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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로마서 특강13 - 제2부 하나님의 의에 대한 변론(롬 9:1-11:36) 김희중 목사(20210... 조회수 : 359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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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특강13 - 제2부 하나님의 의에 대한 변론(롬 9:1-11:36) 김희중 목사

20210709 로마서 13

2, 하나님의 의에 대한 변론 (9:1-11:36)

. 이스라엘의 과거 (9:1-29)

1. 바울의 슬픔 (9:1-5)

2. 하나님의 주권 (9:2-29)

. 이스라엘의 현재 : 유기 (9:30-10:21)

1. 행위로 의를 추구함 (9:30-33)

2. 그리스도를 거부함 (10:1-15)

3. 선지자를 거부함 (10:16-21)

. 이스라엘의 미래 : 회복 (11:1-36)

1. 이스라엘의 부분적 유기 (11:1-10)

2. 이스라엘의 잠정적 유기 (11:11-32)

유기의 목적 (11:11-24)

회복의 약속 (11:25-32)

3.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찬양 (11:33-36)

사도바울은 로마서 7, 8장에서 복음의 진수를 말씀하신 후에 다시 그의 관심은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Rom 9:1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나의 겨레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 나의 동족 유대인들이여 !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를 내가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 때문에 밤낮 마음이 무겁고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만일 나의 영원한 파멸이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올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그 편을 택할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겉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도 아시고 성령께서도 아십니다.

Rom 9:2 (1절과 같음)

1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움직이는 내 양심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해 줍니다.

2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참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데, 사도바울의 마음에 무슨 근심이 있고, 또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느냐?

그것은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Rom 9:3 (1절과 같음)

3 나는 혈육을 같이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

여러분,

신약성경 27권 안에 바울의 서신이 13개가 있지만, 자기 내적인 심적 고통을 이렇게 강렬하게 표현한 곳이 없어요.

그래서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들이 마땅히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진리를 먼저 수용하고, 또 먼저 복을 받아야 될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느라 실컷 수고하고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니까 굉장히 마음으로 안타까워하면서 고통스러워 합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에게도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이웃을 향한 이런 마음이 있습니까?

부모와 형제와 일가친척들 중에 끝내 복음을 안 받아들이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사람은 없나요?

자식리라도 마찬 가지입니다.

아이들이 장성을 하면 때리지도 못하고 끌고 억지로도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것처럼 고통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지금 목회자이지만 형제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의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다 치르고 나서 큰형님이 우리 형제, 우리가족은 이제부터 다 교회를 다니자 라고 권면했고, 형제들이 다 - 대답을 했으나 여전히 아직은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 민족인 유대인들이 거의 복음을 안 받아들이거든요.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제일 먼저 받아들여야 할 유대인들이 더 거부하고 안 받아들이는 거지요.

이런 동족을 향하여 바울이 얼마나 간절한 심정을 토로하는지 자기 자신이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기 동족이 복음을 영접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렇게까지 표현합니다.

4절입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Rom 9:4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도 하나님의 명령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특별한 백성으로, 선민으로 삼으셔서 영광의 광채가 가득한 구름으로 인도하시고 또 얼마나 여러분에게 복을 주고 싶어 하시는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규칙들을 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고 위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4 나의 동족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계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율법이 있고 참된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1)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Rom 9:5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섬긴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있습니다. 육신으로 말한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의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합시다 ! 아멘.

5 그들은 저 훌륭한 선조들의 후손들이며 그리스도도 인성으로 말하면 그들에게서 나셨습니다. 1)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합시다. 아멘.

자 여러분, 바울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본 사람만 성경을 제대로 본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된 것까지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 말씀대로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게 무슨 얘기냐?

6절입니다.

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Rom 9:6 나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지 않았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이스라엘 사람은 아닙니다.

6 나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은 아니며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ㄱ)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Rom 9:7 )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참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에게는 다른 아들도 있었으나 약속은 이삭과 그의 자손에게만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 21:12)

7 아브라함의 후예라 하여 모두 아브라함의 자녀는 아닌 것입니다. "2)이사악의 혈통을 이은 자만이 네 자녀라 불리리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Rom 9:8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구원의 약속을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8 이 말씀은 육정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오직 약속의 자녀만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는다는 뜻입니다.

똑같이 아브라함에게도 났어도 이스마엘을 통해서 난 것이 아니고, ‘하갈을 통해서 난 것이 아니고, ‘사라에게서 이삭이 나가지고 그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삭에게서 난 자가 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느냐? 그것도 아녜요.

이삭에게서 난 자도 에서의 자손은 아니고, 야곱 자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육신의 자녀가 다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만이 그 약속에 참여한다는 거죠.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ㄴ)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Rom 9:9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ㄴ) `내년에 내가 너와 사라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18:10)

9 그 약속이라는 것은 "3)내년 이 즈음에 내가 올 터인데 그 때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신 말씀입니다.

같은 아브라함의 씨라도 하갈에서 난 것은 아니고, 사라에게서 나야 그게 진짜라는 거예요.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Rom 9:10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고 이 아들 이삭이 성장하여 결혼하였습니다. 그의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를 낳을 무렵,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쌍둥이 형제 중에서 ㄷ) 먼저 태어나는 아들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ㄹ) `나는 너희의 조상 야곱만을 사랑한다'라고 기록된 성경 말씀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그들이 아직 아무 선한 일도 악한 일도 행하기 전에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것만 봐도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작정한 것을 실행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고 택한 대로 하실 뿐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결정하시지 않습니다. (. 25:23. . 1:2-3)

10 뿐만 아니라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사악과의 사이에서 한번에 두 아들을 잉태했을 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브가가 잉태를 했는데, 그 안에는 쌍둥이가 들어있었죠?

리브가 배 속에 쌍둥이로 야곱과 에서가 들어있거든요.

그런데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착한 일, 뭐 그런 것에 대하여 아무것도 안 것이 없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Rom 9:11 (10절과 같음)

11-12 그 아들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따라서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4)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행을 보시고 불러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불러주시며 선택의 원리에 의해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Rom 9:12 (10절과 같음)

태어나기 전이니까 야곱이나 에서가 착한 일, 악한 일,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미리 다 아시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할 때, ‘큰 자에서?

에서 자손이 야곱 자손을 섬기게 되리라. 그렇게 했고,

13 기록된 바 ㄹ)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Rom 9:13 (10절과 같음)

13 그것은 "5)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오는 미워하였다."고 기록된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이 말씀은 구약성경 말라기 1장에 나오는 말씀이죠?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Rom 9:14 그러면 하나님은 불공평한 분일까요 ?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14 그렇다고 하나님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한다고 잘못된 게 있느냐?

..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ㅁ)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Rom 9: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ㅁ)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한없이 돌아보고 어여삐 여길 사람을 한없이 어여삐 여기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 70인역 출33:19)

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6)나는 자비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하고 싶은 사람을 동정한다." 하고 말씀하셨듯이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달음박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Rom 9:16 하나님의 자비는 누가 그것을 얻으려 결심을 했다거나 노력을 하였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풀고자 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16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안 받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뒤에 보면 야곱과 에서의 자손 중에 에서의 자손이 더 악하게 사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볼 때는 야곱도 뭐 여간 아니거든요.

이스라엘 자손이 착하게 살았느냐? 사실은 그랬다고 볼 수 없어요.

그래서 사실은 다 똑 같아요. 나쁘기로 말하면 다 똑같은데,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 착하게 살 것을 미리 예지하시고 미리 아시고 그렇게 선택했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 이런 이론이 감리교 같은 데에서 말하는 예지예정이에요.

그러나 존 칼빈은 예지라는 조건에 의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절대 주권적 하나님의 선택이다이렇게 견해가 갈라져요.

그것은 영원히 어쩌면 끝나지 않을 논쟁 같은데, 그러나 사실은 거기서 거기예요.

선택받은 야곱이나 선택받지 않은 에서나 다 죄인이기는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별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데 선택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상당히 착해 보이는데, 선택받지 않은 거예요.

우리가 볼 때 조금 더 선하고 조금 더 악하고 그런 거죠.

그런데 여러분, 어떤 사람은 조금 악하고 죄도 좀 짓고 이래가지고 겸손한 사람이 있고, 조금 착한 것 가지고, 조금 선한 것 가지고 같이 죄를 지어 놓고도 교만한 사람이 있어요.

그것도 하나님 앞에 가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ㅂ)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Rom 9:17 애굽의 바로의 경우가 그 한 예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말씀한 대로 애굽 왕국을 그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힘을 그에게 보여주는 동시에 온 세상에 ㅂ)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이 퍼지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9:16)

17 성서에는 하나님께서 파라오에게 "7)내가 너를 왕으로 내세운 것은 너를 시켜서 내 힘을 드러내고 내 이름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하려는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Rom 9:18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완고한 마음대로 버려두십니다.

18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또 어떤 사람은 완고하게도 하십니다.

어차피 내 버릴 사람들인데, “그런 일에, 하나님의 능력 보이는 일에 한번 써먹고 내버리는 거다그렇게 말하면 바로 누가 뭐라고 반발하느냐?

왜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 놓고 하나님이 진노하시느냐?하고 따진다는 거예요.

19,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Rom 9:19 [하나님의 진노와 자비]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거역하는 것을 나무라십니까 ?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로 한 것이 아닙니까 ?' 하고 여러분은 묻고 싶을 것입니다.

19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책망하십니까? 누가 능히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Rom 9:20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감히 하나님을 비난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 ) 만들어진 물건이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 (. 29:16(참조,45:19))

20 그러나 사람이 무엇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따지고 드는 것입니까? 8)만들어진 물건이 만든 사람한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반문 한다는 말은 반박하여 묻느냐? 그런 뜻이에요.

이런 인간은 어떤 사람도 아무리 의롭고 똑똑하고 잘나고 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왜 이렇게 합니까? 하고 반박하는 질문을 할 수 없다 그 말이죠.

..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Rom 9:21 )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덩이를 가지고 귀하게 쓸 그릇과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다는 말입니까 ? (. 18:6)

21 9)옹기장이가 같은 진흙덩이를 가지고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어낼 권리가 없겠습니까?

아무도 하나님께 입을 떼지 못한다는 겁니다.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Rom 9:22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 대해서 진노와 힘을 보이실 당연한 권리가 하나님께 없다는 말입니까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에 대해서 지금까지 줄곧 참아만 오셨습니다.

2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진노와 권능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시면서도 당장 부수어버려야 할 진노의 그릇을 부수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참아주셨습니다.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Rom 9:23 하나님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가리지않고 당신의 영광을 풍성하게 베푸시려고 지으신 사람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은총을 베푸실 권리가 있습니다.

23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비의 그릇에 베푸실 당신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보여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비의 그릇은 후에 영광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미리 만드신 것인데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아무도 인간들이 거기에 시비를 걸거나 하나님을 힐문하는 자세로 반박하는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24,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Rom 9:24 (23절과 같음)

24 그 자비의 그릇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우리들 가운데는 유다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서를 인용하면서,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ㅅ)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Rom 9:25 예언자 호세아가 기록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그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곡식의 씨를 뿌리고, 몸소 그들을 키우겠다 !

25 호세아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0)내 백성이 아니었던 사람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겠고 내 사랑을 받지 못하던 백성을 내 사랑하는 백성이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Rom 9:26 내 백성이 아닌 자들에게 이제는 너희가 내 백성이라고 이르겠다. 그러면 그들이 이렇게 응답하리라. 주님이야말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 2:23)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바로 그 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리라."

우리는 전혀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고 마구 굴러가는 그런 사람들인데, 거기서 어떤 사람들을 너는 내 백성이라.’ 이렇게 하신다는 거죠.

27,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ㅈ)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Rom 9:27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예언자 이사야가 이렇게 외쳤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해변의 모래알같이 많을지라도 지극히 적은 수만이 남아서 그 먼 훗날에 돌아올 것이다. (. 70인역 사10:22-23(참조,1:10))

27 그리고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관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11)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이 구원을 얻으리라.

남은 자 혹은 숨겨주신 자 남겨두신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Rom 9:28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소멸시키기로 이미 작정하셨다.'

28 주께서는 약속하신 말씀을 신속히 그리고 엄격히 이 세상에서 다 이루시리라."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만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ㅌ)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Rom 9:29 이사야는 또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만군의 주 여호와께서 몇 사람이라도 건져 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고모라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 70인역 사1:9)

29 또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12)전능하신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주시지 않았던들 우리는 소돔처럼 되었을 것이요, 고모라와 같이 되었으리라."

이사야 1장에 나오는 말씀이죠.

다 멸해버려도 하나도 하나님의 공의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잘못도 없어요.

여러분,

여기 우리 저나 여러분이나 다 멸해버려도 하나님의 공의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딸 때 자식 낳을 틈도 주지 않고 바로 죽여 버려도 하나님 잘못이 없어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했으니까 아담이 죽어버리면 다 죽는 거죠.

우리는 안 태어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있고 의지가 자유가 있었는데, 그 의지의 자유를 가지고 마귀를 선택한 사람들이라면 하나님께서 다 멸하고 전부 다 멸해버려도 하나님의 공의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중에서 몇몇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몇몇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했다고 해서 누가 시비할 수 있느냐?

그래서 공평 위에다가 긍휼을 발휘해서 몇 사람 건진 것 밖에 아무 것도 아니에요.

30,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Rom 9:30 [이스라엘의 잘못] 그러면 이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입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으로 죄 없다는 선언을 받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30 그러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추구하지 않던 이방인이 오히려 그 올바른 관계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Rom 9:31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였습니다.

31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법을 추구하였지만 끝내 그 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Rom 9:32 왜 그렇습니까 ? 믿음으로 매달리지 않고, 단지 율법을 지키는 선량한 인간만 되면 다 구원을 얻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라는 큰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32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믿음을 통해서 얻으려 하지 않고 공로를 쌓음으로써 얻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그들은 그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그 마음속에 깊은 충성과 사랑과 이런 충성하는 믿음도 없이, 여기 믿음이라는 말이 충성이나 신실함도 없이 다만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 그것만 가지고 될 줄 알았는데, 잘못 갔고,

..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33 기록된 바 ㅋ)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Rom 9:33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 `내가 시온산 위해 튼튼한 주춧돌을 놓겠다. 그 머릿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주님을 의지하는 이는 멸망하지 않는다 !' (. 8:14,28:16)

33 성서에, "13), 이제 내가 걸림돌 하나를 시온에 놓으리니 사람들이 걸려 넘어질 바윗돌이라.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거치는 돌 부딪히는 반석인데, 시온에 두셨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예루살렘에 딱 세웠는데, 예수님께서 굉장하게 거창하게 잘 생겨가지고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이렇게 하지 않고, 세상에 고운 모양도 풍채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이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이 그렇게 비쩍 마른데다가 초라한 외모를 가지고 왔어요.

그 당시 내로라하는 명문에서 무슨 대단한 어떤 공부를 한 그런 것 같지도 않고, 목수일 하다가 갑자기 나타나가지고 갈릴리 한 동네에서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빌립 이런 데리고 온 사람 보니까 전부 다 거기서 거기죠.

그런 사람을 데리고 나타나는데, 그 행색들이 전혀 사람들이 주목받을 만한 그런 차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예수님께서 그렇게 나타나신 것이 올무요 거치는 반석이라는 거예요.

교만한 자는 줄줄이 다 넘어지게 해 놨어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사람 같으면 그냥 미끄러집니다.

예수님이 외적으로 아무 것도 내 놓을게 없거든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교만한 자에게 심판이 되었다는 겁니다.

[로마서 10]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Rom 10:1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내 동족들이 구원받기를 진심으로 원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1 형제 여러분, 나는 내 동족이 구원받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며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 동족 골육의 친척이 구원을 얻겠는가? 그것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 예기죠?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Rom 10:2 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영예를 얼마나 열심히 구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방향이 빗나간 열심입니다.

2 나는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열성만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바른 지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어떤 교회에 가보면 열심이 특심한데 진리의 지식을 따라간 게 아닙니다.

어떤 것은 이단적 열심이 있어요.

이단들은 열심은 대단하죠? 그런데 지식은 바른 지식을 쫓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 사도바울이 얼마나 열심을 냅니까?

자기 친구 스데반을 죽일 만큼 열심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 열심은 잘못된 열심이었지요.

열심 당원들은 얼마나 열심히 싸웁니까? 그러나 그것도 다 - 잘못된 열심이에요.

열심은 좋은데, 진리를 따라가는 열심이고 사랑 안에서 열심이어야지, 진리도 사랑도 없는 열심은 사람을 잡는 열심이에요.

나라 망치는 열심이고 교회 망치는 열심이고 사람 잡는 열심이고 이것 아주 조심해야 돼요.

제가 보니까 온유하고 겸손하고 진지하게 하지 않고, 열심이 특심한 사람 꼭 보면 이단에 넘어가요.

게으른 사람은 이단에 넘어가지도 못해요.

대개 열심이 특심한 사람이 이단에 넘어가는 거예요. 사실 그런 수가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차분하게, 괜히 열심만 가지고 할 게 아니지요.

열심하면 바리새인들인데 그들의 열심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열심이었던 거지요.

그래서 한마디로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Rom 10:3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율법과 관습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선량한 인간이 되는 길이라 여기고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3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깨닫지 못하고 제 나름의 방법을 세우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Rom 10:4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서 얻으려고 하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율법을 종결지으셨습니다.

4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율법은 끝이 났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완성, 율법의 끝, 율법의 목표, 율법의 목적이 된다.

율법의 마침할 때, ‘마침텔로스라는 말이 끝이라든지 완성이라든지 목표 목적 이런 말이에요.

5 모세가 기록하되 ㄱ)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Rom 10:5 [구원은 만민에게] 모세는 ㄱ) 사람이 율법대로 따라 살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또한 그 율법을 그대로 지키면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 18:5)

5 모세는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하면서 "1)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것을 지킴으로써 생명을 얻는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지켜가지고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구원은 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격적 신뢰를 통해서 관계 회복된 후에 그 이후에 구원 받은 사람들이 구원 받은 백성답게 구원받은 이후에 주는 것이지, 그게 구원과 관계가 있는 게 아니에요.

구원받은 후에 삶의 법칙으로 준 거예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받은 레위기도 애굽에서 유월절 양을 잡아서 그 양피를 문 인방과 설주에 바르고 그 양고기를 먹고 믿음으로 그냥 따라 나와 가지고 시내산에서 이제부터 이런 식으로 살지 않고 구원받은 백성답게 제사장 나라된 사람답게 거룩하게 사는 법칙으로 주셨다는 거예요.

,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ㄴ)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Rom 10:6 그러나 믿음을 통해서 오는 구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찾으려고 하늘을 두루 다닐 필요도 없고 도움을 청하려고 그분을 모셔 내려올 필요도 없습니다.' (. 30:12-14)

6 그러나 믿음을 통해서 얻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2)누가 저 높은 하늘까지 올라갈까 하고 속으로 걱정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기 위해서 하늘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굉장히 번역이 어쭙잖게 되었는데, 로마서 안에서 제일 번역이 이상하게 된 곳이에요.

여기를 알려면 신명기 3011절에서 14절까지 있는 말씀을 인용한 건데, 이것이 헬라어로 번역되었다가 다시 헬라어로 번역된 70인 역에서 인용하고, 또 번역하다보니까 이런 이상한 말이 나왔는데,

앞으로 보세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누가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올라가서 그 진리를 가져와서 우리에게 행할꼬? 할 것도 아니고,

누가 바다를 건너가서 해외에 가서 유학을 해서 엄청난 지식을 가져와서 우리에게 행할꼬? 할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 없어요.

말씀이 심히 가까워서 네 마음에 있고 네 입술에 있으니까 네가 얼마든지 행할 수 있다.

그런 것을 여기 이상하게 번역을 해가지고 어려워진 겁니다.

7,

7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Rom 10:7 `그리스도를 또다시 부활시키려고 죽은 자들에게로 갈 필요도 없습니다.'

7 또 하나님께서 "3)누가 저 깊은 땅 속까지 내려갈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음의 세계에서 모셔 올리기 위하여 땅 속까지 내려갈 필요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전혀 번역이 잘못된 거죠?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ㄷ)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Rom 10:8 사실 믿음을 통해 얻는 구원은 먼데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입에 있습니다.

8 하나님께서 "4)말씀은 네 바로 곁에 있고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셨는데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신명기 3011-14절을 읽어보시면 여기 인용과 번역이 상당히 매끄럽지 않게 되었다 하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목사님은 유학도 안 갔다 왔고 박사학위도 없고 그래서 우리 제대로 못 듣는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거예요.

누가 우리 중에서 미국이나 독일에 가서 유학을 해가지고 해외에 가서 진리를 가져 와서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고,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진리를 가져와야 되느냐? 이런 소리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말씀이 심히 가까워서 네 마음에도 있고 네 입술에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따라서 행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뭐냐? 바로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는 거지요.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Rom 10:9 만일 여러분이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하고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속에 굳게 믿으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9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퀴리오스나의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 이게 우리가 지난번에 본 고린도전서 12장에 본 대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시라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예수께서 주님이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시다, 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나셨다 하는 것이 믿어지게 해줘야 이게 믿어지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해봐요.

예수님이 하나님이다해봐요. ‘웃기고 있네그러면서 전혀 받아들이지 않아요.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셨다. ’해봐요.

그것을 우리에게 믿으라는 말이요?’ 하면서 전혀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게 믿어졌다는 거죠.

예수님을 보지도 않았고 만져보지도 않았고 그런데 그것을 믿거든요.

이런 게 믿어지는 것은 우리가 무슨 이성을 가지고 따져 봐가지고 계산해가지고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이것이 믿어지게 해서 믿어진다는 거예요.

믿음은 인위적으로 해서 믿어지는 믿음이 아니에요. 믿겠다고 결심한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닌 거예요.

어느 날 그게 믿어지는 거예요.

성령의 감화와 감동 없이는 성령님의 내적 조명이 없이는 그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Rom 10: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을 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그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입으로 고백함으로써 확실하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 마음에도 없이 예 예 하는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 여기 입으로 시인하기에 앞서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 마음에 믿어져가지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신앙고백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어차피 우리가 이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서 업적을 쌓는다 해봐야 금방 다 잊어지고 없어질 것들이지 별 것도 아니에요.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한편 강도 봤잖아요.

강도가 뭘 했겠어요? 강도는 강도짓만 한 거예요.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가고 싶어만 한 것뿐이에요. 그렇게만 했는데,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아무 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영혼은 하나님께서 챙겨 가시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간단한 것이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첫째가 마음으로 믿는 거예요.

마음으로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어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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