 함께 간음하여 부정한 여인으로 정죄되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징벌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의 소식은 결코 좋은 소식일 수 없으며, 당연히 은혜와 평강을 주는 말씀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은 왜 마리아를 은혜를 받은 자라고 일컫는 것일까요? 우리가 마리아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육신적인 문제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해주는 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은혜에 대해 큰 오해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은혜를 주신 이유

마리아에게 말씀이 이루어짐으로써 장차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마리아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천사에게 묻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안전과 인생의 행복이 보장될 것을 약속받고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구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다만 자신을 도구로 삼아 세상에 오실 분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며, 다윗의 왕권을 가지고 오셔서, 야곱의 집을 다스릴 것이고, 그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을 바라봤을 뿐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이 말이 메시아에 대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오늘 신자 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신자라면 오직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구할 뿐이지,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이뤄지기를 구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은혜 받은 자의 삶입니다.

3. 은혜 받은 자

신자는 이미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잉태 소식을 전한 후에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잉태 소식을 전하기 전에 마리아를 은혜 받은 자로 일컫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리아가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한 도구로 작정되었을 때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신자가 은혜를 구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인생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의 길을 가기 위해 은혜를 구하는 것이야 말로 은혜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뭔가 잘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내가 잘되는 것이 없다면 믿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신을 찾는 이것이 우상입니다. 우리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님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영원히 사는 생명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이 나에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남은 우리의 인생에서 변함없이 말씀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한 길로만 갈 수 있도록 도우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의 길에 서 있는 것도 은혜 받음의 결과입니다. 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시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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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에서 나눔을 위한 질문 **

나눔) 우리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와 은혜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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