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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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달리다굼, 그 사건 (마9:13-26, 신,14) 7월 23일 조회수 : 520
  작성자 : 김정훈 작성일 : 2017-08-03

회당장 야이로의 이야기는 공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는 반면, 마가복음은 정확하고 자세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회당은 지역마다 있었으므로 야이로가 회당장을 맞고 있는 이 회당은 어느 지역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본문의 정황으로 볼 때 가버나움의 회당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찾아가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야이로가 예수님에게 나온 것은 단순히 딸을 고쳐 달라고 나온 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정리해야 만 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오기 위해서 회당장의 자리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유대교의 장로라는 존경받는 자리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아니 유대교 체제, 유대교 신앙의 체제 속에서 사는 것도 포기해야 나올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딸의 급박한 죽음의 사건이 아니면 절대 나올 수 없을 사람입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자식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자기 자식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유대교의 신앙 체제보다 한 생명이 얼마나 더 귀한 것인가를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 신앙과 체제는 여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유대교 신앙과 체제가 하는 일은 죄 때문이라고 정죄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돕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유대교 체제에서는 이런 일은 죄 때문이라고 저주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딸이 죽어가는 사건을 통하여 야이로는 아주 뼈아프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야이로는 여기서 유대교 신앙의 큰 모순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모순덩어리 신앙을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일들 때문에 야이로는 예수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막5:24)” 는 이런 의미입니다. 야이로는 이제 예수님에게는 한 마리 길 잃은 양이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다시 고쳐 쓰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막 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왔는데 이 사람들은 단순히 비보를 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회당장을 아끼고 있는 자들이고 친구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와서 당신의 딸이 죽어서 예수님을 모시고 올 필요가 없다는 말은 이미 상황이 끝났으니 이쯤에서 정리하고 다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야이로는 모든 것을 잃어야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라도 돌이키라는 겁니다.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 신앙을 벗어나면 이 사람은 유대 사회에서 격리가 되어져 버립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잃어버릴 일을 이제 당신의 딸이 죽었으니 지금이라도 중단하라는 겁니다. 그때, (막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예수님은 곁에서 이들의 말을 들으시고 선수를 치십니다. 예수님은 야이로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기다리지 않고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그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다시 고쳐 쓰시고 만들어 가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단오하게 행동하십니다. (막5:40) ....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막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야 일어나라” “예야 일어나라”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야이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만으로 안 됩니다. 그 다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오실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찾아오시는 예수님, 찾아오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그런데 우리에게 찾아 가실만한 그 무엇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적용질문)

우리 안에 예수님이 찾아오실 만한 그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며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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