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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교회성장은 성령의 능력에 있습니다. 조회수 : 1375
  작성자 : 하남은광 작성일 : 2013-07-14

교회성장은 성령의 능력에 있습니다.

 

효과적으로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계획이 완벽해도 이를 구체화시킬 만한 힘이 없으면 허사가 되고 맙니다.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장케 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지 의욕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교회들은 이에 필요한 힘을 갖추도록 해야 하는데, 성경은 그 힘이 "성령의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 충만의 능력이 교회 성장의 원동력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나 조직보다 우선하며, 역동적인 부흥과 성장을 가능케 합니다.

 땅을 진동시킨다는 것은 인간이 딛고 의지하던 터를 흔들어 놓는다는 뜻으로 교회를 적대시하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말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삼천 명, 오천 명의 사람들을 비롯하여 빌립보 감옥의 간수, 도망한 노예인 오네시모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체험의 증인이었습니다. 즉 성령께서 일하시게 하신 교회는 그분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성령님께 전적으로 위임하지 않는 교회는 아무리 인간의 노력으로 성장을 꾀해도 이내 한계에 다다르고 말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이적과 기사로 나타납니다. 베드로나 바울 등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아주 특별한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로 인정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그들 스스로 행한 일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였음을 잘 압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통해 이적과 기사가 나타게 하심으로 그들의 입에서 전파된 말씀을 사람들이 거부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들이 초대교회가 지녔던 능력을 회복하려면 성령께서 모든 일을 주장하시도록 전적으로 그분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전투에 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마음의 자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무기나 군사력, 뛰어난 전략 등 여러 면에서 우세한 전력을 보유했다 하더라도 담대한 마음의 무장이 되어 있지 못하면 패하게 됩니다. 싸움에서 정신력은 가장 중요한 무기입니다. 성령은 성도들의 정신이 살아있도록 만들어주므로, 성령의 충만은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초대교회는 여러 면에서 열세한 상태에 있었으나 사도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성령이 충만한 교회나 성도들은, 항상 담대한 마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예수를 믿도록 권고하는 일이 쉬울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아무나 선뜻 나설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임하시면 놀라운 담력이 생겨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날마다 전도하는 일에 힘쓸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특별한 성격의 소유자 들 이어서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침묵할 수가 없으며, 교회는 전도의 사명을 뒤로 미루지 못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주님을 증거 하도록 강권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그분은 이미 오래 전에 선지자를 통하여 이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인간적인 안목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안일지라도 그분이 약속하셨다면 반드시 이루십니다.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성령 폭발은 바로 기도의 결과였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주님의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며 전혀 기도하기를 힘썼던 것입니다(1:14). 성령의 능력은 교회가 성장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이것을 배제하고는 아무리 많은 노력을 투자할지라도 교회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지식이라는 힘이 있어야 하고, 기업을 확장하려면 자본이라는 힘이 필요합니다. 또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고자 하면 재능이라는 힘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성장시키려면 반드시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천 십 삼년 칠월 십사일

                                   담임목사 손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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