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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권위 그리고 세리와 창녀 (마21:23-32, 신, 36면) 10월 14일 조회수 : 696
  작성자 : 하남은광 작성일 : 2018-10-21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대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에게 트집을 잡아 따져 묻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둘로 나누어집니다.

권위에 대하여(21:23-27)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 이 모습을 바라보다 못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에게 따져 묻습니다.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라고 묻는 것은 그런 권위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들인데 자신들은 예수님에게 성전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권위를 허락한 적이 없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이렇게 권위의 문제를 들고 나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왜 여기서 요한의 세례 문제를 끄집어내신 것일까요? 권위에 대해 물었으면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아로서의 권위다라고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이 권위에 대한 차이입니다. 대제사장이나 장로들과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지위의 권위를 힘으로 여겼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 메시아로서의 권위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길로 가는 것으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해해야 할 권위의 의미입니다.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이 이해하는 권위는 힘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로 가는 것을 권위로 여기시는 예수님의 권위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고, 그들의 왜곡된 권위 앞에서 예수님은 참된 권위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는 두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의 실상이 어떠한가를 드러내십니다.

2. 세리와 창녀만도 못한 그들의 실상 (21:28-32)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맏아들은 가겠다고 대답을 하고서는 가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도 가서 똑같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였지만 둘째 아들은 싫다며 거절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하신 예수님은 권위의 문제를 들고 나온 사람들에게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고 묻자 그들은 둘째 아들이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는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으로 유대사회에서 죄인으로 천대 받았던 세리와 창녀들보다 못한 제사장과 장로들의 실상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세리와 창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대로 실천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제사장과 장로들 방식의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제사장 장로들과 다른 것은 자신을 의로운 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았기 때문에 의로운 자로 여기기는커녕 회개하고 용서 받아야 할 자로만 여겼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조건과 기준들을 모두 무너뜨리는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라는 말씀 앞에서 기존의 신앙 기준과 원칙들이 무너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신앙기준과 원칙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와 용서의 세계입니다. 회개와 용서의 세계에는 마치 세리나 창녀와 같은 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자신을 의로운 자로 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권위도 권세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의 사람들이고 그들도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회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용서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하나님 백성의 참된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놓친다면 우리는 제사장이나 장로들과 같은 실상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아들의 이야기는 포도원으로 일을 하러 갔느냐 가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뉘우친 자가 누구인가가 중요합니다. 뉘우침이 곧 둘째 아들을 포도원으로 가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씀과 기도도 회개가 아닌 자신을 채우고자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말씀과 기도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그 무엇도 내 자신을 만족케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죄인 된 우리의 실상을 깨닫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감사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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