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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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제자의 길 (마10:34-42, 신,16) 9월24일 조회수 : 557
  작성자 : 김정훈 작성일 : 2017-11-25

  우리는 오늘,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두 번째 설교인‘사도의 부르심과 파송에 대한 설교’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의 문제입니다.

1.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마10:38-39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죄와 허물로 죽어가는 죄인들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나를 위해서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다른 사람이 사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은 이들을 통하여 이 땅에 천국을 세우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이 부활승천 하시고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이 교회를 가리켜 초대교회라고 하는데 이 교회는 12사도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것이며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천국을 말하고,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은 교회를 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천국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한 사람이 십자가를 온전히 짊어진다면 그 가정은 천국으로 변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작은 자 중 하나(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자세로 전하라는 것입니다.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구하여 맞이하는 이야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 이야기가 창세기24장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인 이삭의 나이가 40이 되도록 아직 며느리를 맞아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들 ‘이삭’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의 유업을 이어갈 며느리 감이 가나안 땅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평소에 가장 신임하는 종을 고향으로 보내어 아들의 신부 감을 찾아오게 하는데, 아브라함이 찾는 아들의 신부 감의 기준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줄 수 있는 자였습니다. 그것은 창24:12절에서 엘리에셀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모습에서 잘 나타납니다.

창24:13“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서 있다가 14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이런 신부 감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사람뿐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는 여자라면 내 주인이신 아브라함이 찾는 아들의 신부 감입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될 이삭의 신부 감의 기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찮은 짐승까지고 귀하게 보는 여자,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 아브라함이 기대하는 며느리 상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기대하는 제자의 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아브라함과 엘리에셀이 찾고 있던 믿음의 여자였습니다. 리브가는 나그네를 대접할 줄 아는 여자였습니다. 나그네를 귀하게 보는 여자였습니다. 나그네 뿐 만 아니라 하찮은 짐승까지고 불쌍히 여기며 귀하게 보는 여자였습니다. 곧 소자, 가장 작은 자를 귀하게 보는 여자였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를 선택하실 때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 기준이 바로 기도 내용으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십자가를 지고 따를 수 있는 자입니다. 두 번째는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입니다. 오늘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조건입니다. 이 조건 앞에서 우리의 자신을 볼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정예배와 구역예배, 토론을 위한 질문]

*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각자의 생각을 말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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