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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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두려워 말라 (마10:26-33, 신,16) 9월 17일 조회수 : 580
  작성자 : 김정훈 작성일 : 2017-11-25

복음을 전하는데 왜 핍박과 환난이 오는지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이며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낸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현장의 상황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리떼’들과 같지만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는 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리’에게 보내진 ‘양’은 ‘이리떼’의 밥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먹힘으로 살ㄹ리는 원리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제자 된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첫째, 최후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10: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지막 심판 때에는 감추인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되고, 숨겨진 것들이 다 알려지게 됩니다. 거짓이란 영원히 숨겨 질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마10: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이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죄악의 세력에 대한 심판과 종말이 있으며 우리의 인생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핍박과 어려움이 있을 때에 최후의 심판을 바라보면서 염려하지 말고 담대하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육체를 괴롭게 하고, 나의 삶을 압박해 오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정치권력자’들이나 ‘경제권력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서 먹을 것을 빼앗을 수 있고, 육체적인 학대를 가해올 수는 있어도 우리의 영혼과 부활의 소망에 대한 신앙은 빼앗아 갈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과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이리떼 같은 세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에 대하여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친히 모든 것을 아시고 간섭하시며 결코 침묵하시거나 무관심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30절에서는 (마10:30-31)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그렇게 자상하고 철저하게 나를 아시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어찌 하나님께서 너의 억울함을 모르고 계시겠으며, 너의 눈물과 고통의 신음을 외면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잠시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계실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요 계획가운데 있음을 믿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우리가 핍박과 조롱과 고난을 겪을 때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이것은 현재의 신앙의 태도가 미래의 구원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의 삶과 미래를 단절해서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다 아시고, 들으시고, 보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32절과 33절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마음속으로만 예수 믿고 시인 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반드시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고 완성된 천국에 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것은 내가 예수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이 내가 너를 안다고 하신다는 뜻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내가 너를 아노라’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내가 너를 아노라! 그리고 너는 나의 전부요, 너는 내 것이란다. 아멘!

[가정예배와 구역예배, 토론을 위한 질문]

* 설교에서, 구원이라는 것은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하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내가 너를 안다’고 하심에 있다고 한 것에 대하여 각자의 생각을 말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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