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홈  >  교육과사역  >  주일설교요약
  제  목 : 거룩한 삶⑦ 다스림과 섬김 (마20:17-28, 신, 34면) 9월 02일 조회수 : 738
  작성자 : 하남은광 작성일 : 2018-09-02

역사상 가장 크고 위대한 사건은 하늘에 계시던 하나님의 아

들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의 오심이 과거의 역사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오늘도

내일도 매일같이 우리를 다스리고 주관하는 사건이기 때문입

니다. 과거에 오셨던 사건이 아니라 날마다 나에게 오시는 사

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인간의 속셈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천국을 가르쳐주신 예수님께

서 제자들을 따로 데리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리고 길을 가시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살아나신다는 말씀을

다시 하시는데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죽으실 것인가에 대해 말

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여전히 별로 관심이 없습니

. 오히려 야고보와 요한의 모친이 아들들을 앞세우고 예수

님께 와서 청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자기의 두

아들을 각각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런데 이들이 생각하는 주의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과

는 다릅니다. 그 나라는 메시아가 오심으로 세워지는 유대 민

족이 중심이 된 새롭고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서 강력한 나라에서 주님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자리 둘을 자

신의 아들들이 차지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하여 다른 제자들이 분개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주님은 말

씀하십니다.

2. 예수님이 주시는 잔이 있습니다.

예수님은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20:22)”라고 답하십

니다. 이들은 주의 나라에서 주님의 좌우편에 앉는다는 것이

예수님이 마시려는 잔과 연관이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수님이 마시려는 잔은 고난, 즉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제자들

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잔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마실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

.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

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

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23)”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

씀한내 잔은 예수님이 마시려는 잔과는 다릅니다. 만약 같은

잔이라면 제자들도 예수님이 받으신 잔, 즉 예수님의 죽음과

동일한 죽음을 받는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

시는 잔은 우리에게 구원이 됩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장차 어

떤 길을 가고, 또 어떤 고난과 죽음을 당하든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능력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예수님의 소관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결

정되어진 사항임을 말씀합니다. 좌우편에 앉는 것은 아버지

께서 예비하신 것이라는 얘기는 제자들 가운데 좌우편에 앉

을 자는 이미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주

의 나라는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통치되는 나라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3. 섬김으로 된 주님의 나라

두 아들을 앞세운 모친의 요구를 들은 다른 열 제자가 두 형제에 대해 분한 마음을 갖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26-27)”는 말씀으로,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 다른 질서로 구축된 것이 주의 나라임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 세계, 주의 나라에 속한 자로 이 자리에 모여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8절에서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나라는 그러한 예수님의 섬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나라에 속한 자로 모인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를 추구하고 큰 사람으로 섬김을 받고자 하는 방식을 그대로 갖고 나온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철저히 망각한 채, 여전히 자기가 추구하는 세상의 질서 안에 머물고자 하는 것 밖에 안 됩니다. 이처럼 주님의 나라가 어떤 방식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분명한 성도는 세상의 질서인 힘의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크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섬김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섬김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섬김이 자신을 생명에 있게 했음을 알기 때문에 자연히 섬김을 추구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섬기라는 요구가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이 우리를 섬김을 귀하게 여기는 삶으로 이끌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섬김의 끝은 영광이 아니라 죽음입니다. 그 죽음 속에 영광과 부활과 영생이 있습니다. 이 영광에 참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이전글 : 거룩한 삶⑥ 천국의 영원한 가치 (마20:1-16, 신, 33면) 8월 26일
  다음글 : 나귀 새끼를 타신 다윗의 자손 (마21:1-11, 신, 34면) 9월 23일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