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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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4월 28일 예수님의 기도 (마26:36-46, 신 46면) 조회수 : 525
  작성자 : 김성균 작성일 : 2019-05-01

세상의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기 자기가 믿는 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그 내용은 오로지 자기 문제로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기도는 부르는 신의 이름만 다를 뿐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의 기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형식적인 기도로만 일관하고 있거나 아예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지를 않은 채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예수님의 슬픔과 고민을 아시나요?

사실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이시라면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그 어떤 슬픔과 고민이 없이 당당하게 맞이하시는 것이 구세주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슬픔과 고민은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슬픔과 고민을 담고 있는 예수님의 기도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슬픔과 고민은 장차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십자가의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계시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죽어도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며 큰소리만 칠뿐입니다. 그들은 장차 자신들이 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지만 우리에게는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무거움을 알 수가 없고 십자가가 슬픔과 고민이 되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치 겟세마네의 제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2.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세 번이나 반복하여 하십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앞서 말한 대로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장차 제자들이 누릴 기도의 세계를 보여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기도의 세계는 나의 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신 뜻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기도의 세계입니다. 아버지가 원하신 뜻 앞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이 성취되기를 기도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의 세계입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와는 전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기도는 오직 자기 뜻을 성취하는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저주 아래 있고 예수님은 그 모든 저주를 홀로 짊어지시는 길을 가십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그 어디에서도 저주를 해결할 길이 없게 됩니다.

3. 십자가의 세계는 아버지의 뜻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세계가 가볍지가 않습니다. 슬픔과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는 무거운 세계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갈 수 없는 세계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절감하는 신자라면 바로 이것이 자신의 절박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편안한 환경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이 같은 말을 쉽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육신의 고통 고통스러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낙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린 능히 그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세계를 우리 힘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 절박한 문제로 다가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문제로 인해서 얼마든지 주저앉을 수 있는 연약하고 무능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나의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이 내게 이뤄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자기 세계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시는 세계가 어떠한가를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었기에 잠을 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깨어 있음을 세상을 제대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제대로 보게 되면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지는 것들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저주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을 바르게 보게 될 때 예수님의 세계에 참여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알게 되고, 그 세계에 참여됨을 위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어있는 신자에게서만 가능한 기도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팔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치는 연약한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현실이며 그러한 현실에서 설사 제자들이 원하는 삶이 이뤄진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세상의 끝이 이르면 저주로 끝날 인생일 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내게 이뤄지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예수님이 슬퍼하시고 고민하셨던 십자가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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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를 위한 질문 *

1.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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