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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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5월 19일 예수님을 안다는 것 (마26:47-56, 신 47면) 조회수 : 610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05-21

세상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안다고 하는 사람은 참 많습니다. 교회 안에는 물론이고 교회 밖에서도 예수님을 안다는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물론 교회 안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아는 것은 물론이고 구세주로 믿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회 밖의 사람들은 예수를 알지만 믿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참된 앎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붙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앎은 예수님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게 되고, 신뢰는 어떤 형편에서도 의심과 흔들림이 없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입니다.

1. , 그리고 세상

본문에 보면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와 함께 예수님을 잡으러 옵니다. 큰 무리들은 칼과 몽치로 무장을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예수님이 아무 대항 없이 순순히 붙잡히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를 추종하는데 그들을 선동해서라도 힘을 모아 대항할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칼과 몽치로 무장한 큰 무리를 보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세상의 상식이며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세상을 힘으로 사는 것 밖에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힘이 아닌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벗어나서 다른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에 갇힌 자의 앎은 참된 앎이 아닙니다.

2. 말씀, 그리고 예수님

예수님이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잡지 아니한 것은 예수님이 붙잡힐만한 일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강도를 잡는 것처럼 잡으려 하고 또 잡히시는 것은 다 선지자의 글, 즉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천사를 동원하여 자신이 살 길로 가시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길로 가고자 하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죽음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길이기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인류 역사에서 오직 예수님 한분만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순종의 길을 가셨습니다. 바로 이 분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직 아버지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길로만 가신 예수님을 부르면서 나의 뜻을 이뤄달라고 하는 것이 믿음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믿는 예수님이 과연 우리의 뜻에 관심을 두고 우리의 뜻, 그것도 세상적인 탐욕과 욕망으로 가득한 우리의 뜻을 이뤄주시는 분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3. 말씀, 그리고 믿는 자

유다는 군사들과 미리 군호를 짭니다. 그런데 미리 그렇게 신호를 정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유다의 마음은 예수님에게서 이미 떠났고, 지금 오직 예수님을 죽음의 위기로 밀어 넣는 자기 계획에 충실하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유다가 신호를 정하여 행동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은 유다의 행동을 알 수 없도록 감추기 위함일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배신의 악한 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의 행위를 다른 사람에게는 감추고 싶어 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끝까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고 자기 존재가치를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는 것 말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은 오로지 나의 일이 이뤄지는 것으로 집중되어 있을 뿐입니다. 나의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세상 살 맛도 잃어버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말씀이 이뤄지는 것보다는 나의 일이 더 크고 중요한 것으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구원이 이뤄진다면 그 구원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나의 일이 이뤄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는 것을 더 크고 중요한 것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일이 이뤄지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를 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는 것에 마음이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는 길을 가신 예수님의 순종은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부활의 생명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순종에 우리의 전부를 맡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힘으로 누리는 쾌감과 즐거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힘이 주는 승리감도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부활의 생명에는 결코 참여될 수 없습니다. 부활의 생명은 예수님의 순종으로 성취된 것이고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세상의 힘과는 상관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도덕심을 발휘하여 존재 가치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이 이뤄지는 것에 자신의 모든 뜻을 두고 순종하신 예수님께 내 인생 전부, 내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성취되어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에 대한 참된 앎이고 믿음입니다. 이 지식 안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 안에 굳건히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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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를 위한 질문 *

1. 예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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