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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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6월 16일 빌라도의 재판 (마27:11-26, 신 48면) 조회수 : 596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06-19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말을 하지만 사실 우리는 말씀대로 산다기보다는 주변 환경에 떠밀려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양심을 따라서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옳은 것을 옳다고 주장하며 살아가기보다는 자신의 유리함과 안위를 살피면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우리내 인생들의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의 모습을 오늘 본문의 내용에서 만나는데 빌라도의 재판에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1. 죄 없으신 구원자 예수님이십니다.

첫째로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증된 여러 자료들에 의하면 본래 빌라도는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못되는 사람으로 잔인하고 매우 감정적이며 탐욕적인 관리였다고 증언합니다. 그는 결국 잘못을 저질러서 로마로 소환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존경받지 못하고 잔인했던 빌라도였지만 예수님을 재판하는 과정에서는 예수님에게서 어떤 죄나 사형선고를 내릴 만한 혐의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잔인하고 비양심적인 빌라도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수님을 십자가의 형에 처하도록 내어 주면서 괴로움의 표현을 자신의 손을 물로 씻음으로 보여줍니다. 모든 인류가 다 일어나서 고발하고 고소해도 예수님에게서는 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 자신이시며 그 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2. 양심의 문제에 직면한 빌라도를 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양심의 변화를 보이는 것을 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보면서 양심에 충격을 받아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27: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빌라도 놀라면서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이 질문에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그러나 거짓 증거를 대는 무리들 앞에서는 침묵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을 보면서 빌라도가 양심에 충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했고 그렇다면 석방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양심대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대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군중을 선동하여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양심의 호소를 지키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예수님을 십자의 사형에 내어주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양심의 실상입니다.

3. 왜 십자가인가?

그것은 왜 그렇게 대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저 유대교의 당국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혈안이 되었을까요? 그들은 그들의 율법에 따라 예수님의 사형을 직접 집행하지 않고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준 것은 그들에게 사형집행권이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뭔가 다른 의도와 꼼수가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의 사형 방식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게 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고, 그것은 곧 나무에 달려 사형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신21:22,23절의 규례에 따라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이 됩니다. 즉 예수님이 사형을 받아 죽은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는 확증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있을 수 있는 소동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4.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던 그룹이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당국자들의 선동에 휩쓸렸던 민중입니다. 민중은 백성 또는 대중이라고 말해도 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과 칠병이어 기적에 열광했던 무리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오병이어에 배불렀던 청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옹립하려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중이 변해서 지금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민중의 실상입니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 세력이 된다는 것은 정치가들의 속임수입니다. 선동일 뿐입니다.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인이시며 주체이지 어떻게 인간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창조하셨고, 인간을 섭리하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적입니다. 민중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입니다. 그러므로 이 민중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합니다. 진리인 성경말씀의 다스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앞서게 될 때 역사는 죄악의 어두운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공동체가 하나 있는데 바로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 굳건히 거하는 것이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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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를 위한 질문 *

1. 빌라도의 재판에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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