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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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5월 26일 : 가장 불의한 재판 (마26:57-68, 신 48면) 조회수 : 603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05-30

금 세상은 온통 불의한 재판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과거의 재판의 결과를 재심하면서 새로운 판결을 사법부가 내 놓고 있습니다. “000 과거사위원회라는 이름도 참 많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이리저리 얽혀 살다보면 서로의 갈등으로 인한 억울한 일이 없을 수는 없지만 법 앞에서는 그 억울함이 풀어질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재판이 공정해야 합니다.

1. 가장 불의한 재판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참으로 잘못된 재판의 광경을 보게 되는데 예수님에 대한 재판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마치자마자 가룟유다가 이끌고 온 칼과 몽치로 무장한 성전수비대 병력에 의해 체포가 되시고, 즉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 밤새도록 시달리시며 재판을 받으셨고, 날이 새기 전에 산헤드린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시고,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져서 세 번째 재판을 받으셨는데, 이 세 번의 재판이 모두 불법재판이었고, 불의한 판결이었습니다. 어떤 재판도 마찬가지겠지만 산헤드린 법정은 밤에 재판할 수 없습니다. 낮에 해가 있을 동안에만 재판합니다. 그리고 유월절 명절절기에는 재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죄판결을 내리거나 특별히 극형인 사형을 언도할 경우에도 즉시 형을 집행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항소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또 형량을 정할 때도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선고하도록 되어 있었고, 특별히 사형을 선고할 때에는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하며 결정적인 증인이 없이는 사형을 선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판에는 이런 기본적인 원칙들이 하나도 지켜지거나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속히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서 죽일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 침묵하시는 예수님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몇 가지 교훈이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은 원수들에게 까지도 흠 잡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악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좋은 동기도 악하게 이해 한다는 것입니다. 가야바 법정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모였기 때문에 그 어떤 좋은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나사렛 예수는 사형이라는 결론의 프레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그 프레임을 충족시킬 조건으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악의 본질이고 악의 성격입니다. 그래서 대 제사장은 집요하고 강력하게 질문공세를 폈지만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침묵이 곧 대답이셨습니다. 거짓 증언 앞에서 변명하거나 논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듣고 계셨습니다. 그냥 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최대의 언어였습니다.

3. 죽음 앞에서 초연하신 왕의 선언을 보라.

이들은 거짓증인들을 많이 세워 놓았지만 사형을 언도할 만한 증거를 얻지 못하자 예수님 스스로 자신들이 쳐 놓은 올무에 걸려들 수 있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침묵만 하고 있지 말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것입니다. 거짓증거 앞에서 침묵하시던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는 이 진리 앞에서 입을 여시는데 아주 간단명료하고 확신 있는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네가 말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시는 일에 두려워하거나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이 변명이 아니요, 도피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한마디로 확실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에 관심이 없는 무리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은 말씀에 관심이 없는 자칭 신자라 일컫는 사람들에 의해 배척받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아무 말 없이 불의한 재판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으며,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침묵으로, 어떤 때는 기도로, 어떤 때는 오래 참음의 사랑으로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회개의 눈물로 마음의 상처를 씻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생기는 대부분의 상처는 나의 부족함과 무능함과 연약함과 잘못으로 인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채워져 가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나의 죄인 됨을 알고, 하나님이 나 같은 자에게 베푸신 구원의 일을 깨달음으로 감사로 넉넉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 하게 되는 말과 삶은 이러한 신자에게서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위로하심이 여러분의 마음에 충만하게 채워지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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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를 위한 질문 *

1. 상처가 많은 세상을 살면서 예수님을 닮고 싶은 것이 있나요? , 어떻게 상처를 이기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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