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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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6월 23일 로마 군병들의 조롱 (마27:27-31, 신 49면) 조회수 : 590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06-25

지난주에 말씀드린 가장 부정한 재판인 빌라도의 재판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의 형에 내어주도록 판결이 되었고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시게 됩니다. 본문은 빌라도에게서 예수님을 넘겨받은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님을 괴롭히고 희롱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왜 그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까? 바로 이것이 인간에게 있는 죄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군병들에게 조롱 받으신 이 내용을 보면서 단순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멸시와 고난의 길을 가신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고통과 멸시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만 생각하면 십자가에 대해 감상적으로 흘러갈 위험이 많습니다. 신앙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가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기를 소원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한 자기 인생을 포기했음을 뜻합니다. 이것이 자기 부인이며 믿음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꼭 마음에 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드러난 인간의 죄성이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실체가 이 죄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서 감동과 감상의 눈물이 흐르는 것보다는 정말로 애통하는 심령으로 예수님께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부르나 전혀 유대인의 왕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대인의 왕일 수 없는 자가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니 우습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을 상징하는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 갈대를 들려주면서 조롱을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는 말하지만 속으로는 결코 왕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지만 그 역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예수님의 처지를 조롱하기 위한 말일 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고, 유대인의 왕으로 심문을 받으시고, 유대인의 왕으로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이처럼 유대인의 왕으로 오셔서 죽으시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셨지만 누구도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영접하거나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세상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의 왕 되심을 알아보고, 왕으로 대접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바로 예수님을 구주, 그리스도로 믿는 신자입니다. 예수님이 왕이라면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며 백성은 왕의 명령과 말씀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백성 된 자는 왕 앞에서 자신의 뜻을 고집하여 내세울 수가 없습니다. 오직 왕의 뜻만이 존재할 뿐이며, 왕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백성의 도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왕이라고 부르면서도 나의 뜻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내 뜻을 이루어 달라고 합니다. 도대체 누가 왕이고 누가 백성인지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알아주는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것을 인생의 가치로 여기면서도 십자가를 말한다면 그것이 곧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대접하지도 않으면서 왕이라고 불러주는 조롱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께 예수님은 과연 누구십니까?

진정으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으신다면 예수님이 여러분을 무엇으로부터 구원하셨는가를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죄로부터의 구원임을 믿으신다면 무엇보다 여러분께 있는 죄성을 보셔야 합니다. 죄의 깊이를 들여다보시면서 예수님의 피 흘리심의 은혜가 참으로 크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심령이 예수님의 은혜로 충만할 때 신자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이 내게 이뤄지기를 소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알게 되면, 함께 은혜 안에 있는 형제를 은혜로 대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예수님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모두가 거짓이고,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일 뿐임을 아셔야 합니다. 신앙은 나의 죄성을 외면하면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길은 자신의 죄성을 들여다보며 내가 예수님을 죽인 가해자임을 마음 깊이 인식하면서 가능해집니다. 나의 죄성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참으로 귀한 가치 있는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충격으로 다가오는 경험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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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를 위한 질문 *

1. 예수님이 희롱 당하시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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