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홈  >  교육과사역  >  주일설교요약
  제  목 : 2019년 3월 24일 죽으심 예고에 대한 반응 (마26:1-13, 신46면) 조회수 : 596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03-2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는 죽으심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본문에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두 사람의 반응이 등장합니다.

1. 향유를 부은 여인

하나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이고, 또 하나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넘겨준 가룟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베다니의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자가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본 제자들이 분개하면서 여인을 나무랍니다. 이유는 향유를 비싼 값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도 있는데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버림으로써 허비했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향유를 부은 것을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여인의 행동을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 나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

여러분은 여인의 행동과 제자들의 말대로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십니까? 향유를 부어서 허비 해 버리는 것보다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사용하면 세상에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고, 도움을 받는 사람도 있게 되는 것이니까 분명 더 효율적이고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죽음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그 길을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신 것이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에게는 생명의 길이 열리는 참으로 존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존귀하고 거룩한 것으로 나타내는 여인의 행동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고, 때문에 예수님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기억되어야 할 여자가 행한 일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존귀하고 거룩한 것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3. 죽음의 문제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제자들은 여인의 귀한 봉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니 예수님의 죽으심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인의 귀한 봉사를 낭비로만 여기면서 분개한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로 알았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하면 그 나라는 예수님의 나라가 되고 그렇게 되면 제자인 자신들은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어 버리시면 그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세월은 결국 헛된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으심은 결코 환영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중에서 유다가 예수님에 대한 분노로 돈을 받고 넘겨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유다가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넘기고자 한 것도 유다가 원하는 아무 유익도 주지 않고 십자가에 죽어 버리는 예수는 종처럼 가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배경으로 하는 여인과 다른 반응인 것입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자신의 전부를 맡길 정도로 존귀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 보는 반면에 한 사람은 종의 값과 같은 가치 없는 것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극과 극의 반응으로 나타나는 그 중심에는 자신의 죽음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바라보느냐 아니면 육신의 유익을 근거로 해서 바라보느냐라는 중대한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나 가룟 유다만 예수님을 종처럼 취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그렇게 취급 받고 있습니다.

이제 생각해 봅시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

* 가정예배를 위한 질문 *

1.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요?

 "

  이전글 : 2019년 3월 17일 종말의 자세 ⑤ 양과 염소의 비유 (마25:31-46, 신44면)
  다음글 : 2019년 3월 31일 주여 나는 아니지요? (마26:14-25, 신46면)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