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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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3월 31일 주여 나는 아니지요? (마26:14-25, 신46면) 조회수 : 656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04-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께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인생에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이것은 지난 주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여러분에게 드린 질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죽으심은 무가치한 일로만 다가올 것입니다.

1. 자기변명을 위한 말

가룟 유다의 배신은 유다 한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라 당시 제자들과 오늘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26:31절에도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는 배신의 길을 가게 될 것임을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비록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굳게 장담을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문제입니다. 자기 인생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결국 자신을 위해 예수님을 버리는 길을 간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당시 예수님을 버리고 배신하는 제자들을 대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심하면서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반응합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파는 유다까지도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반문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악인이 아니라 의인의 길에 두고 싶었던 것이고, 사람들은 이러한 마음으로 끝없이 자기를 합리화하고 변명을 일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이유와 죽으심의 의미를 알지 못한 제자들의 행동입니다.

2. 열려 있는 배신의 가능성

여러분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고, 팔아버릴 가능성이 없습니까? 우리에게도 배신의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가룟 유다만이 아니라 모든 제자들에게 배신의 가능성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배신의 길을 갔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거듭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말씀하는 예수님에 대해서 실망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에게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실망감과 함께 예수님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자신도 예수님을 배신할 가능성이 있음을 생각했기에 근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나는 아니지요?’라는 말로 자신을 방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사람에게서는 회개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나는 아니지요?’라는 자기 방어가 아니라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는 자기 인정으로 시작합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판 파렴치한 존재임을 인정함으로써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을 정도의 큰 화가 바로 자신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와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3. 구원의 길을 가는 신자

우리가 교회 안에 머물러 있고 신앙생활에 열정을 보인다고 해도 얼마든지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 버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팔아 버린 채 진리와 상관없이 내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니지요?’라는 자기변명과 합리화로 나를 방어하는 뻔뻔함까지 갖추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 이런 말씀을 드리는데도 여전히 나는 아니지요?’라는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가 여러분의 현실과 무관한 내용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이런 이야기들이 세상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생을 제대로 보지 못한 어리석은 생각일 뿐입니다. 인생은 세상을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난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죽음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 데는 처지가 다 다르다고 해도 죽음의 문제에서는 동일한 처지로 만납니다. 우린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니지요?’라는 말로 자신을 가려보고자 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뻔뻔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뻔뻔함과 배신과 완악함을 파헤치고 구원의 길을 내셨습니다.

이 길을 걸어갈 자가 누구일까요? 그들이 바로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는 자기 고백과 함께 예수님의 죽으심에 자신의 전 인생을 맡기는 사람입니다. 우린 항상 나는 아니지요?’라는 변명을 일삼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파헤치고 무너뜨리시면서 우리의 죄를 보게 하시고 결국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예수님이 가신 길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감사하고 찬송케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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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를 위한 질문 *

1. ‘주님, 나는 아니지요?’우리는 늘 이렇게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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