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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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2년 1월 16일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눅23:26-31 신, 138) 조회수 : 410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2-01-21

예수님의 죄 없음을 세 번씩이나 선언했던 빌라도가 결국 무리들의 강압적인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그들 뜻대로 하도록 넘겨줍니다. 오늘 본문은 그들이 예수를 골고다로 끌고 갈 때 있었던 일에 대한 내용입니다.

1. 억지로 진 십자가

먼저 26절을 보면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등장합니다. 구레네는 아프리카 북쪽의 해안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몬도 그 유대인들 중의 하나로 추측되며 시몬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는 예수님 주변에 시몬만이 아니라 백성과 예수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왔다고 말합니다. 시몬은 이들 무리와 함께 예수님 가까이 있다가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시몬이 예수님을 생각하고 가까이에 있었는지 아니면 단지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우연히 십자가 지고 끌려가는 예수님의 행렬을 마주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제자들은 도망치고 없는 자리에 시몬이 있다가 대신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내용이라고는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지금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의 길에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우리는 본래적으로 나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하거나 해가 되는 일이라면 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자진해서 십자가를 지는 일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도 만약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있다면 그것은 시몬의 경우처럼 억지로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님 가까이에는 시몬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는 적은 수가 아닌 큰 무리였다고 말하는데 예수님을 위해 울어주는 여인의 무리가 그렇게 많았다는 것이 사실 뜻밖이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울음에 대해서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합니다. 여인들이 우는 이유가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여인들은 지금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의 비참한 모습으로 인해 울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난의 모습은 여인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정이며 감상적인 눈물이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저주의 길입니다. 그 저주는 애당초 우리가 짊어져야 할 죄의 값이었습니다. 그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고 가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보면서 그 비참한 모습에 동정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저주에 속한 자신의 비참함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

3. 복과 저주

세상의 가치관에 의하면 아이를 잉태하고 해산하는 일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이 저주로 바뀐 것입니다. 세상의 정상적인 가치관이 뒤집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의 상황입니다. 복으로 여겼던 것들 때문에 화를 당하고, 저주로 여겼던 일들이 오히려 복이 되는 때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현재의 일로 울고 웃는 것이 아니라 저주에 속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로 인해 애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독생자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이 누구시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라는 죽음의 길로 가신 예수님에게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은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한 회개의 눈물이 있게 될 것입니다. 저주에 속한 것이 곧 자신임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은 당연한 것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간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억지로라도 죽음의 자리로 끌고 나오실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 자신의 죽음을 보게 할 것입니다. 죄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하시고 그 같은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의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하며 넘치는가를 알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인생은 결국 사라질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십자가만이 우리 인생의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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