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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거룩한 삶⑤ 천국의 노동가치 (마20:1-16, 신, 33면) 08월 19일 조회수 : 610
  작성자 : 하남은광 작성일 : 2018-08-19

오늘 말씀은 천국 포도원의 품 군의 이야기로 성도들에게 보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줄거리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천국은 어떤 곳이며,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1. 이상한 포도원 주인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은 먼저 하루 한 데나리온씩의 삯을 주기로 약속하고 품꾼을 포도원에 들여보내 일하게 합니다. 그런데 주인이 다시 제3(오전9)에 장터에 나가보니 놀고 있는 사람들이 또 있어서 그들에게 상당하게 주리라고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제6(12)와 제9(오후3), 11(오후5)까지 계속합니다. 주인의 이 같은 조치는 일반적인 포도원 주인의 행보와는 전혀 다릅니다. 포도원 주인의 이런 행보는 포도원의 일을 하게하기 위함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포도원에서 일을 시키기 위한 것이 주인의 목적이라면 제9(오후3)와 제11(오후5)에도 품꾼을 부른다는 것은 일반적 상식과 맞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하루는 오후 6시까지이기 때문에 제9(오후3)에 들어온 사람은 3시간 일을 할 수 있고, 11(오후5)에 들어온 사람은 겨우 1시간 동안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포도원 주인은 놀고 있는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서 불러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비의(크게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마음으로 부른 것입니다.

2. 포도원 주인의 이상한 품삯 계산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늦게 온 사람은 제11(오후 5)에 왔습니다. 그 사람은 겨우 한 시간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마 그 사람은 하루 일당을 다 받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데나리온이 지급됩니다. 그리고 모든 품꾼에게 지급된 품삯도 약속한대로 정확하게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먼저 온 품꾼들의 원망과 항의가 일어납니다.

3. 먼저와 나중이 없는 천국

많은 사람이 천국의 상이 다르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많이 일하고 많이 수고하고 많이 헌신 했으면 그만큼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된다는 계산법이야 말로 사람들의 속성과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천국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가르침입니다. 주인의 품삯은 노동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그들의 생계를 염려하는 자비의 마음이었습니다. 따라서 품꾼들은 삯을 자신이 노동한 것에 대한 보수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주인이 불러주지 않았으면 그 날은 모든 식구가 굶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불러주신 자비로 여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원망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먼저 왔던 늦게 왔던 모두가 동일하게 주인의 자비를 누리는 것으로 감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이야기의 결론을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16)는 말로 내리십니다.

4. 천국은 일이 아닌 자비와 은혜의 관계입니다.

세상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한 먼저와 나중의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주인에 대해 원망한 품꾼들의 잘못은 주인이 준 한 데나리온을 자기 노동에 대한 대가로 여긴 것입니다. 노동에 대한 대가로 여겼기 때문에 자신보다 적은 노동을 한 사람이 자신과 동일한 삯을 받는 것을 부당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한 데나리온은 주인의 자비입니다. 자비로 부름을 받았고 자비에 의해서 한 데나리온이 주어진 것입니다. 애당초 노동을 조건으로 부르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인과 품꾼의 관계이며 신자와 예수님의 관계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노동을 조건으로 한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일한만큼 보상을 받는 관계에 있지 않고, 자비와 은혜의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받는 그것은 우리가 한 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자비이고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부자 청년의 잘못은 영생을 선에 대한 자신의 실천의 대가로 여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율법을 신앙의 근본으로 삼고 있는 유대인들의 잘못이었습니다.

여러분, 영생은 하나님이 자비로 인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절대로 우리가 일한 것에 대한 보상도 대가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러한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를 살리는 것이지 우리가 일한 것의 대가를 받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는 이처럼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동일합니다. 일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것으로 차별되지 않는 것이 신자의 관계이며 천국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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