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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로마서특강1(행 19-20장) 김희중 목사(20210409) 조회수 : 357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1-04-23

20210409 로마서 특강1(행 19-20장) 김희중 목사


20210416 로마서 01

로마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로마서는 지난 2020년 겨울특강부터 시작하는 것이 계절특강의 스케줄이었지만 코로나-19의 상황 때문에 부득이 한 해를 넘겨 2021년 봄 특강으로 미루게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지난 2020년 겨울에 코로나-19 3차 대 유행이 있었고, 지금도 그 여파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금 번 봄 특강도 열 수 없는 처지에서 이렇게 금요기도회의 이름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로마서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 봅니다.

로마서의 특징은 다른 서신들처럼 교회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서신들은 대체적으로 교회현장의 문제에 대한 답변으로 쓰여 졌습니다.

그러나 로마교회는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세상을 동양과 서양을 나눈 기준은 그리스라는 나라입니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그리스오른쪽은 동양이고, 왼쪽은 서양입니다. 선교에 대한 바울의 1차 구상은 동방선교였고, 이는 상당히 방대한 지역에 대한 선교였습니다.

바울의 동방선교는 1,2,3차에 걸친 선교여행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리고 동방선교 다음은 서방인데 바울은 서방선교를 위한 지역을 구상을 합니다.

바울의 구상은 온 세상의 복음화였습니다. 그리고 이 구상이 그대로 되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가시는 거지요. 그 서방선교를 위한 준비 작업이 우리가 공부할 로마서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의 특징은 교회 현장의 문제가 아니라 로마로 가기 위한 준비 서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는 마치 잘 짜여 진 신학논문과도 같습니다.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신학 전반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바울의 신학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성경일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에서 복음을 재해석을 해 낸 사람입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를 독립시킨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의 정체성을 확립한 사람이며, 기독교와 유대교가 어떻게 다른지를 명확하게 정리한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 내용이 다 이 로마서에 들어있는 겁니다.

로마서 쓰여 지던 시가는 주후 57-58년경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바나바의 요청으로 안디옥 교회에 오기까지의 시간이 13년입니다. 바울은 이 13년이라는 시간동안 율법의 시각에서 예수님을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안디옥에서부터 출발한 1, 2, 3차의 선교 현장에서의 10여년의 시간은 유대교 율법에서 복음을 해석을 해 내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의 바울의 나이도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활동한 연대를 보아서도 사상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완숙의 경지에 이르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현장에서 설교하며 전파했던 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르익어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의 사상이 정리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갈라디아서도 로마서와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신앙의인을 다루고 있지만 로마서와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갈리디아서는 선교 초반부의 서신이지만 로마서는 마무리 서신의 성격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로마서는 바울신학의 마무리와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또는 유언적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내용을 보면 1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로마서에서는 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를 어떻게 얻어야 하는가?” 이 문제를 1-8장까지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로마서 전체 분량의 절반을 할애해서 넘게 다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고 주제였던 거지요.

그리고 그 당시 유대인의 문제입니다. 유대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9-11장 까지 다루어지고 있고, 12-15장은 기독교 윤리를 다루고 15:14절부터 16장은 편지의 결미와 인사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수많은 인물들의 회심을 이끌어낸 성경입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을 이끌어 낸 성경이 로마서입니다.

어느 날 어거스틴이 집어 들어라라는 음성을 들었는데 옆에는 성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기독교 윤리를 다루고 있는 로마서 13장이 펼쳐져 있었던 거지요.

자신의 세속적인 삶에 대한 회의로 고민하고 있던 어거스틴 은 로마서 13장을 읽으면서 회개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도 로마서를 통해서 회심을 경험합니다.

루터의 문제는 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의 문제였습니다.

그는 로마서를 읽다가 여기서 회심을 경험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레이의 회심도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주후 58년경에 고린도에서 쓰여 졌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뵈뵈라는 여 집사님이 이 편지를 로마교회에 전달합니다.

- 이제 우리가 로마서를 같이 공부하게 될 텐데요, 로마서를 곧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로마서가 기록된 사도행전 적 배경을 조금 살펴보고 로마서로 가게 됩니다.

로마서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사도행전 1921절부터 사도행전 203절까지 본 후에 사도행전의 큰 흐름을 따라서 로마서를 봐야 로마서가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정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강의의 큰 주제가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이잖아요?

그리고 이번 특강은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의 여덟 번째(()) 강의입니다.

로마서를 기록할 이때는 사도 바울의 3차 전도여행 가운데 에베소 사역을 다 끝낼 때쯤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에서는 에베소 교회를 개척한 것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 후서의 편지를 써서 보내고, 마게도냐 교회를 돌아보는 이런 사역을 약 3년에 걸쳐서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921절에,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Act 19:21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그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선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서 가리라고 마음 먹고는 `그곳에 들렀다가 로마로 가야겠다'고 중얼거렸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서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작정하고 있으면서 “......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이미 사도바울이 세 번째 선교 사역을 끝낼 때에는 이미 그 마음속에 로마를 품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 본문을 보면서 미리 인식을 하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에베소에서 세 번째 전도여행의 사역이 마쳐 갈쯤에 벌써 바울의 마음속에는 이제 나는 로마로 간다.” 그리고 로마로 간 다음에는 스페인까지 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지리적 세계관에서는 스페인을 땅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사도행전에서는 바울이 에베소 사역을 끝내고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로 갔다가, 그 다음에 아가야, 이렇게 이 세 지역에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모았던 연보를 예루살렘에 전달한 후에 로마로 갈 것이고, 로마교회가 후원해 줄 수 있으면 스페인으로 (땅 끝까지)가고 싶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까지 복음을 전하면 땅 끝까지 복음 전하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예수님이 오시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은 얼마 안 가서 깨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이 로마에 가서 알게 된 것은 스페인이 땅 끝이 아니라는 거였거든요.

스페인 위로도 끝없이 넓은 많은 나라들이 있고, 또 스페인 아래쪽에도 아프리카와 엄청난 나라가 있다 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좀 바뀌고 계획도 바뀌고, 기도도 바뀌고.. 그래서 여러 가지 바뀌게 되는 거지요.

사도행전 19장을 좀 더 볼까요?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Act 19:22 바울은 먼저 그를 늘 도와주는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낸 뒤 자신은 얼마동안 더 아시아에 머물러 있었다.

에라스도라는 사람은 성경에 몇 사람이 나오는 것 같은데, 고린도의 재무장관을 지내고 있는 에라스도라는 사람도 있고, 여기 지금 디모데와 바울이 마게도냐로 앞서 선발대로 보내는 이 에라스도가 있어서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Act 19:23 바로 그무렵 에베소에서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이 도는 예수님을 믿는 지요.

예수님을 믿는 도를 정확하게 정직하게 선포하면 반드시 소동이 일어납니다.

내가 화평을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줄려고 왔고(10:34), 불을 던지려고 왔다.(12:49)’

우리가 전도를 시원찮게 했거나 성경말씀을 전해도 바르게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동도 안 일어나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런데 오늘 현대신학에서 말하는 선교란 무엇이냐?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을 회개 시켜서 예수 믿게 하면 안 되고 다른 종교와 대화를 하는 것이 선교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현대신학에서 말하는 선교는 죽은 선교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분쟁이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그저 조용하게 있다가 병자를 고치니까 호기심에 막 환자들을 데려오고 하다가, 한참 들어보면 자기들이 지금까지 믿어 온 것이 다 잘못된 것이고 사도바울, 자기가 전하는 것만 유일한 신앙이라고 하니까 거기서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 소동 가운데서 결정적으로 사도바울이 에베소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소동 한 가지만 여기서 소개를 합니다.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Act 19:24 그 소동은 데메드리오라는 은세공업자가 일으킨 것이었다. 그는 많은 직공을 두고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 신전 모형을 만들어 큰 장사를 벌여 온 인물이었다.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Act 19:25 그가 자기 직공과 동업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놓고 말하였다. `여러분, 우리는 이 사업으로 먹고 삽니다.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Act 19:26 그런데 여러분이 이미 듣고 본 바와 같이 저 바울이라는 작자가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니는 통에 우리의 장사는 이제 말이 아닙니다. 여기 에베소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이런 실정입니다.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Act 19:27 물론 나는 이런 형편에서 우리 사업에 대한 전망이나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만을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위대한 여신 아데미 신전이 그 영향력을 잃게 되고, 이 아시아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모든 사람들이 장엄한 여신 아데미를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24절 이하에 그 경위가 나오는데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은장색 : 은을 가지고 뭘 만드는 기술자)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돈 벌이를 해 왔는데 바울이 전하는 복음 때문에 장사가 안 되고 손해를 보게 되니까 동종업자를 모아가지고 바울이라고 하는 자로 인하여 자신들의 아데미 신의 위신이 떨어질 것 같다 하면서 선동을 합니다.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Act 19:28 이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는 위대하다' 하고 소리 지르기 시작하였다.

그 아데미 신에게 영광을 돌려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이렇게 외치며 선동을 합니다.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Act 19:29 시가에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바울과 함께 다니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재판에 붙이려고 강제로 끌고 원형극장으로 몰려갔다.

가이오도 성경에 네 사람 정도 나오는 것 같은데, 여기에 나오는 가이오가 있고, 그 다음에 이 사람이 혹시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고린도에 가면 사도바울이 가이오와 스데바나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요한3서에 사랑하는 가이오하면서 또 다른 가이오가 나옵니다.

그래서 가이오가 꽤 여럿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데 여기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예수 믿는 사람들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자기 제자, 내지는 자기 동역자, 동료 신앙인, 주 안에서 형제, 이런 사람들이 끌려가니까... 가이오 아리스다고 이런 사람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고 자기는 무서워서 꽁무니 빼거나 하지 않고, 이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가서 내가 해명하든지 적극적으로 변호하든지 해야 되겠다고 들어가려고 하니까,

30절에,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Act 19:30 바울이 이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제자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말렸다.

제자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제자들이 적극 말려가지고 바울이 못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을 말릴 때에는 보통 말린 게 아니고, 바울은 기어이 들어가겠다고 하고 제자들은 기어이 못 들어가게 하고 격렬히 말렸을 거예요.

그리고 또,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 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Act 19:31 바울의 친구인 그 지방의 로마 관리들도 바울에게 사람을 보내 안에 들어가면 위험을 당할테니 제발 들어가지 말라고 하였다.

관원 중에서 공직에 있는 사람 중에 바울의 친구가 있었는데

..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 연극장에 들어가지 마라...

그 연극장은 24천명이 들어가는 큰 연극장입니다.

산비탈 하나를 완전히 반원형으로 부채처럼 만들었는데, 돌 계단식이고 지붕은 없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큰 연극장인데, 거기에 사람들이 에베소 시민들이 확 - 밀려들면 그 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일절 거기 들어가지 말라고 권하더라. 그런 예기지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외치는데,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Act 19:32 극장 안은 군중들이 저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떠들고 저 사람은 저렇게 떠들어댔기 때문에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왜 이 자리에 와 있는지 조차도 알지 못하였다.

우리가 왜 모였느냐?’ 몰라요. 글쎄.. 하면서 그냥 큰 소리 하나만 나는데,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그 소리만 날 뿐이지 왜 자기들이 시위해야 되는지 잘 몰라요.

선동에 밀려가지고.. 이런 것을 요새 말로 하면 포퓰리즘(populism)이죠.

언론에 그런 것 더러 나오죠.

정치인들이 야당 사람들이 의회에서는 정식으로 안 되니까 거리로 뛰쳐나오는 거지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보면 대중 포퓰리즘에 호소하고 있다 그러잖아요?.

포퓰리즘이 뭐냐 하면, ‘대중연합주의.’ 이런 겁니다.

대중들을 선동해가지고 그들의 감정을 부추겨서 거기 영합해가지고 뭐 어찌 해 보겠다. 이런 것들이죠.

그것을 포퓰리즘이라고 해요.

이런 것이 요새만 있는 게 아니고 2천 년 전에도 있었어요.

그래서 해 아래에는 새로운 게 없는 겁니다.

2천 년 전에 그런 식으로 데메트리우스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막 사람을 선동해가지고 사도바울을 어찌 해 보려고 했던 겁니다. 몰려 간 사람은 태반이나 왜 나왔는지 모른다니까요.

33절에,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Act 19:33 알렉산더가 유대인들에게 떠밀려 군중 앞에 섰다. 그는 조용히 해줄 것을 부탁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였다.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Act 19:34 그러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안 군중은 다시 소리 지르며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는 위대하다 !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는 위대하다 !' 하고 두 시간 가깝게 떠들어댔다.

꽤 감정적이고, 선동적이고, 비이성적인 매우 감정적인 이런 분위기가 지금도 그런데 2천 년 전에는 오죽 했겠습니까?

그 때 공직에 있는 서기장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서기장의 이름은 모르겠는데, 아주 합리적인 사람이죠.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5)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Act 19:35 결국 에베소 시장이 군중을 겨우 진정시킨 뒤 말하였다. `에베소 시민 여러분, 에베소가 위대한 여신 아데미와 하늘에서 내려온 신상을 숭배하는 도시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런데 너희들은 새삼스럽게 왜 소란을 피우고 떠드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Act 19:36 이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진정하고 경솔한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37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왔으니

Act 19:37 여러분들이 여기에 데리고 온 이 두 사람은 여신의 신전에서 무엇을 훔쳐 내치도 않았고 또 여신을 모독한 일도 없습니다.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거든 재판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Act 19:38 만일 데메드리오와 직공들이 이 두 사람을 고소할 생각이 있으면 법정이 열려 있으니까 재판관들을 찾아가십시오. 그러면 즉시 처리해 줄 것입니다.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식으로 법절차를 따라서 고소를 하든지 말든지 해야지,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

Act 19:39 만일 그 밖에 또 다른 불평이 있으면 정기 시의회에 내놓으면 됩니다.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Act 19:40 오늘의 이 소동은 정당한 이유가 한 가지도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만일 로마 정부로부터 문책이라도 당한다면 대답하기가 곤란합니다.'

뭘 가지고 보고 하겠나.. 항상 관리들은 똑같이 말하죠.

모든 집회는 불법이다.’ 하고 잡아놓고 불법 요소를 찾는 거죠.

그래서 서기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소리 하는 거예요.

불법집회에 대해서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Act 19:41 그러고 나서 시장이 군중을 해산시키자 그들은 다 흩어졌다.

그러면 시작은 굉장하게 했는데 나중은 미약하게 되어 버렸죠.

흐지부지 해가지고 다 흩어져버린 거예요.

[사도행전 20]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Act 20:1 [마게도냐와 헬라의 2차 방문] 소란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바울은 신도들을 불러 마지막 설교를 하고 마게도냐로 떠났다.

이럴 때 사도바울은 내가 여기에서 순교하리라.’ 이렇게 한 게 아닙니다.

어떻게 받아들였느냐?

내가 이곳을 떠날 때가 된 거야.’ 하고 떠날 채비를 한 거죠.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Act 20:1 [마게도냐와 헬라의 2차 방문] 소란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바울은 신도들을 불러 마지막 설교를 하고 마게도냐로 떠났다.

어떤 소요는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제풀에 꺼지는 것도 있어요.

근거도 없는 것을 가지고 떠들면 그냥 가만히 놔두면 말이 안 맞아가지고 제풀에 꺼집니다.

괜히 바울이 나섰다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변명한다고 휘말렸다가 바울 너부터 맞아 죽으라 하면 이야기가 아주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런 것은 이런 때에 적극적으로 나가서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변호해야 되느냐? 아니면 한걸음 물러서서 있어야 되느냐?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상황 속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여기서는 여러 사람이 바울을 말렸어요.

이 때 말렸을 때 바울이 거기에서 몸을 빼어가지고 빨리 수습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어떤 때에는 바울이 아무리 말려도 결코 몸을 사리거나 뒤로 빼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가는, 나중에 예루살렘에 갈 때 보세요.

아무리 말려도 안 됩니다. 예언자가 와서 말려도 안 돼요.

그래서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다.그런 말도 나와요.

그래서 이런 판단과 결단이라는 것은 사심 없이 맑은 영으로 아주 냉철하게 잘 판단해야 돼요.

그래서,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Act 20:1 [마게도냐와 헬라의 2차 방문] 소란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바울은 신도들을 불러 마지막 설교를 하고 마게도냐로 떠났다.

마게도냐로 갔다가 아가야로 갔다가 그리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로마로 간다. 그런 행보를 갖는 거죠.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Act 20:2 가는 도중에도 지나가는 여러 도시에 들러서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헬라에 도착하여

헬라가 아가야죠. 헬라식으로 하면 헬라이고, 로마식으로 하면 아가야죠.

거기 이르러서,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Act 20:3 석 달을 거기서 지낸 뒤 배를 타고 수리아로 건너가려고 준비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기미를 알아차리고 북쪽 마게도냐로 먼저 가기로 결정하였다.

거기 석 달을 있었는데, 거기는 고린도입니다.

석 달을 머물게 되는데, 그 석 달 머무는 동안에 사도바울이 기록한 편지가 로마서라는 책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로마서를 읽은 텐데, 바울이 로마서를 왜 썼으며 무엇을 썼으며 무슨 내용을 썼으며, 누가 가지고 가서 어떻게 했느냐?

그리고 우리가 로마서로 갑니다.

로마서는 우리 보통 기독교가 굉장히 중요시 하는 성경이죠?

로마서야말로 66권 중에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어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로마서만 꼭 66권 중에 가장 중요하냐?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만, 특히 복음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목사님들은 로마서가 마치 목걸이 같으면 다이아몬드 메달과 같다. 이렇게 강조를 해요.

로마서가 언제 기록되었느냐 하면, 세 번째 전도 사역의 말기 고린도에 머문 3개월 그 기간에 기록 되었습니다.

누가 기록했느냐? 다 아시는 대로 사도바울이 기록한 것이고,

누구를 대상으로 기록했느냐?

첫째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둘째는 오고 오는 세대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어보라 하는 뜻으로 기록된 거죠.

누가 가져갔느냐 하면, 겐그레아 교회 여 집사 뵈뵈라는 자매가 가지고 갑니다.

가져가면 가져가서 편지 왔어요하고 집어 던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뵈뵈라는 여자 집사가 가서 읽어주고 설명해주고 하는 그런 책이 로마서예요.

그러니까 여기 우리교회 성도 중에 겐그레아 교회 여자집사 뵈뵈 만큼 다 실력들이 있으니까 어지간하면 로마서를 읽고 설명도 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정상이에요.

여태까지 성경은 오묘하고 기묘하고 신묘막측 하고 신학을 하고 금식을 하고 계시를 받아가지고 이런 식으로 성경을 어렵다고 자꾸 주눅 들게 하는 게 매우 악한 거예요. 잘못된 거예요.

성경해석 독점주의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저는 이 공부를 같이하는 우리 교회 성도들 정도라면 충분히 읽어서 설명도 다 할 수 있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로마에 이 편지를 보낸 것은 바울이 지금 로마로 갈 계획을 갖고 있다고 사도행전 19장에서 봤죠?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그런데 사도바울이 로마에 갈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소원하고 바라고 준비하기를 여러 번 했는데 번번이 길이 막혔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지금 내가 로마로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설 정도로 번번이 로마로 가는 길이 막혀서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하여 학자들 간에 두 가지 이론을 이야기 합니다.

첫째, 만약에 바울이 로마로 갈 수 있게 되었을 경우에는 로마에 가서 바울이 무엇을 전할 것인지에 대하여 원고를 미리 보내서 미리 예습 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바울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미리 교안을 먼저 보내서 그것으로 예습하고 준비를 해 두고 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진짜 효과적이겠지요?

바울은 믿음으로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놓이게 된다.’ 는 이야기를 로마서라는 이 편지에 담은 거예요.

그것을 미리 이야기 하고 싶은 거지요.

딴 얘기보다도 그 얘기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니까 그것을 쓴 거거든요.

그래서 여기에는 예습 교재로서의 의미가 있고,

둘째, 사도바울의 자기소개의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어떤 강사를 모시게 될 때 미리 인포메이션(information) 내지는 프로파일(profile) 을 뭘 좀 보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 강사에 대하여 광고도 하고 오셔서 할 강의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고, 또 성도들도 궁금해 하기도 하지요?

어떤 사람이 오는지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는, 거기다가 복음의 핵심을 담기도 하고, 또 항간에 일말의 오해들이 있어요.

사도바울에 대한 오해가 있는 거예요.

율법을 무시한다느니, 사도도 아니라든지, 별별 그런 풍문들이 있어서 사도바울에 대해서 어떤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그 로마서라는 진리를 담아가지고 이것을 읽어보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가짜냐? 이분이야 말로 진짜다 그렇게 되겠지요.

그런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도 있었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기대를 가지고 기대하고 기다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기대하고 사모함이 충만하게 해가지고 그리고 준비하게..

옛날에 부흥회를 할 때는 부흥회 날자를 정해 놓고 기도하는데 부흥회 전에 이미 은혜가 충만했지요? 사모함이 그만큼 정말 뜨거웠거든요.

여러분, 저도 여러분에게 늘 말씀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주일 설교뿐만 아니라, 목요성경공부나, 계절특강이나 새벽기도회나....... 무슨 시간이든 말씀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가지시기 바랍니다.

왜인지 아세요?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스승은 오직 성령하나님이시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도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잖아요.

목사가 좀 - 부족하게 전할지라도 사모함과 기대함이 크면 그 준비된 그릇은 성령하나님께서 채워 주실 줄 믿거든요.

옛날 부흥회 때 은혜는 그렇게 임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부흥회를 시작하기 전에 사모함과 기대함으로 준비하면서 이미 분위기는 무르익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늘 불렀던 찬송인데도 준비하는 찬송의 시간부터 이미 성령의 충만함은 시작된 거지요.

여러분, 제 말을 이해 하셨습니까?

김희중 목사를 기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종이지만 저를 통해서 선포되는 말씀의 주인은 성령 하나님이시거든요.

사도바울도 지금 어느 정도 스케일이 있고 규모가 있는 바울이 쓴 13개의 서신중에 제일 규모 있게 쓴 그런 서신이 로마서입니다.

그리고 분량이 제일 길게 섰어요.

그래서 기대를 가지고 기대하고 기다리도록 ......

이런 목적으로 바울이 자기가 갔을 경우를 생각한다면 이런 목적으로 로마서라는 편지를 먼저 보낸 것입니다.

두 번째 번번이 가려고 했는데, 그 때마다 길이 막혔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에도 또 못 가게 될지 모른다는 거지요.

그렇게 또 못 가게 될 것 같으면 자기는 못 가도 자기의 복음은 가야 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때까지만 해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고, 이런 것을 보여주셨고, 이런 일을 하셨고, 이렇게 죽으셨고, 이렇게 부활하셔가지고, 이렇게 승천하시고, 이렇게 다시 오실 것이다.

이런 것만 들었지 그 예수님 하신 일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이런 것을 세밀한 내용으로 담은 서신들은 없었거든요.

바울 사도가 로마서를 쓴 때가 주후 57-58년 경으로 보거든요.

57년경으로 보면 바울이 이 로마서를 쓸 당시, 다시 말해 주후 58년경에는 신약문서의 대부분은 이제 막 기록되려고 했거나 기록되었어도 몇몇 사람 외에는 알지 못하거나 그럴 때입니다.

이것이 사본되어서 일반 사람들에게 막 공개되려면 숱한 세월이 지나가야 돼요.

다시 말하면 로마서에 기록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보혈과 이런 것들이 교리화 되어서 일반 성도들에게 인식되어 지기까지는 상당히 세월이 흘러야 되는데, 그것을 혹이라도 자신이 로마에 영원히 못 갔을 경우라도 이 내용의 편지를 로마에 보내 놓으면 당시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시대이니 소정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 거지요.

그 때는 온 세상이 로마와 헬라가 하는 대로 그냥 다 따라하는 세상이에요.

그래서 바울이 헬라는 이미 지났잖아요.

그런데 헬라가 아니고 로마에 갖다 던져놔야 이게 온 세계로 퍼지겠다는 거지요.

그래서 이 복음의 다이너마이트복음의 듀나미스라고 되어 있는데, ‘듀나미스에서 다이너마이트가 나온 거예요.

로마에 이 폭탄을 터뜨려야 이 파편이 온 세계로 튀어가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거지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쓴 목적은 자기가 갈 수 있다면 미리 예습 교재로서 보낸 것이고, 바울이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복음의 핵심을 적어 보내고, 바울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이것을 불식시키거나, 또 기대를 가지고 기대하게 하는 그런 목적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 다음에는 혹시 못 갔을 경우에는 자기는 못 가도 자기가 전하는 복음은 로마에 심어주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겐그레아 교회 여 집사 뵈뵈라는 자매가 이 편지를 가지고 로마로 가는데... 그 여 집사가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여러분 어디에서 가장 정말 중요한 문건을 전달하는데 무지렁이를 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에 남자를 보내면 남자는 어디 가서 괜히 어떤 건달패에 걸려가지고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어요.

그러나 여자들은 어지간하면 죽이지는 않는 수가 있거든요.

누가 여자를 꼭 죽이려고 그런 사람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어쩌면 모르겠어요. 결과니까 이런 말 할 수 있지만, 남자가 전달하러 갔다면 중간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여자가 가져갔기 때문에 중간에 위험이 있었어도 잘 모면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 얘기는 여기 나와 있지 않지만, 고린도 겐그레아 쪽에 남자가 많이 있었지만 남자를 안 보내고 여자를 보냈겠느냐? 물론 설명은 없습니다. 어떻든 여자가 가지고 갔어요.

한편은 그러니까 일꾼 뵈뵈일꾼이라는 말이 디아코노스라는 말인데, 집사예요.

여러분 집사가 계급이 아닙니다. 일꾼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여자도 일꾼으로서 교회 일꾼으로서 임명된 것 같습니다.

당시 겐그리아 교회에 사도바울의 로마서를 가지고 가서 읽어주고 설명해 주는 일까지 맡길 수 있는 여성도가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로마서를 겐그레아 교회 여 집사님이 가지고 가는데 그 내용을 우리가 이제 읽어보려고 하는 거죠.

이때가 주후 57-8년이라고 제가 그랬는데, 다른 학자들도 거의 견해가 비슷해요.

그러면 사도바울이 순교하는 해가 언제냐 하면, 주후 67년이거든요.

그러면 얼마 남은 거죠? 10년 정도 남았어요.

자기 남은 생의 사역 기간이 10년쯤 남았을 때이고, 바울이 지금까지 몇 년을 일 해 왔느냐 하면, 10년쯤 일 해 왔어요.

10년이 첫 번째 전도사역의 2년 정도, 두 번째 전도사역의 4년 정도, 세 번째 전도사역의 4년 정도. 이렇게 해서 한 10년 정도 일 해 왔고, 앞으로 10년쯤 더 일할 겁니다.

그리고 바울이 사역자로서 준비하는 데는 13-14년 걸렸어요.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고,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고 아라비아에로 가서 3년 있다가 길리기아 다소에 가서 10년 동안 푹 무르익은 다음에 준비해 가지고 안디옥에서 1년을 일하고, 14년이 지나갔을 때 첫 번째 선교여행을 떠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첫 번째 선교여행 때에 2년 정도 했고, 두 번째는 4년 정도 했고, 세 번째도 4년 정도 했고, 로마서를 보냈을 때는 이제 남은 삶이 한 10년 남았을 때였던 겁니다.

그 남은 10년 중에 약 5년 정도는 감옥살이 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예루살렘 가이사랴 감옥에 가서 2년간 감옥에서 썩어버리죠.

그 다음에 로마에 가서 로마 가택연금 상태에서 또 2년간 또 옥살이를 해요.

그리고 잠시 놓였다가 마지막 체포되었을 때 또 옥살이를 1년 쯤 하니까, 감옥살이만 꼬박 5년에서 5년 반 남아있고, 활동의 자유가 있어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그저 4년에서 4년 반쯤이니 5년이 채 안 될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앞으로 10년이나 20년 산다 할지라도 실제로 내가 마음 놓고 다니면서 일할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은 거예요.

저는 저의 남은 목회의 날을 늘 헤아리고 있어요.

이유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합니다. 저도 한 10년 남았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얼마 안 가서 일 할 수 있는 날이 마무리 되는 겁니다. 남은 날이 많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분의 인생의 결과를 알고 있으니 지금 로마서를 보낼 때 바울의 남은 날이 한 10년 남았지만, 남은 날들의 내용을 보면 5년 이상의 옥살이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5년 정도 중에 오면서 가면서 길에서 보낸 세월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 먼 길을 오고 가니까..

그런데 실제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기간은 많지 않은데, 그래도 그 남은 10년 기간에 사도바울이 옥살이에도 그냥 놀고 있지 않거든요.

옥살이 하면서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 이런 옥중서신도 기록했고, 목회 서신 이른바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를 기록했어요. 그것만 해도 벌써 일곱 권 아니겠어요?

그런 일을 옥중에서 합니다.

그리고 특히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교회 장로를 세우고, 집사를 세우고, 그런 사역이 남아 있는 사역이기도 하고, 그런데 어떻든 지금 현재 그의 사역, 준비기간 말고 실제 선교사역에 뛰어든 한 중간쯤에서 고린도에서 딱 3개월 머물면서 로마서를 썼다는 겁니다.

이런 것이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도 바울은 총 34년 정도 일한 것 같거든요.

사역을 나가기 전 14년은 준비 기간이었고,

뒤에 20년은 로마서 기록 전 10(1차 전도사역 2, 2차 전도사역 4, 3차 전도사역 4), 로마서 기록 후 10년 이렇게 대체로 나누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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