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홈  >  교육과사역  >  주일설교요약
  제  목 : 2021년 5월 2일 하늘에서의 기쁨(눅 15:1-10) 조회수 : 364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1-05-06

누가복음 9:51절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이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점이 다가오는 것을 아시고 단오하게 이 길에 들어서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으로부터 시작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님의 길은 누가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범위를 차지하는데, 그 내용이 1927절 말씀까지의 범위이니 오늘 본문으로 열어 놓는 15장은 그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1. 본문을 개괄해 보면

누가복음 15장에서 연속으로 등장하는 세 가지 비유의 말씀들은 누가복음이 나타내는 두 그룹의 지속적인 갈등구도 속에서 선포된 것들입니다. 여기서 두 그룹이라고 한 것은 한편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제자들과 예수님을 찾아오는 세리와 그 시대의 죄인들의 무리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을 반대하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인 서기관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했던 이유는, 이스라엘 내에 형성된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질서를 예수님이 거침없이 허물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의 수위가 계속 높아져 가고 있는데... 누가복음 1435절에서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선언하시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본문 1절에 보면,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아옵니다. 결국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들을 지어다.” 라고 하신 말씀이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이들이 하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비유의 중심 주제는 기쁨에 있습니다.

본문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것과 잃은 드라크마 하나를 찾는 비유가 있습니다. 먼저 어떤 사람에게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니다가 찾아서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 벗과 이웃을 불러 잃은 양을 찾았노라고 하면서 함께 즐기자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비유의 결론으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7)고 말씀합니다. 또 하나의 비유는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를 잃어버렸다면 당연히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잃은 드라크마를 찾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찾으면 역시 벗과 이웃을 불러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다고 하면서 함께 즐기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결론 역시 첫 번째 비유의 결론과 의미가 다르지 않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0)는 말씀으로 끝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에서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하늘에서 기쁨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를 아는 것에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3. 우리의 계산법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비유에서 우리는 뭔가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었다는 것과 찾은 후의 행동도 사실 조금은 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잃은 양을 찾은 기쁨은 컷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쁨을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즐기자고 할 정도로 표현 한다는 것은 조금은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잃은 드라크마 비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잃은 것을 찾고 벗과 이웃을 불러 함께 즐기자고 하는데 이 역시 한 드라크마의 액수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과도한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처럼 우리의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상황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세상은 회개한 죄인을 큰 가치 있는 존재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회개한 죄인 하나에 비해 의인 아흔아홉이 훨씬 더 가치 있고 세상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의인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한 죄인으로 채워집니다. 이 또한 숫자로 계산되지 않습니다. 회개한 죄인이 많이 있으니 하나쯤은 잃어 버려도 괜찮다고 하지 않습니다. 회개한 죄인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을 담고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하나라는 것 때문에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스스로 약속을 소홀히 하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가 열이고 열이 곧 하나입니다

 "

  이전글 : 2021년 4월 25일 제자의 도(道) (눅 14:25-35 신,120)
  다음글 : 2021년 5월 9일 믿음의 효도는 복의 통로(룻 1:14-17)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