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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케노시스 목요성경대학] 절기를 지키라 / 악을 제하라 조회수 : 523
  성경본문 : 신명기 16장~17장 설교일 : 2020-06-18
  설교자 : 김희중 목사
  첨부파일:   신명기강의 21 (20200618) 절기를 지키라.hwp(40K)

신명기강의 21 (20200618) 절기를 지키라

절기를 지키라

(신명기 16)

1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2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3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4 그 이레 동안에는 네 모든 지경 가운데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네가 첫날 해 질 때에 제사 드린 고기를 밤을 지내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며

5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 고기를 구워 먹고 아침에 네 장막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8 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9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19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20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21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22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Deu 16:1 [유월절] 곡식을 추수하기 시작하는 ) 초봄이 되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잔치를 베푸십시오. 이 기간의 어느 날 밤에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 . 아빕월.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까지를 말한다)

Deu 16:2 그때에는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성소로 지정하실 곳으로 가서 양이나 소를 잡아 여호와께 유월절 제물을 바치고 잔치를 베푸십시오.

Deu 16:3 또 그때에는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떡만을 먹으십시오. 여러분이 애굽 땅에서 황급히 탈출할 때에 누룩을 넣어서 부풀릴 사이도 없이 반죽하여 금방 구워서 먹었던 것처럼 다시 그런 떡을 7일 동안 구워서 먹으십시오. 여러분은 이런 고난의 떡을 먹음으로써 여러분이 애굽 땅에서 탈출하던 날을 평생토록 기억하십시오.

Deu 16:4 묵은 누룩은 모조리 폐기하고 새 누룩이 나오기까지 7일 동안 전국에서 어느 누구도 집안에 누룩을 보관해 두어서는 안됩니다. 또 여러분이 유월절 첫날 저녁에 잡은 제물의 고기도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됩니다.

Deu 16:5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이라고 해도 아무 데서나 자기 마을에서 유월절 짐승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Deu 16:6 꼭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성소로 지정하실 곳으로 가서 여러분이 애굽에서 출발하던 때인 해지는 시각에 잡으십시오.

Deu 16:7 여러분은 그 고기를 여호와의 성소에서 요리해 먹고 다음날 아침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Deu 16:8 그래도 계속 6일 동안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만을 먹고 7일에는 다시 성소에 모여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잔치를 베푸십시오. 그리고 이 잔칫날에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Deu 16:9 [칠칠절] 여러분은 곡식 추수를 시작한때로부터 7주를 계산하여

Deu 16:10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 오순절 잔치를 베푸십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논밭에 복을 내려 주셔서 여러분이 일년 동안 수고하여 거둔 것인 만큼 자진해서 추수 감사 예물을 가져다 바치십시오. (. . 칠칠절)

Deu 16:11 여러분은 자녀들과 남녀 종들과 여러분의 마을에서 함께 사는 레위 사람들과 외국인들과 고아와 과부들까지 모두 데리고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성소로 지정하실 곳으로 가서 즐거운 잔치를 베푸십시오.

Deu 16:12 여러분 자신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살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규정들을 지켜 실천하십시오.

Deu 16:13 [초막절] 여러분은 봄철 곡식을 수확한 때뿐만 아니라 초가을에 올리브와 포도를 수확한 다음에도 일주일 동안 초막절 잔치를 베푸십시오.

Deu 16:14 여러분은 자녀들과 남녀 종들과 여러분의 마을에서 함께 사는 레위 사람들과 외국인들과 고아나 과부들과 함께 이 잔치를 즐겁게 베푸십시오.

Deu 16:15 여러분은 여호와께서 성소로 지정하실 곳으로 가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잔치를 베푸십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많은 수확을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잔치에서 마음껏 기뻐하십시오.

Deu 16:16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일년에 세 번씩 여호와께서 성소로 지정하실 곳으로 가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뵈어야 합니다. 곧 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는 여러분이 여호와의 얼굴을 뵈어야 하는데 언제나 빈손으로는 가지 마십시오.

Deu 16:17 많든지 적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가지고 가되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에 따라서 예물을 가지고 가십시오.

Deu 16:18 [법 질서에 대한 규정]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면 성읍마다 지파별로 재판관과 감독관들을 세우십시오. 백성 누구나가 자기 권리를 누리며 살도록 돌보는 책임을 그들에게 맡기십시오.

Deu 16:19 여러분은 법을 왜곡시켜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편파적으로 재판을 해서도 안 됩니다. 뇌물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뇌물을 받고 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도 뇌물을 받고 나면 바른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Deu 16:20 여러분이 존중할 것은 정의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틀림없이 살아 남아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Deu 16:21 [정결한 예배의 규정]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을 제단 결에 무슨 나무로든지 아세라 여신상 기둥을 다듬어서 세워 두면 안 됩니다.

Deu 16:22 또 여러분은 돌기둥의 남신상도 세우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런 것들을 미워하십니다.

지난주에는 율법가운데 폐지된 율법과 영원히 폐지할 수 없는 율법, 그리고 그 정신과 의미가 약간씩 추가되거나 달라진 형태의 율법이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절기에 대한 말씀을 드린바 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절기를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절기의 의미와 정신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명기 16장에는 이스라엘의 3대 절기라고 불리는 유월절과 칠칠절(오순절), 초막절(수장절)이 나옵니다. 이 세 절기는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정신이 계속 이어지는 절기이기 때문에 유월절을 중심으로 보아야 합니다.

1절에 보면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유월절이라는 것은 유월절의 주인은 여호와이시라는 뜻입니다.

즉 유월절은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은 어떤 여호와를 보여줍니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기 위해서 희생하신 여호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통해서 자신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희생하신 여호와를 기억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유월절에 먹어야 했던 떡은 고난의 떡이었습니다.

3절에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유교병이란 누룩을 넣어서 만든 맛있는 떡을 말합니다.

반면에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고 밀가루만으로 만들었기 딱딱하고 맛없는 떡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고난의 떡' 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떡을 먹으라는 것은 무교병은 먹고 배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 의미를 담고 가르치기 위해서 주어진 떡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무교병을 먹었다고 해서 그 자체가 고난이 아니라 무교병을 먹음으로서 자신들이 약속의 땅이라는 복안에 살게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고난과 희생을 통해서 주어졌음을 잊지 말도록 하기 위해서 유월절을 지키라 하고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이 유월절에 세부적으로 지켜야 할 규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월절의 기간 동안에는 네 지경 내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4). 그리고 첫날 해질 때에 제사 드린 고기는 밤을 지내어 아침까지 두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4). 그리고 유월절 제사는 반드시 자신들의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드려야 하고(5,6), 제사 드리는 시간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질 때에 드리고(6),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 고기를 구워먹고 아침으로 장막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7). 그리고 육 일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제 칠 일에는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말아야 하는 것이(8) 이스라엘의 유월절입니다.

이러한 유월절의 규례를 보면 아주 복잡한 듯 보이고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의식과 방법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님은 이러한 의식들이 지켜지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 담겨서 전해지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스라엘이 알고, 그 마음을 자신들의 마음으로 삼을 때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지키는 방법 하나하나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여러 마음이 아니라 한 가지 마음입니다. 즉 유월절을 지키는 규례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마음이 규례 하나하나에 담겨져 반복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말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간단하게 말하고 돌아서 버리지만, 그러나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지기까지 하나님 편에서 어떤 수고와 힘씀과 고난과 희생이 뒤따라야 했는가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유월절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구원받고 약속의 땅에 오기까지 하나님 편에서 어떤 수고와 고난과 희생이 있어야 했던가?' 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유월절이며 유월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세부적인 규례들은 그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수고와 고난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복안에 살고 있다면 복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다만 복을 누리는 것에 치우쳐 버리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복이 주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어야 했던가를 앎으로서 이스라엘 자신도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의 형편은 앞일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가운데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고 느긋하게 애굽 사람의 환송을 받으면서도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3절의 말씀대로 급속히 나왔습니다. 그것도 밤에 나왔던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제발 빨리 나가달라고 재촉하는 가운데 평소 같으면 잠잘 시간에 급하게 빠져나온 것입니다. 급하게 나오느라고 발효되지 못한 떡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것을 잊지 말라고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고, 고기는 아침까지 두지 말라고 하고, 제사는 초저녁 해질 때에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런 의식 하나하나를 통해서 자신들이 애굽에서 나오던 때를 다시금 상기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서 뭉그적거리고 살아가야 할 존재가 아니라 빨리 빠져나와야 하는 사람들이다' 는 것을 깨달아야 했던 것입니다.

무교병을 먹는 것이나, 고기를 아침까지 두지 않는 것이나, 제사를 초저녁 해질 때에 드리는 이 모두가 '이스라엘 자신들이 어디에서부터 빠져나온 특이한 종족들이며, 그들의 행동과 모든 삶 자체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줘야 할 책임이 있는 인생이다' 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세상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고 기대를 걸고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열심히만 하면 뭔가 될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신자로서의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지 못한 모방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일 년에 한차례 유월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급속하게 빠져나오게 하신 그 마음과 똑같아야 했습니다. 그 마음이 곧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마음과 똑같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그 마음과 동일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곧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즉 유월절은 악하고 더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하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고난의 떡을 먹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 마음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칠칠절, 즉 맥추절이고 초막절 즉 추수절이라면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님이 주신 세상의 좋은 것들을 가지고 감사하자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칠칠절의 규례를 보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10,11)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초막절 역시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하라(15)고 말씀합니다.

이 규례들은 단지 주어진 소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들고 나오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복이 누구로부터 주어지는가를 잊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네 힘과 네 열심히 아니라 하나님의 고난과 희생과 수고를 통해서 주어지는 복임을 잊지 말라고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즐거워하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는 제사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바로 이 자리에 복이 임한다고 말합니다. 즉 복이란 하나님의 희생을 통해서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모든 소출을 바라보면서 이것은 내가 수고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수고로 주어진 것임을 깨닫고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유월절 정신으로 드리는 칠칠절이고 초막절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복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이것이 주님의 희생과 수고 덕분으로 주어진 복임을 알고 감사하면서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기를 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칠칠절이고 초막절입니다. 즉 맥추절이고 추수절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좋은 것이 주어졌다고 해서 감사하는 것과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좋은 것이 주어졌을 때 감사하는 것은 시키지 않아도 잘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절기란 세상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영원한 복안에 거하게 하신 것을 감사하라는 것인데 지금 절기는 세상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세상에서 잘되게 하신 것을 감사하는 인간의 절기로 전락돼 버린 것입니다.

고난의 떡을 먹는 유월절 정신은 '나는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희생과 도우심으로 살아간다' 는 것을 알고 자기의 모든 힘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해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수고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셨기 때문이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의 정신 가운데서 드려지는 칠칠절과 초막절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모든 소산물의 출처가 어디인가를 찾아갈 때 결국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즉 하나님의 고난과 희생이 있는 그 자리더라는 것을 깨닫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의 출처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에 있음을 잊지 않고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날마다 감사함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에 눈 돌리지 아니할 때 그것이 이미 절기를 지키고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날짜를 정해서 절기를 지키고 헌금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 덕분에 살고 있는 자신을 잊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7

1. 악을 제하라 (17:1-13)

1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은 아무것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희 가운데에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3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4 그것이 네게 알려지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조사해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5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 남자나 여자를 돌로 쳐죽이되

6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7 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8 네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서로 간에 고소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9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지를 네게 가르치리니

10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대로 삼가 행할 것이니

11 곧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율법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말하는 판결대로 행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겨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

12 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13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무법하게 행하지 아니하리라

Deu 17:1 또 여러분은 병이 들었거나 불구가 되어 흠 있는 소나 양을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물로 드려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런 것을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Deu 17:2 [우상 숭배자의 재판 절차]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실 어느 성읍에서든지 어떤 남자나 여자가 나타나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악하게 보시는 일을 저지르고 주님과 맺은 계약을 범하거나

Deu 17:3 제멋대로 다니면서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내가 시키지도 않은 해나 달이나 별들을 숭배하는 일까지 있을 것입니다.

Deu 17:4 여러분에게 그런 소문이 들리거나 그것을 여러분에게 고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이 사실인지 정확하게 조사를 해보십시오. 만일 이스라엘에서 누군가가 정말로 그토록 흉칙한 일을 저질렀다면

Deu 17:5 그런 일을 저지른 남자나 여자를 성문 밖으로 끌고 가서 돌로 쳐죽이십시오.

Deu 17:6 그러나 두세 사람의 증언이 있을 때에만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죽일 수 없습니다.

Deu 17:7 사형수를 처형할 때에는 증인들이 먼저 돌을 하나씩 던지고 그 다음에 그 성읍에 모인 모든 사람이 돌을 던져 죽이십시오. 이렇게 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죄악을 없애십시오.

Deu 17:8 [최고 법정] 만일 여러분의 지방 법정에서 판결을 내리기에 어려운 문제들 곧 우발적인 살인이나 고의적인 살인 문제나 사유 재산의 분쟁들이나 폭행 사건 등이 일어나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정해 놓으시는 최고 법정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Deu 17:9 여러분은 그 곳에 있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나 그때에 임무를 맡고 있는 최고 재판관들에게 판결을 내려 주도록 요청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 것인가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Deu 17:10 그러면 여호와께서 지정하시는 그 최고 재판관들이 여러분에게 내려 주는 판결대로 하십시오. 또 그들이 지시하는 것은 모두 꼭 그대로 지키십시오.

Deu 17:11 그들이 여러분에게 지시하는 명령이나 판결은 모두 그대로 따르십시오. 그들이 여러분에게 무슨 판결을 내려 주거든 더 강하게도 하지 말고 더 약하게도 하지 마십시오.

Deu 17:12 누구든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이나 최고 재판관의 판결을 무시하고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를 처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에서 죄악을 척결하십시오.

Deu 17:13 그러고 나서 온 백성에게 그 소식을 알리면 모두 두려워할 것이며 다시는 그렇게 건방진 짓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보면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은 아무것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무 흠이 없고 병들지 않은 깨끗한 제물입니다.

흠 있는 것, 병든 것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흠없는 것, 병들지 않은 건강한 것만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한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의 피조물은 힘없고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피조물에 죽음이 찾아들고 질병이 찾아든 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질병이 있고 죽음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힘없고 깨끗한 제물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아무리 자신을 고치고 변화한다고 애써 봐도 질병에서 해방될 수 없고 죽음에서 해방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피조물의 모습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흠이 있고 없고의 문제도 믿음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흠이 있다는 것은 십일조 하지 않고 예배 빠지고 기도하지 않는 등의 행위의 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 창조주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인간의 본래의 모습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며 흠 없는 피조물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원래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올 수 있습니까?

없다면 우리들은 다같이 죄를 안고 있는 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들고 하나님께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흠있는 것은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흠 있는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9절에 보면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지를 네게 가르치리니" 라고 말씀합니다.

성중에서 송사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판결하기가 어렵거든 제사장과 재판장에게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과 재판장이 판결한 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12)고 합니다.

즉 제사장과 재판장의 말을 따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은 죽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악이고 악을 용납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과 재판장은 성중에서 해결 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즉 인간으로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위해서 제사장이 있고 재판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해결 할 수 없는 죄는 제사장과 재판장이 시키는 대로 행함으로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흠 있는 인간은 죄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누군가를 통해서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12절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악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 본문에서는 도적질 강도 이런 것들을 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 재판장을 통해서 죄를 해결하지 않는 것을 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죄를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시는 분을 우리 가운데 보내셨는데 그분의 말을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듣지 않고 제멋대로 죄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니까 그 악을 제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죄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들고 나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신을 감추고 꾸미면서 죄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갑니까?

죄 있으면서 죄 없는 척 하는 것은, 세상의 인간 모두를 죄인이고 흠 있는 썩어질 피조물로 규정하고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내신 예수님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악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안에서 제하여질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해도 자기 죄를 모르고 죄를 들고 예수님께 나오지 않으면 천국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신자의 냄새가 안 난다고 교인들을 야단을 치기 일쑤입니다.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자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신자의 냄새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훌륭한 인격과 인품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 신자의 냄새가 아니라 종교인의 냄새입니다.

자신을 수양한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냄새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냄새란 자신의 죄를 그대로 드러낸 가운데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7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명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하는 것을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역시 이런 자를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집니다. 어떤 인간도 인간으로부터 경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악이 될 뿐입니다.

신자가 날마다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임으로서 얻어지는 유익은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가운데 날마다 그리스도가 오심을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참된 감사는 자신의 죄가 발견되어진 현장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한 십자가의 감사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자기의 유익을 기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옳고 그름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말씀이 옳다한 것을 사람들 앞에서 옳다고 시인하지 못하고 말씀이 그르다고 한 것을 사람들이 옳다고 하기 때문에 같이 옳다고 한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나의 더러운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제사장 되시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어지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감추려고 하지 말고 발견하려고 하십시오.

죄를 발견함으로서 그리스도의 피 흘림에 감사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흠 없는 자로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더러움과 죄를 감추고 위장하려는 악에 빠지지 말고 죄를 발견하고 드러내면서 그리스도의 피 흘림에 감사하면서 살아있는 신자로서 한평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이스라엘의 왕(17:14-20)

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Deu 17:14 [왕에 대한 규정]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하고 살다보면 여러분도 주변의 다른 민족들처럼 왕을 세우고 싶어질 것입니다.

Deu 17:15 그러면 반드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뽑아 주시는 사람만을 왕으로 세우십시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동족이 아닌 외국인을 왕으로 세울 수는 없습니다.

Deu 17:16 또 왕은 말을 많이 보유하려고 해서도 안되고 말을 많이 도입하기 위해서 백성을 애굽에 용병 노예로 팔아서도 안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노예가 되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Deu 17:17 또 왕은 아내를 많이 두어서도 안됩니다. 아내가 많으면 왕의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또 왕은 자기를 위하여 은과 금을 너무 많이 쌓아도 안됩니다.

Deu 17:18 또 그는 왕위에 오를 때부터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보관하는 이 율법책을 베껴다가

Deu 17:19 항상 가까운 곳에 두고 평생 동안 읽어야 합니다. 왕은 이 책에서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며 이 규정들을 실천해야 합니다.

Deu 17:20 그렇게 하면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얕잡아 보는 마음도 생기지 않을 것이며 주님의 명령에서 좌로나 우로 빗나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왕과 그의 후손들이 오래오래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죄 짓기 전의 단계입니다.

이때 인간은 악을 모르고 선한 상태로 살았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이 구제를 했습니까? 십일조를 했습니까? 아니면 착한 일을 했습니까? 아담은 다만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며 살았을 뿐입니다. 결국 선은 행동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로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여기며 크든 작든 많든 적든 관계없이 감사하면서 그 은혜를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상태는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땅에서는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악을 행한 자로서 악에게 질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인간의 상태입니다.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속에서의 본성이 착함을 따라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득을 따라 살도록 붙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마음은 착함과 선함을 따라 살고 싶은데 현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핑계를 댑니다. 결국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앎과 행동을 달리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지 않습니까?

이미 악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는 삶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과 300년간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워간 에녹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에녹은 우리에게 죽음에 처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세상과는 결별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다서에 보면 에녹은 심판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에녹은 장차 하나님께서 경건치 않음에 대해서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심판을 알았기 때문에 경건치 않음을 좇아갈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단계에서 살아갑니까?

첫 번째 단계는 인간에게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두 번째 단계로 사느냐 아니면 세 번째 단계로 사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즉 악에 의해 지배를 받고 살아갑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살고 있습니까? 라는 물음이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왕을 세울 때 지켜야 할 법칙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왕이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땅에도 왕이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왕은 모든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는 우두머리를 말합니다. 아랫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립니다. 대신 왕의 책임은 나라를 부강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만 부강 되고 경제가 발전해서 잘 살게만 된다면 국민은 그것으로 대만족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왕을 원합니까? 자기들을 잘살게 해줄 왕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통령을 뽑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민중들이 원하는 대통령은 잘살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해도 나 배부르게 해주고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면 그것으로 최고의 대통령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를 잘살게 해주는 대통령이라면 도덕적인 흠도 얼마든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자기 소유욕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과연 어떤 왕을 원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하나님이 선택하여 세우시겠다고 하는 왕은 전혀 다른 모습의 왕입니다.

먼저 15절에 보면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거하면서 이방 나라같이 왕을 세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거든 너희들 마음대로 왕을 세우지 말고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왕으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왕이 필요 없는 민족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시에만 순종하며 살면 되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이방나라를 바라보고 그들처럼 왕을 세워서 우리도 잘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나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왕을 세우려면 이렇게 세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을 세우되 끝까지 이스라엘다운 모습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원한다면 강력한 능력을 가진 자를 우두머리로 세워서 자기들도 이방 나라처럼 잘살아보자는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왕을 원하겠습니까?

소위 지도력 있고,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는 왕을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민 중에서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라고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를 왕으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왕이 되어야만 이스라엘이 끝까지 선민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굳이 왕을 세워서 그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겠다면 내 마음을 잘 알고 내 뜻을 너희에게 잘 전할 수 있는 그런 자를 세워주겠다' 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왕이야말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잘 이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러한 왕을 하나님이 세우셨을 때 그 왕을 환영할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당연히 세상에서 잘살고 땅의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살아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환영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장차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통해서 참된 하나님의 백성과 백성이 아닌 자로 구분되게 됩니다.

그 왕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세상에 오신 왕을 환영하는 자가 곧 하나님의 참 백성이고, 밀쳐내는 자는 백성이 아닌 것으로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6,17절을 보면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왕은 세상에 대해서는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왕의 힘이고 국력입니다. 국력이 없으면 나라를 지탱하고 보호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나라로부터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말을 많이 얻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힘은 여호와이고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왕이 보여줘야 했던 것입니다.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도 세상의 쾌락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를 위해서 은금을 많이 쌓아두지 말라고 하는 것도 돈을 힘으로 삼고 돈으로 살아가는 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왕의 모습입니다.

앞으로 이스라엘은 이런 왕으로 인해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이 잘못될 때 이스라엘 전체는 징계를 받아야 했습니다.

왕 한사람이 잘함으로서 이스라엘이 복을 받고 왕 한사람이 잘못함으로서 이스라엘 전체가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다윗 언약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볼 때 이스라엘에 세움 받을 왕은 참으로 특이한 왕입니다.

세상 왕과 전혀 반대입니다. 세상 왕은 자기 나라를 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힘을 기릅니다. 그것이 군사력이고 군사력은 말을 많이 가짐으로서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이 있어야 발전될 수 있고 경제가 발전한 나라의 왕이 큰소리 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권력을 이용해서 쾌락을 누리고자 하는 것도 세상 왕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이런 모든 것을 포기한 왕입니다.

세상 나라의 왕은 인간의 능력과 힘에 의해서 국가의 유지되고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자비하심에 의해서 나라가 유지된다는 것을 믿는 자입니다.

그 자만이 이스라엘의 참된 왕의 자격이 있습니다.

나라를 부강시키는데에는 관심 없고 오직 백성들의 죄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의 길로 가지 않도록 그 앞에서 자신이 먼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 것은 포기하고 오직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18,19절에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고 합니다.

하나님과 멀어질 요소, 즉 세상 것은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율법책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믿음만 고집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은 그 왕을 보고 왕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만 따르는 민족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이스라엘이 세상 것을 포기하고 국가의 부강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것에만 관심 두고 사는 왕을 따르고 순종하는 것으로 결국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임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마음속에 세상 것이 포기되지 않고 왕을 통해서 잘살아보고 싶은 욕망으로 산다면 세상 것을 포기한 왕은 환영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어떤 왕을 원하느냐가 지금 이스라엘이 무엇을 바라고 사느냐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왕을 원하십니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선택하여 세우신 참된 왕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세상 것을 포기한 채 오직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에 배척했습니다. 왕다운 강한 힘이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당신 같은 왕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결론이 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교회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난무하지만 진심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영접하고 그 왕에게만 순종하고 따르는 참된 예수님의 백성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과연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상 것을 포기하고 오신 예수님인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세상 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이려고 합니다. 자신들의 선행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이려고 하고, 거대한 건물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이려고 합니다.

전도하고 선교하고 구제하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따르려고 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이고 왕을 따르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강한 힘을 가지고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머리 둘 곳도 없는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존경받을만한 조건이 전혀 없습니다.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왕이라고 내세울만한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분은 바로 이러한 분이고, 우리가 왕이라고 따르는 분이 바로 이러한 분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인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우리들의 죄에 있었습니다.

자기 백성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잘 아셨기 때문에,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왕으로 영접하고 따르는 그분의 백성이라면 어떤 길을 가야 마땅하겠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왕과 함께 세상 것을 포기하는 길로 나가야 하고, 힘을 포기하는 길로 나가야 합니다.

교회 부흥이나 내가 잘되는 것에는 전혀 관심 두지 않은 채 오직 내 죄를 위해서 오신 나의 왕되신 주님 앞에서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하면서 '나는 예수님으로만 삽니다 라는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새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새롭게 된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은 우리의 왕이신 분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왕은 세상 것은 포기한 채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았습니다.

여러분 이런 왕을 찾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분명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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