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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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9월 1일 말 못하는 자가 된 사가랴 (눅1:5-25, 신 86면) 조회수 : 598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09-03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우리의 모든 일을 이루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자질이 아예 처음부터 없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이 우리 중에 이루신 사실입니다.

누가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것을 토대로 하여 예수님을 증거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게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의 사건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믿음의 출발을 자기 자신에 두고 있으며 믿음의 과정도 그 결과도 모두 자신에게 달린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열심이고 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에는 하나님이 개입할 공간이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어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습니다. 이처럼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한 그들은 그 당시에도 물론이지만 지금도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칭송받기 충분합니다.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에 흠이 없이 행할 정도였다면 그 삶은 당연히 거룩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성전에 들어가 분향할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의 부인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을 예고합니다. 천사가 전하여 준 소식은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기쁜 소식에 대해 기뻐하지 않았고 천사의 소식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유는 자신도 아내도 나이가 많아 늙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할 정도로 주의 계명과 규례에 흠이 없이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제아무리 주의 계명과 규례에 흠이 없이 행하여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칭함 받을 정도가 된다고 해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뭔가를 지키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을 믿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15-17절에 보면 요한은 단지 사가랴 가문을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할 일이 있는 자로 보냄을 받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것이 그 무엇도 요한이 세상에 보냄 받는 일에 장애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늙었다는 자기 신체적 조건 안에서 천사의 말을 생각했고, 그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지 못한 이유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가랴에게 주어진 말은 20절 입니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사가랴가 말을 못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말을 못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지금처럼 단순히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재앙을 받은 것임으로 큰 죄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가랴를 말을 못하는 자가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칭함 받은 사가랴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죄인이었음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을 통해서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의 결과임을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애당초 믿음이 없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 없음에서 시작을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에 대해 우리는 끝까지 무지한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 없음에서 시작하게 되면, 믿음 있음은 우리의 공로나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은혜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복음은 우리를 부끄러움에서 건져내는 주의 능력을 담고 있는 복된 소식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 복된 소식의 기쁨을 알게 하기 위해 먼저 우리의 부끄러움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끄러움에서 건져 내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감사하는 자신의 믿음에서 이 같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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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에서 나눔을 위한 질문 **

나눔) 우리에 이루신 하나님의 일을 말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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