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가정예배
•홈  >  주일가정예배
  제  목 : 3월15일 주일가정예배 안내문 조회수 : 728
  작성자 : 김희중 작성일 : 2020-03-14
  첨부파일:   3월15일 주일가정예배 안내문.hwp(28K)

315(주일), 주일가정예배 안내문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315일 주일예배도 가정예배로 드립니다. 주일오전 11시에는 일제히 주일가정예배가 드려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이 되면 미리 단정한 복장으로 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시고 온 가족이 같이 모여 앉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315, 주일가정예배 순서]

1. 인사 :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2. 십계명 선포 : (찬송가 뒷면을 펴셔서 읽으세요)

3. 예배의 초청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4. 송영 찬송 : 찬송가 1장을 같이 부르시겠습니다.

5. 회개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지었으며 원하지 않는 악을 행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주를 사랑하지 못했으며 내 이 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새롭 게 해 주옵소서. 주님 뜻 안에서 기뻐하며 주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화 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6. 사죄확신 : (인도자)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께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신 것을 믿습니다. [아멘]

7. 신앙고백 : 우리는 이렇게 믿습니다. (사도신경)

8. 찬송 : 찬송가 386장을 부르시겠습니다.

9. 예배기도 : (김태석 장로) 영상을 보지 않으실 때는 가족 중에 한사람이 기도 하세요.

10. 성경봉독 : 23:10-17 / 구약성경 784(가족이 같이 읽으세요)

11. 말씀 선포 : (김희중 담임목사) 영상을 보지 않으실 때는 인도자가 설교 문을 읽어 주세요.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23:10-17, 784)

할렐루야!

내가 너를 통하여 세상에서 참 믿음이 무엇인지,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리라! (믿음의 조상)

세상에서 참 믿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줄 너를 통하여, 세상의 가난과 굶주림의 문제와, 고난과 전쟁과 질병과 환경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 하리라! (복의근원)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찬송의 기쁨과 기도의 열정과 예배를 사모함의 뜨거움이 회복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각 가정과 처소로 흩어져 가장주일예배를 드리는 여러분과 여러분들의 가정위에 우리 주님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교회의 공적예배를 중단하고 두 주째를 맞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 착잡한 심정으로 오늘 주일을 맞았습니다.

교회의 공적예배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기독교신앙의 근간이며 우리의 신앙고백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고백 안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즉 성도의 교제와 라는 신앙고백이 교회의 공적예배를 통한 교제이며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형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루 속히 공적예배가 회복되도록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사모해야겠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지금의 이 질병의 확산과 고통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작금의 현실에서, 범죄하고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과 통곡과 탄식 의 심정과 음성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종말의 심판을 향한 마지막 경고의 징조인지도 모르겠고,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마지막 싸인 인지도 모릅니다.

아무쪼록 이 어려움이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나태했던 신앙을 돌아보는 유익한 시간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환란의 길에서 주님의 전으로 돌아온 그 날에 회복되는 예배는, 우리 모두의 심령이 회개의 눈물과 진심의 삶의 변화와 고백이 있는 예배의 감격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예배의 영광이 회복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제 설교의 본문으로 정한 욥기의 말씀으로 돌아가 보십시다.

욥기라는 성경에서 우리가 만나는 욥은, 그의 인생의 길에서 행복과 불행, 모두를 다 -겪습니다.

그런데 욥의 행복에 대해서는 누구나 부러워했겠지만, 욥의 불행에 대해서는 판단과 비난으로 반응합니다.

고난 받는 욥을 위로하겠다고 찾아온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라는 세 친구들의 반응이 그렇고 사실은 우리의 생각도 비슷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욥의 세 친구가 욥이 겪고 있는 재앙의 원인을 욥이 범한 죄의 결과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도 욥의 세 친구들처럼 하나님을 권선징악의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고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놓는 신앙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욥의 친구들은 욥이 겪고 있는 재앙은 욥이 범한 죄로 인한 결과로 오는 형벌이기 때문에, 형벌의 원인인 죄를 회개하여 해결하면 재앙도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욥기를 이해하는 데는 인간의 본성에 부합되는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10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내용에 대한 우리 성도들의 일반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본문을 이해하기를 욥이 고난을 받는 것은 욥을 순금 같은(정금 같은) 신앙인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연단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고난을 받는 것도 순금 같은(정금 같은) 신앙인이 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단련이다. 이렇게 이 말씀을 이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럼,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 이렇게 질문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각자 대답해 보세요?

인간이 단련하고 연단한다고 해서 과연 인간이 순금 같은 존재로 변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순금 같다는 것은, 다른 불순물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순도 “100%의 금이라는 하나의 성분으로만 존재하는 깨끗한 존재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간의 본성이 뭐죠? 인간의 본질이 뭐죠? 죄지요, 그 본성이, 본질이 죄인이잖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본질 자체가 악한 인간이, 즉 죄인이 고난이라는 연단과 수없는 단련을 통해서 순금 같이 깨끗하여 죄 성이 하나도 없는 인간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도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고통이 되는 상황을 많이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 비록 욥처럼은 아니라 해도, 나름의 아픈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내 인생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생의 고통이 과연 여러분을 순금처럼, 정금처럼 달라지게 만들던가요?

아니면, 고통의 강도가, 연단과 단련의 쎄기가 좀 약해서 아직은 효과가 없는 것일까요?

그러면 순금 같은 사람, 정금 같은 신앙이 되기 위해서라면 여러분은 기꺼이 욥과 같은 수준의 고난을 받을 생각은 있습니까? 욥이 받은 고난이 어떤 것들이지요?

하루아침에 전 재산이 다 날아가 알거지가 된 것이고,

하루아침에 금쪽 같은 10남매의 자녀들이 한 자리에서 몰사를 한 것이고,

하루아침에 독한 병을 얻어 덮쳐오는 고통이 저 지옥에 내려가는 것 같게 된 것이고,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아내마저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어버리라는 독한 저주를 퍼붓고 떠나 버렸는지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고,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들 자신을 존경해 오던 사람들이 고개를 저으며 침을 뱉으며 다 떠나갔고,

욥이 겪고 있는 것이 이런 고난이잖아요.

여러분, 순금 같은 사람, 정금 같은 신앙이 되기 위해서 여러분은 욥과 같은 이런 수준의 고난을 받을 생각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데 욥은 10절에서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라고 말합니다.

내가 가는 이 고난의 길을 나의 하나님, 그 분이 알고 계신다.지금 욥은 놀랍게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이 고난의 길을 나의 하나님, 그 분이 알고 계신다.

욥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이 당면한 고난 가운데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자기의 길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에 의한 인생의 길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명과 앞으로 나아가는 길 또한 하나님의 뜻에 의해 가게 될 것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우리들 스스로를 향하여 이런 질문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길에 고통이 있게 하셨다면, 그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요? 아니면 정당치 못한 불의한 일일까요?

아니 다시 한 번 이렇게 질문해 보겠습니다.

나에게는 과연 행복만을 누려야 할 자격과 이유가 있는가?

내 인생에는 고통이 와서는 안 되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할 수 있나요?

과연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답이 , 나는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라고 할 수 있나요?

만약 저에게 물으신다면 저의 대답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없습니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우리가 신앙의 명분으로 행하는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가는 길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길에 행복만 있게 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나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욥의 세 친구들의 본질적인 문제는, 인간됨의 본성과 본질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우매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생각 하나로만 모든 문제에 접근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10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다른 번역 성경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현대인의 성경이나 새 번역과 같은 쉬운 말로 번역한 성경을 한권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시면 말씀을 읽고 이해하시는데 좋다고 말씀드렸었지요?

이 말씀이 공동번역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의 걸음을 낱낱이 아시나니. 털고 또 털어도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나는 순금처럼 깨끗하리라.” 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단련 이라는 말 대신에 털고 또 턴다 는 말로 번역된 것입니다.

마치 먼지를 털 듯이 죄를 밝히기 위해 파 해치고 파 해친다는 말이지요.

제가 보기에 이 본문은 공동번역이 더 - 본문의 의미를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욥의 고난은 욥이 범한 어떤 죄 때문에 이런 고난이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따라 주시는 것일 뿐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여기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신앙용어에 대한 설명을 좀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통 하나님의 섭리 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시고 지켜 가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원리와 법칙섭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경륜을 따라 이렇게 말할 때 경륜이라는 말의 의미는 섭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크고 넓으신 계획경륜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10절의 이 말씀은, 욥을 아무리 털고 털어도 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욥의 죄 여부와 무관한 하나님의 뜻에 의한 행복이고 불행이기에 지금 욥이 겪고 있는 이 재앙도 욥의 죄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10절 말씀의 결론입니다.

욥을 털고 털어도 욥의 죄와는 무관한 재앙이기에 비록 재앙을 겪고 있긴 하지만 하나님이 그의 길을 아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욥은 순금 같이(정금 같이) 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욥이라는 인간의 본질 자체가 순금처럼 (정금처럼) 깨끗하다는 의미는 아닌 거지요.

여러분, 욥도 인간성의 본질, 본성 그 자체는 죄를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욥이 겪고 있는 이 고난은 욥의 죄의 결과로 온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섭리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고, 이루어 가시려는 그 분의 선하신 뜻과 경륜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순금 같이 되어 나온다는 욥의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욥의 세 친구들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아전인수 격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을 믿는 자신들에게 복을 가져다주시는 분이라고 고정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어떤 행함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욥이 어떤 죄를 범했을 것이라는 행위에 초점을 두고 욥이 겪고 있는 재앙을 해석했던 거였습니다.

그러므로 욥기는 인생의 고난도 행복도 하나님의 섭리와 그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높고 넓으신 경륜임을 믿는 욥의 생각과 인간의 행위에 초점을 두고 하나님을 권선징악의 하나님으로, “인과응보의 교리적 시각으로 욥의 고난을 보고 있는 세 친구들과의 충돌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11-12절을 보면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실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하게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욥이 하나님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듣기에 마치 교만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욥이 재앙을 받기 전의 자신의 신앙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욥기 1장과 2장에서 재앙 받기 전에 욥의 모습은 죄를 멀리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재앙이 주어지는 것에서 욥은 귀중한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욥의 행위와 무관하게 하나님은 작정하신 섭리와 경륜을 이루신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욥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이고 높으신 경륜입니다.

그리고 욥이 고난 중에서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순금같이(정금같이) 되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3,14절에서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는 말을 합니다.

즉 하나님 그 분의 섭리와 경륜을 이루실 것이라는 거지요.

여러분,

이 말씀은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것, 작정하신 것을 이루신다는 것은,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따라 일하신 다는 것은) 하나님은 결코 인간과 타협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욥의 친구들의 주장처럼 하나님에게는 회개하면 재앙에서 건져 주겠다 는 것이나 신앙생활 잘하면 복을 주겠다 는 그런 조건적 거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그것은 세상사에서의 상식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타협을 위해서나 무슨 거래를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인간이 하나님과 거래할 만 한 그만한 위치의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여러분, 인간이 과연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과 거래 할 수 있는 조건과 위치에 있다면 예수님이 굳이 세상에 오실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욥의 세 친구들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에 대해서 무지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즉 인간의 본질과 본성이 죄 덩어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욥이 자기의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아시고 따라서 재앙도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까요?

여러분, 비록 재앙이 있어도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또 이런 궁금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대답은 아마 아닐 것입니다. 여전히 욥은 답답함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15-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같이 읽으실까요?

15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16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17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꼭 -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우리 기독교 신앙은 내가 평안해 지는 것을 목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위 말해서 신앙은 세상에서 복 받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세상이 말하는 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늘의 복을 상속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잖아요?

여러분, 내가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아신다.”그 하나만으로도 신앙의 길은 내 힘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 참된 믿음이며 정금 같은 신앙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가야 할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도 나의 힘이나 열심과는 무관할 뿐입니다.

오직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열심과 신실하심에 의한 결과임을 믿게 되는 것이 신앙인 것이며, 이 믿음 안에 있는 것이 정금 같은 것입니다.

어떻게 이 믿음이 가능하지요?

그것은 오직 성령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성령의 조명하심 안에서 나의 행위는 온전히 다 - 부정되어 사라지고 난 후에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나타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바로 케노시스의 영성이며, 케노시스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닥쳐 온 이 고난의 문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의 환란 앞에서 저와 여러분은, 이 믿음의 시각으로 온전히 주님을 바라볼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할렐루야!

12. 찬송 : 찬송가 388장을 부르시겠습니다.

13. 봉헌 : 헌금은 다음에 교회에 오실 때 같이 하시든지, 교회통장 계좌로 이체 해 주시면 좋습니다.

교회통장 계좌번호 // 신협 131-017-294454 (예금주: 하남은광교회)

14. 교회 소식

부디 여러분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의 가정주일예배의 조치는 다음 주 월요 일(23) 지역의 초, 중고등학교가 등교 할 예정이기 때문에 특별한 상황의 악화가 없으면 22일 주일 은 비상예배시간편성시간에 맞추어 교회에서 3부로 분산하여 예배하는 것으로 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것은 상황을 판단하여 공지해 나가겠습니다.

이 환란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시고 교회를 사랑함과 예배의 사모함이 더해 가시기 바랍니다.

예배실황은 유튜브(하남은광교회 tv)로 연결됨으로 텔레비전으로도 열어서 보실 수도 있습니다.

318일 수요일에도 수요일 저녁 기도회영상을 올려놓겠으니 활용하여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건강에 각별히 유의 하시고 개인적인 기도생활과 예배에 꼭 힘쓰시기 바랍니다.

15. 마침 찬송 : 찬송가 531절을 부르시겠습니다.

16. 축도 : (예배안내문으로 드리는 가정예배에서는 주기도문을 하시면 됩니다.)

주님과 동행하시는 한 주가 되시기 바랍니다.

 "

  이전글 : 3월 8일 주일 - 주일가정예배 안내문
  다음글 : 3월 29일 가정주일예배 안내문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