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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세례요한의 의심 (마11:1-6, 신,17) 10월 1일 조회수 : 1616
  작성자 : 김정훈 작성일 : 2017-11-25

마태복음 10장까지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서 감동과 충만한 축복을 목격할 수 있었다면, 11장부터는 예수님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과 의심과 갈등과 도전의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로 목격되는 현장이 충격적입니다. 그것은

1. 세례요한의 의심입니다.

세례요한이 옥에서 간간히 전해지는 소문들과 또 제자들이 찾아와서 전해주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어찌 보면 맞는 것 같고, 어찌 보면 아닌 것 같고 이런 회의가 밀려온 거예요. 그래서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내서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마11:2-3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요한이 이렇게 묻고 있었던 것은, 그 당시의 예수님의 행보가 세례요한마저도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만큼 그 시대에 파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시대의 유대교라는 종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지를 말해주는 역설이기도 합니다. 세례요한마저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씀의 의미와 정신은 사라져 버린 사탄의 종교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에 대한 회의나 의심이란 것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탄이 우리의 영혼에 뿌려놓은 안개와 같은 유혹입니다. 우리는 그 기원을 창3장의 뱀이 하와에게 묻고 있는 질문에서 시작됨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의심을 일으키게 하는 사탄의 질문에 대한 하와의 대답은‘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말씀으로, 그리고‘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은‘죽을까 하노라’로 하나님의 사랑을 감소시켜 놓거나 하나님의 심판을 약화시켰습니다. 의심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2. 세례요한이 메시아를 의심한 이유

아마도 세레요한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직접보지 못하고 간접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요단강에서 만났습니다.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었지요? 그리고 먼발치에서 예수님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입니다. 후에 감옥에 갇힌 세례요한은 면회 오는 제자들을 통해서만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소식에는, 그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의 주관적 입장이 개입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고 확신이 없는 것은 직접적인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경청하고 성경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 단계는 내가 직접 읽어야 합니다. 직접 먹어야 합니다. 남이 가르쳐 주어서 받는 은혜가 아니라 내가 무릎을 꿇고 지접 주님을 만나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신앙이란 상식과 이성의 만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적인데 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의심을 품은 것도 예수님과 깊이 대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 본다면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이해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세례요한은 그 때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이따금씩 제자들이 가지고 오는 소식만을 듣고 있을 뿐 예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눈 일이 없었기에 메시아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3. 세례요한의 의심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답을 하시는데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그대로 말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마11:4-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심하고 있는 세례요한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세례요한의 중심을 누구보다도 예수님이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의심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않으시고 이사야35:5-6의 말씀과 사61:1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었다고 말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요한의 의심이 근본적으로 믿음이 없는 불신앙인가 아니면 인간의 연약함으로 오는 낙심인가를 통찰하고 계신 것입니다.

4.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마11: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 때문에 시험이 들면 어떻게 예수님 앞에 갈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나 때문에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예수님을 향하고 천국을 향하면서, 인간의 모든 약점과 교회 공동체의 연약함을 뛰어넘어 시험에 들지 않고 주님을 섬길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정예배와 구역예배, 토론을 위한 질문]

* 신앙생활에서 의심이나 회의가 있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기셨는지 경험을 말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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