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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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1월 20일 하나님의 심정을 아십니까? (마23:37-4:2신 40면) 조회수 : 680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01-31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이 말씀에는 한 사람이라도 멸망 받지 않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앞에서 일곱 번씩이나 화 있을진저! 라고 저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서운 저주를 선포하시고 나서 바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고 하시며 우시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계시며,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며, 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구원받기를 얼마나 원하셨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침은 마치 이와 같습니다. 철없는 자식을 붙잡고 눈물과 사랑의 호소를 그렇게 했건만 끝내 듣지 않고 타락하여 큰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가게 되는 자식을 향해 통곡하며 한탄하는 어떤 어머니와 같은 심정을 그렇게 토로하신 것입니다. 살인자가 되어 감옥으로 끌려가는 자식을 바라보며 넋 빠진 모습으로 땅 바닥에 주저앉아서 아이고 이 자식아! 아이고 이 자식아!” 하며 목 놓아 울고 있는 어머니와 같은 모습이고, 그 심정과 똑 같은 것입니다. 그런 부모의 심정을 아십니까? 아니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타락한 자식이 결국 매를 맞고 큰 곤경의 수렁으로 빠져가는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 가슴을 찢듯이 애통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본문의 내용과 똑 같은 본문이 있습니다. 특별히 19:41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정말 사랑하면 울게 됩니다. 자기 자식을 그렇게 사랑했건만 그 사랑에 반응하지 않고 타락해 가는 걸 보면 부모의 마음은 찢어지고 멍이 듭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 예수님의 눈물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왜 우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했고 사랑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족과 형제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울고 계십니까? 자녀의 신앙생활을 위해 얼마나 울고 계십니까? 소돔과 고모라처럼, 아니 노아의 홍수시대처럼 타락해 가는 이 땅의 이 백성들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울고 있습니까? 조국의 역사와 지금과 장래를 생각하면서 여러분은 울고 계십니까? 구원받아야 할 내 가족, 내 부모, 내 형제, 내 자식, 복 받아야 할 내 가족과 자녀들이 저주의 길을 가며 죽음의 길, 지옥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을 때 우리는 울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하나님은 최초 인간 아담이 타락한 이후 계속 자기의 백성에게 선지자들을 보내 구원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감스럽게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환영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오는 대로 핍박하고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눈물과 통곡과 탄식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 힘들 때 포기해 버리면 제일 쉽고 간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을 결코 포기 하실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끝까지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그것은 집나간 자식을 기다리며 오늘이나 내일이나, 이제나 저제나, 아침이나 저녁이나 밤중이나, 문밖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아버지, 날이 밝으면 동구 밖의 먼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시고 계시면서 못난 자식, 불효막심한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염없이 기다리고 계시는 누가복음 15장의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비유입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의 심정을 여기서 보는 것이며, 그 아버지의 사랑의 열심을 여기서, 이 본문의 말씀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종들을 돌로 쳐 죽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독생자 외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예루살렘의 심장부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눈물과 통곡과 탄식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이 몇 번이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해 보시고 포기 하신 것이 아니시고 끊임없이 시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의 열심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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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 나눔 위한 질문 *

1. 우리와 우리 가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심정은 어떤 심정이실까 생각해 보고 가족의 대 화를 나누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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