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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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2월 17일 종말의 자세① 징조를 보면서 (마24:32-44, 신42면) 조회수 : 650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02-21

하나님을 가장 잘 섬겼노라고 자부하는 예루살렘이 멸망한다면 그것은 세상 어디에도 영원히 존재할 나라는 없다는 뜻이 되며 예루살렘의 멸망의 징조는 예루살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멸망의 징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세상이 멀쩡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실상은 멸망이라는 하나님의 뜻 안에 붙들려 있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징조들을 통해서 자각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1. 징조로 보게 되는 것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이 같은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징조는 멸망이 가까이 왔다는 시간적 의미가 아니라 예루살렘의 멸망이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선포로 다가오는 것이고, 징조를 보면서 기존의 세상이 아닌 하나님이 이루시는 새로운 나라에 소망을 두라는 것이 징조를 말씀하시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징조들을 보면서 세상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확인하게 되고 또 확인하면서 예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게 되는 것이 신자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만이 영원할 참된 가치가 있는 나라임을 깨달으면서 세상을 떠나야 할 곳으로 바라보는 것이 징조를 보면서 때를 아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됩니다.

2. 한 사람은 데려가고, 또 한 사람은 버려두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신자라고 해서 일상생활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것도 곤란합니다. 신자는 일상생활을 산다고 해도 세상을 무너질 곳으로 바라보는 열린 눈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의 일상생활도 언젠가는 끝날 날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영원하지 않는다면 우리 일상생활까지도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끝나는 일상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일상생활에 매이지는 않게 되는 것입니다. 40,41절을 보면 데려감과 버려둠으로 구분되는 차이는 삶에 있지 않습니다. 데려감을 받은 사람이나 버려둠을 당한 사람 모두 동일하게 밭에 있었고 맷돌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데려감을 받은 사람은 밭일을 하면서도 기도를 했다거나 맷돌질을 하면서 찬송을 불렀기 때문이 아니란 것입니다. 구분의 기준은 생각이고 앎입니다. 즉 세상은 끝이 있고 모든 것이 무너질 것임을 알고 생각하는 것과 세상의 끝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의 차이인 것입니다. 결국 징조를 보면서 세상 끝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있는 신자는 일상생활에서도 예수님으로 인해 감사하게 됩니다. 일상생활이 남들이 보기에는 형편없고 초라하다고 해도 당사자는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데려감을 받고 버려둠을 당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3.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신자로서 깨어있다는 것은 기근과 전쟁을 보고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대적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세상의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 매이게 되면 어디를 봐도 세상이 끝날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끝에 대한 말을 들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끝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어떤 현상을 동반한 채 임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세상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실감할 만한 엄청난 재앙과 표적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징조는 우리에게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징조를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 현실이 되어 그대로 되어 질 것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새롭게 시작된 예수님의 나라만이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것임을 믿을 뿐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는 예수님이 언제 오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다시 오시고 세상 또한 끝날 것이기 때문에 몸은 세상에 있으나 마음은 예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것에 모든 소원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마지막 때에 신자가 준비할 것은 징조를 통해서 세상은 무너질 곳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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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를 위한 질문 *

1. 우리가 늘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하여 이해 한 것을 가족과 함께 나누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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