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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로마서 특강10, 하나님의 의의 계시(롬 1:1-8:39) 김희중 목사 조회수 : 332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1-06-15

20210611 금  로마서 특강10, 하나님의 의의 계시(롬 1:1-8:39) 김희중 목사

20210611 로마서 10

1, 하나님의 의의 계시 (1:1-8:39)

. 머리말 (1:1-17)

1. 인사말 (1:1-7)

2. 바울의 관심사 (1:8-15)

3.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1:16-17)

. 정죄(죄가 있다고 판단하고 단정함) : 하나님의 의의 필요성 (1:18-3:20)

1. 이방인의 죄 (1:18-32)

정죄의 원인 : 하나님에 대한 무지함이 원인 (1:18-23)

정죄의 결과 : 하나님의 유기(버려두심) (1:24-32)

2. 유대인의 죄 (2:1-3:8)

진리에 따른 심판 (2:1-5)

행위에 따른 심판 (2:6-10)

공평한 심판 (2:11-16)

율법을 지키지 않음 (2:17-29)

약속을 지키지 않음 (3:1-8)

3. 전 인류의 죄 (3:9-3:20)

. 칭의 : 하나님의 의의 전가 (3:21-5:21)

1.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3:21-31)

2. 의의 예증 (4:1-25)

3. 의의 결과 (5:1-11)

4. 의와 정죄의 대조 (5:12-21)

. 성화 :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 (6:1-8:39)

1. 성화와 죄 (6:1-23)

죄에 대하여 죽음(원리) (6:1-14)

죄에 대하여 죽음(실천) (6:15-23)

2. 성화와 율법 (7:1-25)

율법에 대하여 죽음 (7:1-6)

죄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하는 율법 (7:7-25)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이 갖게 되는 새로운 신분에 대하여 세 가지 예로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첫 사람 아담(5:12-21)의 예이고 두 번째는 세례6:1-4)이며 세 번째는 결혼 (7:1-6)이 바로 그

것입니다.

바울은 이 세 가지 예로서 믿음 의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화평할 있고,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로 안에서 자유 할 있음을 말하고 는 거지요.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칭의(의롭다함을 얻음)인하여 자신의 신분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여

러 가지 예를 들어 반복하여 말하였는데요. 이렇게 한 것은 뒤에 로마서 8장에 가서 언급하고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에 대하여 말하기 위한 것입니댜

그래서 한 비유를 드는데,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Rom 7:1 [결혼의 비유]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율법을 잘 알고 있으니 말씀드립니다만, 율법은 죽은 사람에게는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십니까 ?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법률에 정통한 사람들이니 말씀 드리는데, 법률이란 것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구속력을 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바울은 로마교회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형제를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7: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법이 생활화 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로마는 부족들의 연합으로 세워진 나라로서 건국초기부터 민회 (comitaconcilium)를 통하여 국가를 운영

하였고, 후에는 공화정(共和政)을 실시하여 법제를 현저히 발전시켰던 나라예요

이처럼 그들은 건국 초기부터 법을 통하여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기도 하고, 또한 국가에 대한

의무를 요구 받기도 하였던 겁니다.

또한 로마가 재국화 되어가면서 새로운 주민이 계속 더하여 졌는데 이에 따라 그들과 본래 로마시민 사이의 차별을

두기 위하여 토지 소유권, 결혼, 사회적 위치들을 법으로 규정하였고요. 따라서 법은 각 사람의 신분에 따라 권리와

의무를 부여해 줌으로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여 결국은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힘이 되었던 나라입니다.

그래서 로마법은 근대 모든 나라에서 국가법의 모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예요.

바울은 이처럼 법의 생활화가 이루어진 그들에게 법에 대하여 말함으로 그리스도인 됨의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겁니

. 그는 먼저 로마교회 그리스도인에게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물었습니다. 바울은 이 물음을 통하여 율법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되고 죽은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율법의 통제로부터 자유 할 수 있는 길은 죽음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Rom 7:2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결혼한 여자는 남편이 살아 있는 한 법에 따라서 남편에게 매여 지내야 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더 이상 법적인 이유로 남편에게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2 결혼한 여자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자기 남편에게 법적으로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그 남편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이 구절의 기본 사상은 죽음은 모든 계약의 효력을 무효화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여인이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은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없지만(간음죄가 됨으로) 남편이 죽은 후라면

할 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죄와 결혼한 자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우리

의 남편이었던 죄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 한 자가 되었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결혼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Rom 7:3 만일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싶으면 할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안되지만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3 따라서 자기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다른 남자와 사는 여자는 간음한 여자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여자는 그 법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더라도 간음하는 것이 아닙니다.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Rom 7:4 지난날에는 유대교의 율법이 여러분의 남편이요,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위에서 죽었으므로 여러분이 율법과 한 결혼은 무효가 된 셈입니다. 이제 율법은 더 이상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여러분도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말하자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분과 결혼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선한 열매를 맺게 하려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을 하게 하려고 이 결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4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어 죽음으로써 율법의 제약에서 벗어나 다른 분 곧,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유용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말이 좀 어렵죠?

만약에 사람이 남녀로 만나 결혼하여 살게 되면 부부라는 법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어느 한편이 돌아가시거나

아니면 둘 다 세상을 떠나면 부부라는 법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혼자 살수도 있고 재혼을 할 수 있는 거지요.

어떤 분은 전도를 하려 갔는데, 부인이 교회에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이 가정은 부부 관계가 좋지 않았나 봐요.

그래서 부인이 교회에 다니고 계신데 같이 선생님도 같이 나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했더니, 남편은 자기 부인이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자기는 싫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하는 이유는 저 사람을 천국에 가서 다시 만나면 어떡하느냐는거예요

자기는 그것이 끔찍해서 교회를 안 간다는 거예요. 참 별의별 사람이 다 있지요?

그런데 여러분,

사실은 천국 가면 내 남편 내 아내 관계, 그런 것은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시집도 안 가고. 장가도 안 간다고 했어요. 천국에 가서 까지도 내 남편, 내 아내가 아니라는 거에요.

많이 섭섭한가요?

부활이 없다고 믿고 있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질문했잖아요?

마태복음 22장인데 보실까요?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ㄱ)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그래서 법에서는 죽으면 그것으로 완전히 끝납니다.

그리고 천국 가면 다시 부부로 만나서 가정생활 이루고 안달복달 하고 아웅다옹 하는 그런 것 없어요.

여기서는 뭘 잘 모르니까 자꾸 싸우고 오해하고 하는데. 거기서는 그런 일도 없습니다.

또 각 사람이 부부라고 해도 각자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할 뿐이에요.

그래서 어떤 법이든지 그것은 사람이 육체를 가지고 사는 날 동안에만 그것이 적용되는 것이지 죽은 후에는 그 법

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정죄함이 없느냐 하면, 죄를 범한 것은 율법이 있었거나 우리가 율법을 알 때나 모를 때나

죄를 지은 게 있는데, 그 죄의 삯은 사망이거든요. 우리가 죽어야 되는데, 에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저주를 혼자 다 짊어지셨기 때문에 정죄가 없는 거예요.

율법 그 자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율법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는 정죄에서 (정죄: 죄가 있다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

) 벗어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나니 그런 말씀을 하는 겁니다.

정죄가 없는 것인데.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율법 그 자체의 역할도 없는 줄 착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율법보다 더 높은 수준이 뭐냐 하면, "사랑의 법 이에요.

예수님 안에 있으면 항상 율법 그 이상을 행하게 되는 것이지 율법 이하를 행하지 않아요.

물론 처음에는 그게 잘 안 되는 단계가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믿어도 늘 살아오던 습관과 육체 속에 한 다른법이 있어서 자꾸 갈등을 하는데 그 이야기

를 오늘 로마서 7장에서 다루고 있는 겁니다.

5절 보세요.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Rom 7:5 우리가 육신에 매여 살 때는 죄 많은 욕망이 아직 우리 안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나 거역하고 죄에 물든 행실, 즉 죽음에 이르는 썩은 열매만을 맺었습니다.

5 전에 우리가 육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는 율법 때문에 우리의 온몸에 죄스러운 욕정이 발동하여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내면에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읽어냈다는 것은 대단한 발견이죠?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Rom 7:6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율법이나 관습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는 이미 죽고 지금은 하나님을 섬기는 참다운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전처럼 정해진 규칙에 무조건 복종하며 살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여러분의 마음과 뜻을 다해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또 다시 5,6절에서 자산이 결혼 법에 대하여 말한 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

여기 바울이 말하고 있는 육신이란 육체를 의미하지 않고 사람 안에서 죄의 유혹에 응답하는그 무엇을 의미합니

. 만일 사람 안에 죄에 대하여 반응하는 대상이 없다면 그 죄의 공격은 무해한 것이 되겠지요.

그러나 사람 안에는 죄에게 교두보(발판을 놓아 주는 것)를 제공해 주는 그 무엇이 있어요.

바울이 "육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죄에게 교두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 안에 있는 그 무엇을 말하는 거예요.

여기서 육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동떨어지고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인간성입니다(월리암 바클레이. 로마서 주석) .

바울은 우리가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라고 말하였습니댜

여기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란 우리 가운데 죄의 교두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 있을 때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란 우리가 육신 가운데 있으므로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욕망이 율법을 통하여 죄라는 것을 알지라도 못하게 하고 그것을 금하지 못하여 결국은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의미예요.

그러나 바울은 계속하여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 이제는이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칭의를 받은 후 부터라는 의미입니다

이때부터 우리를 속박하고 있던 육이 죽었으므로 우리 속에 있는 죄의 교두보가 사라져버렸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율법이 우리를 정죄할 일도 없어졌다는 거지요.

이것을 바울은 율법에서 벗어났으니"라는 말로 표현했던 겁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율법의 조문의 통제를 받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즉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여기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이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8장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것입니다.

죄로부터 해 방시키지 못하는 율법 (7:7-25)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ㄱ)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Rom 7:7 [마음의 법과 육체의 법] 그렇다고 하나님의 율법이 악하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줄 아십니까 ?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게 죄를 알게 한 것이 율법입니다 만일 율법이 ㄱ) `탐욕을 품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들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죄, 그 잠복해 있는 악한 욕망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 20:17(참조,5:21)

7 그러면 율법이 곧 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었던들 나는 죄를 몰랐을 것입니다. 1)탐내지 말라는 율법이 없었더라면 탐욕이 죄라는 것을 나는 몰랐을 것입니다.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Rom 7:8 그러나 죄는 이러한 욕망이 악한 것이라는 것을 내게 알게 해주면서 내 속에 숨어 있는 모든 금지된 욕망을 충동시킴으로써 이 율법을 어기게 만들었습니다. 어길 율법이 없었다면 죄를 범하는 일도 없었을게 아닙니까 ?

8 죄는 이 계명을 기화로 내 속에 온갖 탐욕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이 없다면 죄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차라리 법이 없을 때는 그 죄가 반발하지 않고 그냥 나쁜 짓을 하려고 안 해요.

그런데 법이 오니까 그것을 기어이 범하려고 하는 그런 심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사도바울은 원죄라고 하는 겁니다.

원죄라는 죄성이 우리 속에 들어있어서 뭘 하라고 하면 꼭 하기 싫어하는 그런 열매를 맺는다는 거죠.

9절입니다.

9 전에 1)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Rom 7:9 나는 율법이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몰랐을 때는 마음 편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았을 때 나 자신이 율법을 어긴 자이며 죽음을 선고받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 나는 전에 율법이 없을 때에는 살았었는데 계명이 들어오자 죄는 살아나고

우리 속에 숨어 있던 죄가 나타나서 옳은 말을 거역하고 항거하는 그런 못된 심리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런 마음이 없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있어요.

내가 경험해보니까 확실히 그런 것이 있어요. 하라고 하면 딱 하기 싫어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제가 가능하면 여러분에게 뭘 하라고 안 하지요?

그러니 스스로 알아서 해야 돼요.

자기가 하고 싶어 하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는데 강압적으로 이것 하시오. 저것 하시오. 규칙을 만들어 가지고 규

칙에 매여 가지고 전부 형식적으로 수동적인 자세에 빠져 가지고 그렇게 하면 피곤한 거에요.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Rom 7:10 그러므로 내 경우에는 생명의 길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했던 선한 율법이 그와 반대로 내게 죽음의 벌을 내려 준 결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10 나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가져다 주어야 할 그 계명이 나에게 오히려 죽음을 가져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Rom 7:11 죄가 하나님의 선한 율법을 가시고 나를 속여서 그것으로 나를 죽을 죄인이 되게 만든 것입니다.

11 다시 말하면 죄가 계명을 기화로 나를 속이고 그 계명으로 나를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명은 원래 우리를 살리려고 주신 건데,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은 그것 때문에 반발해 가지고 죽음으로 가

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12 ,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Rom 7:12 그러나 율법 그 자체는 바르고 선한 것임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12 그러나 율법은 어디까지나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정당하고 좋은 것입니다.

계명 자체는 아무 하자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 선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좋은 건데,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Rom 7:13 그러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 나를 파멸시킨 원인이 된 율법이 어떻게 선한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 그러니까 나를 파멸시킨 것은 율법이 아니라 사실은 죄입니다. 죄가 율법을 사용하여 내게 죽을 죄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얼마나 교활하고 악착같고 가증스러운지 아셨을 것입니다. 악한 목적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한 율법조차 서슴없이 이용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13 그러면 그 좋은 것이 나에게 죽음을 가져왔다는 말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죄가 그 좋은 것을 매개로 해서 나에게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죄는 죄로 드러나게 되고 계명으로 말미암아 그 죄가 얼마나 악독한 것인지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죄로 심히 죄되게’’ 가 아니고 헬라어 원어에 보면 하여금_심한게 죄인 되게 만들어서 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눈이 어두울 때는 우리 몸이 어떤 병이 걸렸는지 몰라요.

그런데 엑스레이가 생기고, C.T 가 나오고, MRI 가 나오니까 몸에 숨겨진 병이 바로 드러나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율법이라는 것이 와서 우리가 확실히 죄인인 것을 여실히 보게 했다는 겁니다.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Rom 7:14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습니다. 나는 죄라는 주인에게 노예로 팔렸기 때문입니다.

14 우리가 아는 대로 율법 자체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육정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서 죄의 종으로 팔린 몸입니다.

죄 아래로 팔려버렸다는 것은 죄의 종이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15절은 바울이 자기 내면의 갈등을 이야기 합니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Rom 7:15 나는 나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속으로는 올바른 일을 해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원하지 않는 짓, 내가 미워하는 짓만 저지르고 있습니다.

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가 행하고 있는 것이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내 자신이 이해가 안 된다는 거지요.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여러분 그런 것 없어요?

내가 이렇게 안 해야지 해 놓고 막상 부딪히게 되면 또 그렇게 하는 거예요.

혼자 있을 때는 내가 가서 좋은 말만 하고, 참 상대방 마음을 기쁘게 하고, 이렇게 해야지 했는데……

막상 만나면 또 싸우는 거예요. 그래서 화해하러 갔다가 더 큰 싸움을 하는수가 있어요.

그래서 자기 속에 이런 타락한 인간의 본성 속에 죄의 정욕이 얼마나 못됐는지,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가 평

생 선을 행하려고 하지만 선이 행해지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바로 이 문제를 극복해야 돼요. 이것은 예외가 없습니다.

바울도 자기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자 여기까지를 다시 저ㅇ리해 봅시다. (7-14)

바울은 우리가 주님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으로부터 해방 되었음을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율법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인가 바울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주기 위하여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라고 묻고, 이 물음에 대하여 그렬수 없느니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질문과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율법이 가지고 있는 이율배반(二律背反)성 때문이에요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여기 율법이 가지있는 이율배반성 이라고 말하는 것은 율법은 선한 것이지만 그것이 오리려 우리를 죽게 만든

다는 거예요.

어떻게 선한 것이 우리를 죽게 할 수 있느냐?

7절은 이 울음에 대하여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ㄱ)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7:7)’

율법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죄를 범한 우리의 모습을 밝히 보여 줌으로 우리가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정하게 하고

또한 죄인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받게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믿는 자들 가운데서 하는 일은 죄의 삯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거예요.

이런 의미에서 율법은 선한 것이지만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는 거지요.

여기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란 거울이 없으면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알지 못하는 것처

럼 율법이 없으면 우리가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15,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Rom 7:15 나는 나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속으로는 올바른 일을 해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원하지 않는 짓, 내가 미워하는 짓만 저지르고 있습니다.

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상한 거예요. 내 마음으로는 분명히 나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지, 의로운 사람 되어야지, 경건하고 성실하고 정직하

고 화평하고 이렇게 해야지 했는데, 막상 딱 부닥치면 그만 또 화부터 나가지고 또 싸우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이게 뭔가 하고 갈등을 합니다.

그래서 16절에,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Rom 7:16 나는 내 행실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내가 어기고 있는 율법이 선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16 그런데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니까 율법과 내가 원하는 것이 똑 같아요.

어떤 일 앞에서 율법을 딱 보고, 그리고 내 양심으로 그 일을 볼 떄 그것은 옳은 일이고 또 그렇게 해야 되겠다 한

다는 것을 안다는 거예요.

그래서 17,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Rom 7:17 그러면서도 이러는 나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나를 이미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게 이런 악한 일을 시키는 것은 내 속에 들어 있는 나보다 더 힘이 센 죄입니다.

17 그렇다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입니다.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 죄성이라는 것이 인격적으로 살아 있어서 선을 행하려고 하는 나에게 악한 이 죄성이 함께 있어요

그러니까 한 사람 속에 두 인격이 들어있는 겁니다.

하나는 내 선한 신앙 양심이고, 다른 하나는 죄성의 타락한 본성이에요.

이 두 성품이 내 안에 들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사람은 별 수 없이 이중인격자에요

아니 사도바울 같은 분이 자신이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자기 안에 있는 성품이 이중이라는데 누가 순수하겠어

?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인간 내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 갈등(葛藤)이 뭐냐하면 칡넝쿨과 등나무 넝쿨이에요

산에 가면 온갖 넝쿨이 뒤엉켜 있습니다. 칡넝쿨만 해도 복잡한데 거기에 등넝쿨이 얽혀봐요.

그래서 갈등(葛藤)은 한자로 칡갈)자와 등나무등)'자예요.

두 넌쿨이 얽히고 설켜고 해서 도저히 풀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인간 내면의 갈듬이에요

그래서 18,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2)행하는 것은 없노라

Rom 7:18 나는 내 육신 안에 올바른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나는 나에게 올바른 일을 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되지가 않습니다.

18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Rom 7:19 선한 일을 하고 싶어도 되지 않고 악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되지 않습니다.

19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설명이 필요 없어요.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Rom 7:20 이제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문제는 분명해집니다. 죄가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 있는 죄입니다.

내 속에 내가 아닌 것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중이라는 거에요.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Rom 7:21 나 스스로는 늘 올바른 일을 원하나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일을 해버리는 이것이 인생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도 있고 선도 있고 둘이 다 있어요.

그래서.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Rom 7:22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고 싶어하면서도

22 나는 내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반기지만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Rom 7:23 내 속 깊은 곳에 어떤 다른 것이 있어서 그것이 내 마음에 분란을 일으켜 나를 누르고 아직도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마음으로는 늘 기쁨으로 하나님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봅니다. 이제 여러분은 내 형편이 어떻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 나는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인간입니까 ! 누가 이 죽을 수밖에 없는 노예 상태에서 나를 해방시켜 줄 것입니까 ?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분이 나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23 내 몸 속에는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법은 나를 사로잡아 내 몸 속에 있는 죄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

항상 내가 사로잡혀서 나는 눌려버리고 결과는 죄를 짓고 말아버려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한 거지요. 죄의 종이니까 별 수 없이 죄를 짓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성도들 중에 뭘 좀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마음이 상하죠?

상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사람도 속에 눌려있는 양심은 그렇게 안 하고 싶은데 결론은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아직도 여전히 죄의 종노릇 하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이제는 분명하게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을 딱 보고 있지만 나 혼자 그것을 못 이겨요.

그래서 24절을 보세요.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Rom 7:24 (23절과 같음)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나는 비참하고 골치 아픈 사람이로다 .

..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만약에 나와 죄성이 분리가 안 되고 하나가 되어서 끝까지 죄만 지으면 죄의 삯은 사망이에요.

그래서 25절에,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Rom 7:25 (23절과 같음)

25 고맙게도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나는 과연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체로는 죄의 법을 따르는 인간입니다.

사람이 이중으로 산다는 거죠?

l5절부터 25절 마지막까지를 정리해 보면서 7장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바울은 이제 다음의 문제로 나아갑니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째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것을 행하지?에 대한 것이

었습니댜

바울은 21 절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그리고 22, 23절에서 자신 안에 어떻게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여기 "속사람이란 구원받은 성령 안에서의 영을 말하고 내 지체란 아담 안에서 타락한 원죄인 육을 말합니다.

즉 자신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은 자신 안에 영과 육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듭남으로 인하여 영적 기능이 회복되어 우리에게 선을 행하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이 있을지라도 여전히 타

락한 본성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겁니다.

바로 이와 같은 현실은 바울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탄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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